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향모를 땋으며

향모를 땋으며(13)_음빌리카리아: 세계의 배꼽

백_일홍 2024. 7. 25. 14:58

음빌리카리아: 세계의 배꼽

Umbilicaria, rock tripe, 돌양

 

지의류가 겁 없이 바위에 뿌리를 내려 보금자리로 삼았다. 물론 이것으 ㄴ비유적 표현이다. 지의 류는 뿌리가 없으니까. 흙이 없을 때는 뿌리가 없는 게 유리하다. 지의류는 뿌리뿐 아니라 잎과 꽃도 없는 가장 원시적인 생명체다. 바늘 구멍만 한 작은 틈새에 깃든 먼지만 한 번식체에서 출발하여 지의류는 알몸의 화강암에 자리 잡았다. 이 미세 지형은 바람을 막아주고 오목한 부분을 만들어서 비가 내린 뒤에 물이 미세한 웅덩이에 고일 수 있도록 했다. 많지는 않았지만 이걸로도 충분했다. 394

지의류가 있는 숲은 풍성한 식물경이지만, 지의류는 식물이 아니다. 지의류를 보면 개체의 정의가 헷갈린다. 지의류는 하나가 아니라 조류와 균류 둘이기 때문이다. 두 짝은 사뭇 다르면서도 매우 밀접한 공생 관계를 맺어 완전히 새로운 생물이 된다. 396

조류는 에메랄드처럼 빛나는 단세포의 군집으로, 빛과 공기를 당으로 바꾸는 귀중한 연금술인 광합성을 선물로 가져온다. 지의류의 조류는 독립영양생물, 즉 스스로 식량을 만들어내는 가족의 요리사이자 생산자다. 하지만 에너지에 필요한 당은 전부 만들 수 있지만 필요한 무기질을 찾는 솜씨는 별로다. 습기가 있어야만 광합성을 할 수 있는 데 반해 몸이 마르지 않도록 스스로를 보호할 능력은 없다. 

지의류의 균류는 종속영양생물, 즉 '다른 생물을 먹는 생물'이다. 스스로 식량을 만들 수 없어 남이 모다들인 탄소를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균류는 물질을 분해하여 무기질을 끄집어내는 솜씨는 훌륭하지만 당을 만들지는 못한다. 균류의 결혼식 바구니는 복합물을 소화하여 단순한 성분으로 바꾸는 산과 효소가 가득 들어 있다. 균류의 몸은 섬세한 가닥들의 그물망으로, 무기질을 찿아 뻗어나가 드넓은 표면적으로 무기질 분자를 흡수한다. 공생 덕분에 조류와 균류는 당과 무기질을 호혜적으로 교환할 수 있다. 397

천천히, 천천히 움발리카리아는 얇은 부스러기 층을 제 주변에 덧붙인다. 그것은 자신의 박리물일 수도 있고 먼지일 수도 있고 떨어진 바늘잎일 수도 있다. 숲의 표류물인 셈이다. 유기물 부스러기는 맨바위와 달리 물기를 머금을 수 있기에 바위에 흙이 점차 쌓여 이끼와 양치식물의 서식처가 된다. 생태 천이의 법칙에 따라 지의류는 다른 생물을 위해 토대를 놓았으며 이제 다른 생물들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402

지의류는 생명의 두 가지 위대한 일을 한 몸에 통합한다. 그것은 생명체의 축적에 바탕을 둔 이른바 생식연쇄와 생명체의 해체에 바탕을 둔 부식연쇄다.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생며여체 중 하나인 지의류는 호혜성으로부터 탄생한다. 우리의 연장자들은 모두 이 바위, 이 표석이 가장 오래된 할아버지요, 예언의 전달자요, 우리의 스승이라고 가르친다. 이따금 지의류를 찾아가 앉아 있는다. 세계의 배꼽에서 배꼽 명상을 하는 셈이다. 403

지의류는 인간을 지탱할 수 있지만 사람들은 지의류를 보살핌으로써 보답하지 않았다. 움빌리카리아는 여느 지의류처럼 대기 오염에 매우 민감하다. 404

 


묵은 아이 Old-Growth Children

이곳에서의 번영은 탐욕이 아니라 위대한 포틀래치 전통을 낳았다. 물질적 재화를 제의적으로 내어주는 이 전통은 땅이 사람들에게 베푸는 너그러움을 고스란히 반영한 것이었다. 부는 내어줄 수 있을 만큼 가진 것을 의미했으며, 너그러울수록 사회적 지위가 높아졌다. 개잎갈나무는 부를 나누는 법을 가르쳤으며 사람들은 배웠다. 410

땅이 개발되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햇빛이 갑자기 쏟아져 들어온다. 흙이 벌목 장비에 파헤쳐져 온도가 올라가고 부식토 담요 아래의 무기질 토양이 드러난다. 생태 천잉의 시계가 0시 0분으로 맟춰지고 알람이 요란하게 울린다. 

숲 생태계는 풍도, 산사태, 산불을 겪으며 대규모 교란에 대처하는 수단을 진화시켰다. 초기 천이 식물 종이 금세 찿아와 피해 복구 작업에 돌입한다. 기회종 또는 개척종으로 알려진 이 식물들은 교란이 일어난 뒤에 번성할 수 있도록 적응했다. 빛과 공간 같은 자원이 풍부하기에 이들은 쑥쑥 자란다. 주변의 맨땅이 몇 주 만에 자취를 감출 수도 있다. 기회종의 목표는 최대한 빨리 생장하고 번식하는 것이기에, 수간을 만드는 수고를 감수하지 않고 엉성한 줄기에 잎을 틔우고 또 틔우는 일에 매진한다. 

기회종에게 열린 '기회'의 장은 금방 닫힌다. 나무가 등장하기 시작하면 개척자의 시절은 초읽기에 들어간다. 그래서 그들은 광합성으로 거둔 부를 이용하여 자식을 만든다. 새들이 다음 개별지로 날라주길 기대하면서. 이런 까닭에 상당수 기회종은 베리를 만든다. 416

산업적 임업과 자원 채굴을 비롯하여 인간의 영역 확장으로 인한 현상들은 새먼베리 덤불과 같아서 늘 더 얻고자 하는 사회의 수요에 따라 땅을 집어삼키고 생물 다양성을 줄이고 생태계를 단순화한다. 500년만에 우리는 묵은 숲과 묵은 생태계를 결딴내고 기회주의적 문화로 대체했다. 416

묵은 숲은 아름다움뿐 아니라 정교한 기능 면에서도 놀랍다. 자원이 희소해지면 무차별적 성장이나 자원 낭비 같은 광란이 있을 수 없다. 술 구조 자체의 '녹색 건축'은 효율성의 본보기로, 태양 에너지의 포획을 최적화하는 여러 곂의 숲지붕 속에 잎들이 층을 이룬다. 자급자족하는 공동체의 본보기를 찾고 싶다면 묵은숲을 보면 된다. 417

여인에게 풍요를 선사하는 나무, 이 이름에 진실이 담여 있다. 그녀(개잎갈나무)는 프랜츠에게도 부를 선사했다. 그것은 자신의 구상을 세상에서 생생하게 볼 수 있는 부, 시간이 흐르면서 아름다워만 지는 선물을 미래 세대에 줄 수 있는 부였다. 425

프렌츠는 묵은 숲을 가꾸는 것이 가능함을 보여주었지만, 그의 또 다른 꿈은 온전하고 치유된 묵은 문화, 즉 세계관을 전파하는 것이었다. 

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 스프링크리크 프로젝트 Spring Creek Prroject를 공동으로 창립했다. 이 사업의 목표는 "환경학의 실용적 지혜와 철학적 분석의 명료함, 글의 표현력을 아울러 우리의 자연의 관계를 이해하고 다시 상상하는 새로운 길을 찾는 것"이다. 예술가로서 숲지기, 생태학자로서의 시인 

오두막은 예술과, 과학자, 철학자가 건설적으로 협력하는 사랑방으로, 이들의 작업은 다채로운 문화 행사로 표현된다. 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