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향모를 땋으며

향모를 땋으며(11)_은종소리.둘러앉기

백_일홍 2024. 7. 25. 14:47

은종소리 

mountain silverbell

 

예전에 한 학생이 나의 진화 수업에 딴죽을 건 뒤로 나는 이 문제를 무겁지 않게 다루는 법을 배웠다. 모두가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그래서 숲을 사랑한다는 애기로부터 은근쓸쩍 시작하여 토박이 환경철학자에 대해, 창조 세계의 다른 구성원들과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 상황에서만큼은 정령의 생태학을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기독교도로부터도 과학으로부터도 하도 동떨어져서 학생들이 이해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324

문득 무척 슬퍼졌다. 그 순간, 내가 실패했음을 알았다. 나는 참취님과 미역취님의 비밀을 찿던 어린 학생으로서 내가 갈망하던 과학, 데이터보다 심오한 과학을 가르치는 데 실패했다. 

나는 학생들에게 너무 많은 정보를 줬다. 오갖 패턴과 과정이 너무 무껍게 쌓여 가장 중요한 진실을 가려버린 것이다. 나는 기회를 놓쳤다. 학생들을 모든 길로 인도했으면서도 가장 중요한 길을 빠뜨렸다. 세상을 선물로서 받아들이고 보답하는 법을 학생들에게 가르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들이 이끼거미의 운명을 애달파할 수 있을까? 나는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전부 가르쳤지만 그 의미는 하나도 알려주지 않았다. 

한 학생이, 내가 모르는 학생이 노래하기 하기 시작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학생들이 목소리를 높일 때 하늘여인이 거북섬의 등에서 처음으로 노래한 것과 똑같은 사랑과 감사가 흘러 넘쳤다. 그들이 읆조리는 옛 찬송가에서 깨달았다. 중요한 것은 경이의 근원을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경이 자체였음을. 326

과학의 오만에 사로잡힌 열정적인 젊은 박사이던 나는 내가 유일한 스승이라며 스스로를 기만하고 있엇다. 아니, 땅이야말로 진짜 스승이다. 학생으로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챙김뿐이다.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열린 눈과 열린 가슴으로 선물을 받아들임으로써 생명 세계와 호혜적 관계를 맺는 형식이다. 내 임무는 단지 학샐들을 생명 세계와 대면하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귀를 열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 햇살 뿌연 오후, 산은 학생들을 가르쳤고 학생들은 선생을 가르쳤다. 327

 


둘러앉기

학명들, 물론 알아두면 좋은 것들이다. 생명 세게를 낱낱으로 구별하고 숲을 엮은 가닥들을 알아보고 땅의 몸에 조율되기 시작하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학생들의 손에 과학의 연장을 들려주면 그들 자신의 감각에 덜 의존하게 되는 것 또한 내 눈에 보인다. 라틴어 학명을 암기하는 데 정력을 쏟으면 존재 자체를 들여다보는 데 쓰는 시간이 줄어든다. 329



Typha latifolia 큰부들

 

식물이 진화시킨 적응과 사람들의 필요가 맞아떨어지는 것을 보면 놀랍기 그지없다. 일부 원주민 언어에서는 식물을 가리키는 단어가 '우리를 보살피는 이들'로 번역된다. 부들은 자연 선택을 통해 늪에서의 생존 가능성을 증가시키는 정교한 적응을 발전시켰다. 사람들은 성실한 학생이어서 부들에게 해결책을 빌려 자신의 생존 가능성을 증가시켰다. 식물은 적응하고 사람은 적용한다. 336

최근 연구에 따르면 부식토 냄새는 사람에게 생리적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어머니 대지님의 냄새를 들이마시면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의 분비가 자극되는데, 이 호르몬은 엄마와 아이,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서 유대감을 강화하는 바로 그 화학물질이다. 347

학생들은 뿌리를 캐고 나면 늘 뭔가 달라진다. 마치 거기 있는 줄 몰랐던 품에 안겼다 나온 것처럼 다정하고 개방적인 무언가가 그들에게 있다. 그들을 보면서 나는 선물로서의 세상에 마음을 여는 것, 대지가 나를 돌보고 내게 필요한 모든 것이 바로 저기 있으리라는 앎으로 충만한 것이 어떤 느낌인지 떠올린다. 348

그들이 부들에게 돌려주는 선물은 부들에게 받은 것만큼이나 다체롭다. 이것이 우리의 임무다. 무엇을 줄 수 있는지 알아내는 것. 이것이 교육의 목적아닐까? 나 자신의 선물이 지닌 성질을 이해하고 세상을 이롭게 하기 위해 이 선물을 쓰는 법을 배우는 것. 352

대지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는 일이 위그웜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님을 기억하려면 정말로 노력해야 한다. 이 선물에 대해 인정, 감사, 호혜성으로 보답하는 일은 자작나무 껍질 지붕 아래에서든 부루클린의 아파트에서든 똑같이 중요하다. 3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