2022년/향모를 땋으며

향모를 땋으며(16)_부수적 피해~윈디고에게 이기다

백_일홍 2024. 7. 25. 15:12

부수적 피해


차들이 호모 사피엔스를 보고도 블레이크에 인색하다면, 밤중에 이 도로를 건너는 우리의 이웃 암비스토마 마스콜라타(점박이 도룡뇽)에게는 무슨 희망이 있을까? 

암비스토마 마스콜라타(점박이 도룡뇽)

 

CNN뉴스, 바그다드에 폭탄이 떨어지고 있다. 

 

부수적 피해: 미사일이 엉뚱한 곳을 맞힌 결과를 얼버무리는 기만적 표현, 이 표현은 마치 인간이 일으킨 파괴가 불가피한 자연 현상인 것마냥 우리에게 고개를 돌리라고 요구한다. 부수적 피해의 측정 단위는 뒤집힌 수프 냄비와 울부짖는 아이들이다. 509

 

대개는 눈에 안 띄지만 기러기 때 못지않게 극적인 것은 겨울철 군에서 나와 임시 봄못vernal poxol (봄철에만 물이 고이고 이후에 마르는 연못. 옮긴이)에서 짝을 만나는 도롱뇽의 이동이다. 첫 봄비가 내리면, 빗물이 땅을 적시는 동시에 기온이 5도를 넘으면, 숲바닥이 바스락바스라 들썩거린다. 도롱뇽은 숨은 장소에서 일제히 몸을 일으켜 허공에 눈 한번 깜박이고 제 갈 길을 간다. 이렇게 쏟아져 나오는 광경은 비 오는 봄밤 늪 옆에서만 볼 수 있다. 도롱뇽은 어두워서 포식자를 피할 수 있고 비가 와서 살갗이 축축할 때만 이동하기 때문이다. 굼뜬 버팔로 무리처럼 수천 마리가 움직이는데, 역시나 버팔로처럼 해마다 수가 줄고 있다. 510

 

양서류는 지구상에서 가장 연약한 집단 중 하나다. 습지와 숲이 사라지면서 양서류가 서식처를 잃는 것은 부수적 피해이며 우리는 이것을 발전의 비용으로 무심히 받아들인다. 양서류는 피부 호흡을 하기 때문에 몸과 대기 사이의 축축한 막에서 독소를 제대로 걸러내지 못한다. 서식처가 산업으로부터 안전하더라도 대기는 그러지 않을 수 있다. 공기와 물의 독소, 산성비, 중금속, 환경 호르몬의 최종 행 선지는 양서류가 수정하는 물이다. 산업 세계 곳곳에서 다리가 여섯 개 달린 개구리나 몸이 비틀린 도롱뇽 같은 기형 양서류가 발견된다. 516


이 캄캄한 시골길에서의 대학살과 바그다드 길거리에 널브러진 시신들은 정말로 연관성이 있는 듯하다. 도룡뇽, 아이들, 군복을 입은 젊은 농사꾼 - 이들은 적이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이 무고한 이들에게 전쟁을 선포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마치 우리가 그러기라도 한 것처럼 그들은 틀림없는 죽음을 맞는다. 그들은 모두 부수적 피해다. 자식을 전장에 보내도록 하는 것이 석유라면, 이 분쟁를 질주하는 엔진의 연료가 석유라면, 우리는 모두 공모자다. 군인, 민간인, 도룡뇽이 죽음으로 엮인 것은 석유에 대한 우리의 애정 때문이다. 517

이 로드킬 조사는 국제적으로 저명한 보전생물학자 제임스 깁스의 프로젝트다. .. 깁스는 이따금 비 오는 날 도룡뇽이 이동하고 있다고 - 또한 죽고 있다고 - 생각하면 잠을 이룰 수 없다고 털어놓는다. 그는 비옷을 입고 나가 도룡뇽을 도로 맞은 편으로 건네준다. 앨도 레오폴드 말이 옳았다. 자연주의자들은 상처의 세상에서 살아간다. 그 상처는 그들만이 볼 수 있다. 521

오늘 밤 우리를 분지로 이끈 것은 무엇일까? 어떤 정신 나간 종이 비 오는 밤 따뜻한 집을 뇌두고 도로 건너편으로 도룡뇽을 나를까? 이타행이라고 부르고 싶지만, 그건 아니다. 여기에는 이타적이라고 말 만한 것이 전혀 없다. 이 밤은 받는 이 뿐만 아니라 주는 이에게도 보상을 쌓는다. 우리는 그곳에 나서 이 경이로운 의식을 목격한 하룻밤 동안 다른 존재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우리와 다른 존재와 관계를 맺는다. 522

현대인은 '종 고독species loneliness'이라는 크나큰 슬픔을 겪는다고들 한다. 이것은 창조 세계의 나머지 구성원으로부터 소외된 상태를 말한다. 우리가 이 고립을 만들어낸 재료는 우리의 두려움, 우리의 오만, 그리고 밤에도 환하게 불을 밝힌 우리의 주택이다. 이 도로를 걷는 잠깐 동안 이 장벽들이 녹았고 고독이 덜어지기 시작했으며 우리는 다시 한번 서로를 안다. 

도룡뇽은 '타자'로서 손색이 없다. 차감고 미끌미끌하며, 온혈 동물 호모 사피엔스에게는 즉각적인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니 말이다. 그들의 놀라운 타자성을 생각하면 우리가 오늘밤 그들을 지키려고 찾아 온 것이 더더욱 신기하다. 밤비의 간절한 눈망물로 우리를 돌아보는 카리스마 넘치는 포유류와 달리, 양서류는 우리의 보호 본능을 끄집어내는 따스하고 보송보송한 느낌이 거의 없다. 양서류는 우리의 타자혐오xenophobis를 폭로한다. 이 분지에서든, 지구 반대편 사막에서든 이 혐오는 다른 종을 겨냥할 때도 있고 우리 스스로를 겨냥할 때도 있다. 도룡뇽과 함께 있는 것은 타자성을 존중하는 것이며 타자혐오라는 독을 치료하는 해독제다. 미끌미끌한 점박이 존재를 구할 때마다 우리는 그들의 권리 - 존재할 권리와 네 나름의 영토에서 살아갈 권리 - 를 입증한다. 523

 

뉴스를 들으면 무력감이 든다. 나는 폭탄이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차가 이 도로를 질주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내 능력 밖이다. 하지만 도롱뇽을 집어들 수는 있다. 어느 날 밤 나의 오명을 씻고 싶다. 우리를 이 호젓한 분지로 이끄는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사랑인지도 모르겠다. 도롱뇽을 통나무 아래에서 이끌어 낸 바로 그것. 아니면, 우리가 오늘 밤 이 도로를 걸은 것은 사죄(기독교 신앙에서 참회자에게 내리는 죄의 용서 선언_옮긴이)를 찾아서였는지도. 523


슈키타겐: 일곱 번째 불의 사람들 

"땅은 우리에게 많고 많은 선물을 주지. 불은 우리가 보답하는 한 가지 방법이야, 현대인들은 불이 파괴적이라고만 생각해, 하지만 그들은 옛날 사람들이 불을 창조적 힘으로 썼다는 걸 잊었어. 아예 한번도 몰랐을지도. 불쏘시개는 땅을 칠하는 붓과 같았어. 여기를 살짝 칠하면 앨크를 위한 푸른 초원이 됐고, 저기에 물감을 가볍게 흩 뿌리면 덤불이 사라져 참나무가 도토리를 더 많이 맺지. 숲지붕 아래에 점점이 물감을 찍으면 간격이 넓어져 큰불을 예방할 수 있어. 불의 붓을 개울가에 칠하면 이듬해 봄에 노란버드나무yellow willow가 빽하게 자란단다. 무성한 풀밭을 불로 희석하면 카마스로 푸르게 물 들지. 블루베리를 만들려면 몇 년간 물감을 말리고 또 칠해야 해. 우리 부족은 불을 이용하여 아름답고 요긴한 것을 만들 책임을 받았어. 그게 우리의 미술이자 과학이었단다." 530 

 

원주민이 불을 지름으로써 유지되는 자작나무 숲은 선물 창고다. 껍질로는 카누를 만들고 잎집으로는 위그원과 연장과 바구니를 만들고 속껍질에는 글을 쓰고, 물론 부싯깃으로는 불을 피운다. 하지만 선물은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종이백자작나무와 노란자작 나무 둘 다 자작나무시루버섯/natus obliquu이라는 균류의 숙주인데, 이 균류는 껍질을 뚫고 나와 불임의 흑conk을 형성한다. 혹은 자실체 로, 우툴두툴한 검은색 종양처럼 생겼으며 크기는 소프트볼만 하다. 표면은 딱딱한 껍질이 갈라져 있으며 불에라도 탄 듯 재 같은 것이 묻어 있다. 시베리아자작나무 Siberian birch 숲에서는 이 버섯을 '차가버 섯chaga'이라고 부르며 전통 약재로 귀하게 여긴다. 우리 부족은 슈키 타겐 shkitagen 이라고 부른다. 531

Chaga

 

슈키타겐의 검은색 혹을 찾아 나무에서 떼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혹을 잘라서 벌리면, 황금빛과 구릿빛의 줄무늬가 광채를 발한다. 가느다란 실과 공기로 가득한 구멍으로만 이루어졌기 에 질감은 연한 나무 같다. 우리 조상들은 이 존재의 놀라운 성질을 발견했다. 불에 탄 겉과 황금빛 심장을 통해 스스로 자신의 쓰임새를 알려줬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슈키타겐은 부싯깃 균류이자, 불의 수호자이자, '불의 사람들'의 좋은 친구다. 잉걸이 슈키타겐을 만나면 꺼져버리는 게 아니라 균류의 모태 안에서 불꽃 없이 천천히 타며 열을 간직한다. 순식간에 스러지는 작디작은 불씨도 네모진 슈키타겐 덩어리에 내려앉으면 돌봄과 보호를 받는다. 하지만 숲이 별목되고 산불이 억제되면서 불탄 땅에 의존하는 종들이 위험에 처하고 있기에 슈키타겐을 찾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532


언덕 아래 골짜기에서 일곱 번째 불의 사람들이 자기네가 모은 모든 것을 가지고 갈림길을 향해 걷는 광경이 보인다. 그들은 세계관을 변화시킬 귀중한 씨앗 꾸러미를 들고 있다. ... 너무 많은 것이 잊혔지만 땅이 버티는 한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귀를 기울이고 배울 겸손과 능력을 가진 사람을 길러낸다. 게다가 인류는 외롭지 않다. 그 길의 끝까지 인간 아닌 사람들이 우리를 돕는다. 사람들이 잊어버린 지식이 무엇이든, 땅은 기억한다. 나머지 존재들과 살아가고 싶어 한다. 길에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늘어서 있다. 빨간 색, 흰색, 검은 색, 노란색의 '치유의 바퀴medicine wheel' 안에 있는 그들은 자기 앞에 놓인 선택을 이해하며 존중과 호혜성의 이상을, 인간을 넘어선 세계와의 동료애를 공유한다. 539

슈키치유의


슈키타겐, 꺼질 수 없는 불씨를 간직한 불의 수호자 균류를 떠올린다. 그 지혜가 살아 있는 곳으로, 숲으로 돌아가 공손하게 도움을 청한다. 주어진 모든 것에 대한 보답으로 나의 선물을 내려놓고 처음부터 시작한다. 545

일곱번째 불의 사람들이 길을 걷듯 우리도 슈키타겐을 찾아야 한다. 꺼질 수 없는 불씨를 간직한 황금을. 불의 수호자를 찾아다니며 감사와 겸손으로 인사를 건넨다. 어떤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잉걸을 간직하며 누군가 생명의 숨을 불어넣길 기다려줬으니, 숲의 슈키타겐과 정령의 슈키타겐을 찾을 때는 열린 눈과 열린 마음을 달라고 기도한다. 인간을 넘어선 우리 친척들을 보듬을 만큼 열린 가슴을, 우리 것이 아닌 지혜를 품을 여유를 달라고. 우리는 선한 초록 대지가 너그럽게 이 선물을 배풀리라 믿어야 할 것이며 인간 사람들이 보답하리라 믿어야 할 것이다. 

내가 아는 사실은, 우리가 불을 전하는 슈키타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546

 


윈디고에게 이기다

봄이면 풀밭을 가로질러 나의 약초 숲으로 향한다. 그곳에서는 너그러운 식물들이 선물을 아낌없이 내어준다.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보살핌으로 말미암아 나의 것이 된 선물들. 식물과 함께하고 귀를 기울이고 배우고 모으려고 이곳에 온 지 수십 년째다..." 547

'여름'은 우리 말로 니빈 -풍요의 때-이라고 한다. 나나보조가 윈디고를 제압하고 물리친 때는 니빈이었다. 과소비 괴물의 기세를 껶는 화살, 병을 치료하는 약이 여기 있다. 그 약의 이름은 '풍요'다. 빈궁이 극에 이르는 겨울에는 윈디고가 걷잡을 수 없이 기승을 부리지만, 풍요가 퍼지면 굶주림은 사그라들고 그와 더불어 괴물의 힘도 약해진다. 549

시장 체제는 부의 원천과 소비자 사이의 흐름을 가로막음으로써 인위적으로 희소성을 만들어낸다. 곡물이 창고에서 썩어가는 동안 굶주린 사람들은 쌀값이 없어 죽어간다. 우리를 지탱하는 대지 자체도 연료 부정의 때문에 파괴되고 있다. 기업에게 인격을 부여하면서 인간을 넘어선 존재들에게는 그런 자격을 부정하는 경제 이것이 바로 윈디고 경제다. 

대안은 뭘까? 물과 땅, 숲 처럼 우리의 안녕에 기본적인 자원을 상품화하지 않고 공동으로 보유하는 공유재 경제의 이상이 바로 이것이다. 공유재 접근법은 올바르게 관리한다면 희소성이 아니라 풍요를 유지한다. 550

희소성과 풍요는 경제적 성질인 것 못지 않게 정신과 영혼의 성질이다. 감사는 풍요의 씨앗을 심는다. 감사는 윈디고 정신병을 치료하는 강력한 해독제다. 대지와 서로의 선물을 깊이 자각하는 것이야말로 치료약이다. 이 문화에서 부는 나눌 수 있을 만큼 가진 것이고, 부자는 서로에게 이로운 관계를 많이 맺는 사람이다. 게다가 감사는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대지가 우리에게 내어준 모든 것에 감사하면 우리를 따라다니는 윈디고에 맞설 용기가 생긴다. 우리가 사랑하는 대지를 파괴하여 탐욕수러운 자들의 주머니를 불리는 경제에 참여하기를 거부할 용기, 생명에 반하는 게 아니라 생명과 한편이 되는 경제를 요구할 용기가 생긴다. 5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