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위대한 전환 (2)

백_일홍 2024. 11. 13. 15:15

위대한 전환

 

데이비드 코튼

제2부


우리가 선택해 온 길: 제국의 슬픔

사실 우리가 가장 자랑스러워할 만하고 인류에게 오래도록 영향을 미친 지적, 문화적 성취는 제국의 시대 이전, 더 평등하고 여성이 중요한 리더의 역할을 맡았던 사회들에서 이루어졌거나, 제국을 특징 짓는 억압과 전제적인 폭력이 잠시 완화되었던 시기, 아니면 민주적 개혁이 이뤄진 가장 최근의 200년 사이에 이루어졌다. 인류의 역사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진리는, 제국이 인간 본성의 가능성을 실현시켜나가는 과정에서 파괴적이고 자기제약적인 옆길이었다는 사실이다. 178


제 5장 신이 여성이었을 때

오늘날에는 역사 교재를 이렇게 서술한다는 것을 생각하기 어렵다. 성차별적인 언어 때문에도 그렇지만, 인간 경험에서 젠더를 중요한 차원으로 여기지 않고 있으며 초창기 인류의 발달 과정에서 여성이 수행한 중대한 기여를 간과하고 있어서이기도 하다. 인간 종이 "인간화"되어가는 초창기 과정에서 여성이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음을 인식하고 나면, 제국이 5000년간 여성을 억압해온 것이 얼마나 막대한 비용을 일으켰을지, 지구공동체를 일구는 과정에서 여성 지도자들의 역할이 얼마나 필수적일지, 또 젠더의 균형이 얼마나 중요할지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83

제국이 등장하기 전 길게 잡아서 약 6000년 동안 여신 사회는 생명을 양육하는 테크놀로지를 개발하고 적용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인간은 자연의 생산 과정에 파트너십의 관계로 참여하는 존재로 상정되었고, 인간 종의 생명을 창조하는 존재로서 여성이 이러한 활동에 특히 친화성을 갖는다고 여겨졌다. 189

☆ 5장 정리:
초창기 인류의 경험은 인간이 굉장히 방대한 스펙트럼의 가능성을 가진 복잡한 종임을 강력하게 상기시켜준다. 역사에서 가장 잘 숨겨져 온 비밀 중 하나는, 우리가 "인간으로서의 특성을 발달시켜온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진전들이 인간과 인간, 인간과 지구 사이의 관계가 비교적 균형 잡혀 있고 생명을 육성하는 여신의 권력을 숭배하던 시기에 이뤄졌다는 사실일 것이다. 제국으로의 전환은 부분적으로는 인구 증가에 따라 낯선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질서를 부여해야 할 필요에서 나온 실용적인 반응이었다. 이것이 규모 관점에서의 설명이다. 하지만 더 깊은 수준에서, 제국으로의 전환은 남성적인 지배 권력이 여성적인 생성 권력을 억압한 결과다. 이것이 젠더 관점에서의 설명이다. 201

규모 관점과 젠더 관점은 각각 우리 시대에 중요한 교훈을 준다. 규모 관점은 평등과 합의에 기반한 의사결정이 장소에 뿌리를 둔 자립적 공동체에서 가장 자연스럽게 이뤄진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러한 사회는, 사람들이 서로 간의 신뢰와 돌봄에 기반한 인간 관계를 맺으며 자신의 삶이 의존하고 있는 자원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사회다. 인구 증가로 생겨난 새로운 문제에 대해 제국의 지배-종속 관계로 전환하는 잘못된 해법을 받아들이는 바람에, 인간 잠재력의 온전한 실현에 필수적인 신뢰와 돌봄의 관계가 훼손되었고 자원의 통제가 지배층의 손으 로 넘어가게 되었다.

한편, 젠더 관점은 인간 사회의 건강하고 역동적인 기능이 여성성과 연결되는 생성적이고 양육적인 권력과 남성성과 연결되는 더 자기 관철 중심의 지배자 권력 사이의 균형에 달려있음을 말해준다. 제국의 시대에는 이 균형이 단순히 교란된 것을 넘어 여성성이 적극적으로 비난받고 부인당했으며 이는 인류가 생명 자체를 폭력적으로 공격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2 동안 계속해서 만들어져온 사회적 병리다. 생명을 파괴하는 제국의 문화와 제도를 생명을 지원하는 지구공동체의 문화와 제도로 대체하려면 오늘날에도 민주적 제도의 가면 아래 여전히 제국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며, 제국이 유발하는 비용을 인식 해야 하고, "자기실현적 예언'을 일으켜 인간의 가능성을 축소시키는 지배의 동학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202


제6장 고대 제국: 지배하거나 지배 당하거나

콘스탄티누스는 예수의 삶과 가르침의 의미를 본인과 제국의 목적에 부합하게 재구성했다. 즉 사랑, 평화, 정의에 대한 예수의 도덕적 권위를 탈취해 자신과 제국의 권위로 삼았다. 그리스도교 저자인 월터 윙 크Walter Wink에 따르면,

"그리스도교가 제국의 종교가 되자... 교회의 성공은 제국의 성 공과 연결되었고 제국을 보존하는 것이 윤리적 행동의 결정적인 기준이 되었다.... 교회는 더 이상 악이 제국 내에 똬리를 틀고 있다고 보지 않았고 악은 제국의 적에게 있다고 보았다. 죄의 사 함을 받는 것은 신도와 신 사이의 개인적인 거래가 되었다. 사회 자체가 그리스도교적이라고 가정되었으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했던 일이 사회에 매우 급진적인 비판을 가하는 일이었다는 개념도 대체로 버려졌다." 223

☆ 6장 정리:
중세를 살아갔던 사람들에게는 상대적으로 더 질서 있고 더 많은 인프라가 있었던 로마 제국이 더 나은 시기로 보였을 것이고, 충분히 그럴 만하다. 특히 5현제 시대는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보다 훨씬 더 좋은 시절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로마 제국을 민주주의의 이상으로 찬양하는 사람들은 속임수, 불의, 폭력이 로마 시기 통치의 특징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로마는 역사에서 가장 찬양받는 세 개의 제국이다. 물론 이들 모두에 위대한 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폭력적인 통치자들이 "게임에 참가하거나 아니면 죽거나," "지배하거나 아니면 지배 당하거나," "죽이거나 아니면 죽거나'의 논리에 따라 가차없는 제국의 드라마를 펼치면서 생명, 자연의 부, 인간의 가능성이 막대하게 희생되는 비용이 따랐다.

죽음의 신이 생명의 신을 대체하고 칼의 지배가 성배의 지배를 대체하면서, 사회적 병리로 여겨져야 마땅할 것들이 정상으로 여겨지게 되있다. 인류의 창조적 에너지는 공동체 전체의 생성적 힘을 일구는 쪽보다 전쟁과 지배의 수단을 개발하는 쪽으로 흘러갔다. 제국은 위대한 문명을 건설했지만 질투심 많은 승자가 폭력과 파괴로 이전의 기억을 쓸 어버리려 하면서 그 문명은 다시 파괴되어 사라졌고 이 양상은 계속해서 되풀이되었다.

신성한 것은 속된 것의 하인이 되었다. 비옥하던 토양은 의도적이거나 약탈적인 방치로 사막이 되었고, 공포에 의한 통치는 분노를 촉발시켜 폭력적인 보복의 악순환을 불러왔다. 전쟁, 교역, 부채는 소수가 다수의 삶을 찬탈하는 수단이 되었고, 많은 이들을 노예 및 기타 예속 상태에 빠뜨렸다. 그 결과로 나타난 권력의 불균등은 자신에게 신이 부여한 특권과 이 세상을 초월한 권력이 있다고 믿은 사이코패스적 통치자의 망상적인 오만과 방탕으로 한층 더 심화되었다. 현세에서 인간의 가 능성을 실현하는 것에서 내세의 특권을 확보하는 쪽으로 관심이 옮겨 갔다.

지배층은 종교 제도를 통한 문화적 통제, 교역과 신용 시스템을 통한 경제적 통제, 규칙을 만드는 제도와 조직화된 군사력을 통한 정치적 통제로 지배를 유지했다. 그들 사이에 맹렬한 경쟁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집합적인 특권을 보장하는 제도를 유지하려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정략 결혼 등의 수단을 활용하며 대체로는 연합했다.

고대의 왕, 파라오, 황제가 드러내는 많은 패턴이 민주주의가 역사적 형태로서의 군주제를 종식시킨 우리 시대와 희한하게도 비슷하게 여겨진다면, 이는 제국의 지배 문화와 제도가 민주적 도전에 직면해 새로운 형태로 모습만 바꾸었기 때문이다. 제국의 치명적인 손아귀에서 우리가 스스로를 해방시키려면 제국의 역사적 뿌리만이 아니라 현대에 제국이 어떤 형태로 발현되는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다음 장에서는 근대 유럽의 국민국가에서 식민 제국이 어떻게 생겨났으며 20세기 말에 제국이 민주주의의 도전을 회피하면서 권력과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어떻게 다시 "글로벌 기업 제국" 형태로 모습을 바꾸었는지 알아보기로 하자. 228


제7장 근현대 제국: 돈의 힘에 의한 전환

범죄군주와 범죄 조직

모험가들

우리 대부분은 유럽이 식민지 확장에 대대적으로 나선 시기를 위대한 모험가들의 이름을 통해 알고 있다. 이들은 각자 자기 나라 주권자의 의뢰로 주권자의 자금 지원을 받아 대항해에 나서서 새로운 땅을 발견했고 그곳에서 약탈과 살육을 저질렀다. 서쪽 항로를 개척해 아시아로의 새 교역로를 뚫으려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1451-1506)는 1492년에 오늘날의 아이티와 도미니카 공화국에 해당하는 서인도 제도의 이스파니올라에 도착해 이곳을 스페인령으로 선포했다. 중미에서 노예 무역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에르난 도데 소토Hernando De Soto (1496-1542)는 1532년에 프란시스코 피사로 Francisco Pizarro와 연합해 페루의 잉카 제국을 장악했다. 같은 해에 포르투갈은 브라질에 첫 정착 식민지를 건설했다. 데 소토는 당대 최고 갑부 중 한 명이 되어 스페인에 돌아왔다. 그가 약탈에서 얻은 몫은 피사로의 절반밖에 안 되었는데도 말이다. 1521년 경에는 에르난 코르테스 Hernán Cortés가 멕시코의 몬테주마 제국을 스페인령으로 접수했다. 233

해적과 사략선 업자들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모두 국왕의 의뢰를 받은 민간 해적선을 통해 경쟁국의 배, 땅, 전리품을 약탈했다. 특히 스페인 배들이 자주 타깃이 되었다. 엘리자베스 1세 시절에 영국의 사략선은 처음에 카리브해 연안에서 스페인 배들을 약탈해 신세계의 부를 가져오려 했다. 엘리자 베스 1세 본인은 아일랜드 정복에 신경을 쓰느라 바빠서 영국의 사략선을 지원하거나 감독하지 않고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두었다. 235

칙허를 받은 기업

점차 군주들은 식민지를 확장하고 경영하고 약탈하는 수단으로 모험가와 해적보다 칙허로 설립된 기업체를 더 선호하게 되었다. 영국에서 이러한 전환이 맨 초창기의 민주적 시도에 대한 대응으로 나온 면이 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국 의회는 국왕의 자의적인 권력을 제한하려는 최초의 근대적 시도에서 생겨났으며 17세기 초입이면 국왕의 조세 징수와 세출에 대한 감독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의회의 제약이 껄끄러웠던 국왕 엘리자베스, 제임스 1세, 찰스 1세 등은 자신이 선호하는 투자자에게 칙허를 하사해 독점권과 그 밖의 특권을 가진 기업체를 설립하면 의회의 감독을 회피할 수 있는 수수료와 세금으로 안정적인 소득원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국왕은 대개 자신이 칙허를 하사한 회사의 주식을 개인적으로 소유했다.

칙허로 설립된 기업들이 대사관 운영, 요새 운영, 군시설 및 교역 시설운영 등과 관련해 마땅히 국가의 권한 하에서 이뤄져야 할 지출을 직접 결정하고 집행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때는 영국 사업체들이 특정 영토내에 거주하는 영국인들에 대해 사법 관할권까지 가지고 있었다. 훗날 미국이 되는 초창기의 영국 정착 식민지 상당수가 왕실 칙허로 설립된 기업이 세운 것이었다. 대체로 그 기업이 소유한 땅에 예속 노동자들이 거주하면서 일했다. 많은 노동자들이 영국에서부터 비자발적으로 호송되어 온 사람들이었다. 뒤이어 아프리카에서 노예 노동력도 수입되었다.

영국 동인도회사(1600년에 설립)는 인도 식민화의 주요 도구였다. 인도는 1784년까지 동인도회사의 지배를 받았고, 동인도회사는 마치 인도가 회사의 사적인 영지인 것처럼 통치했다. 1858년까지도 동인도회사가 본국 감독 하에 인도의 행정을 담당했으며 1858년이 되어서야 영국정부가 식민지 행정을 직접 담당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237

현대의 "유한책임 상장주식회사"의 전조라 할 만한 이 시기 회사들은 법적으로 승인되고 보호받는 범죄 조직이라고 묘사해도 과장이 아니었다. 사명을 거느리고 해외로 나가 조공을 뜯어내고 토지와 부를 징발하고 시장을 독점하고 노예를 거래하고 마약을 판매하고 금융 사기로 수익을 올릴 수 있도록 본국 정부가 허가해준 범죄 조직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오늘날 가장 대표적인 기업 형태인 대규모의 유한책임 상장주식회사는 심지어 본국에서조차 책무성과 법적 책임을 상당히 면제받는다. 239

제도적 소시오패스

유한책임 상장주식회사는 노동자와 경영자가 자신의 가치관이나 공공의 이익과 상관없이 소유자의 금전적인 이익을 위해 일하고 소유자에게 법적인 책무성을 지게 되어 있는 인공적인 실체다. 소유자들이 그 기업에 대해 개인적으로 정통해 있거나 운영에 관여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므로, 설령 소유자로서의 참여를 통해 자신의 가치관을 표현하고 싶다 해도 그럴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투자를 하고자 하는 주주들이 주주총회 같은 곳에서 가치관을 피력해도 대개는 무시된다. 상당한 지분을 가진 소유자인 경우조차 그렇다.

법학 교수들과 경영학 교수들은 학생들에게 기업의 의사결정에 공리적 고려사항을 개입시키는 것이 그 자체로 윤리적이지 않은 일이라고 가르친다. 수익성을 악화시켜서 주주에게 마땅히 가야할 이익을 부당하게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마조리 켈리Marjorie Kelly가 『자본권신수설The Divine Right of Capital』(국내본 제목은 『주식회사 이 데올로기』)에서 정확히 지적했듯이, 주주들은 여타의 어느 이해당사자에 비해서도 기업의 성공에 기여하는 바가 적다. 따라서 위와 같은 논리는 상당히 뒤틀린 도덕 논리다.

다른 어떤 이의 이해관계보다도 주주의 금전적인 이익을 우선하는 것이 경영의 법적, 윤리적 의무라는 원칙은 어떤 법률에도 명시적으로 규정된 바가 없다. 그런데도 이 원칙은 미국의 사법 문화와 판례에 깊이 뿌리박혀 있으며 다른 나라로도 확산되었다. 기업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변호사의 주장을 토대로 의회가 아닌 판사가 법을 만드는 대표적인 사례다.

따라서 현재의 미국 법 체계에서 유한책임 상장주식회사는 감성적으로 성숙한 성인 인간에게 기대할 수 있는 윤리적 감수성과 도덕적 책임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인공적 실체인 법인이 아니라 자연인이 그렇게 행동한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소시오패스라고 진단할 것이다. 인간에게 부모가 하는 것과 비슷한 역할을 해줄 공적인 제도가 규칙을 만들고 집행하지 않으면, 상장기업은 윤리적 공백 상태에서 작동하게 된다. 

기업은 변호사, 로비스트, 홍보 회사 등에 수십억 달러를 지출한다. 정치 과정을 주물러서 기업이 그러한 공적인 규칙에서 자유로워지게 하는 것이 이들의 일이다. CEO들은 어느 정부의 관할권에도 속하지 않는 사유지인 섬에 기업 본사가 존재하고 공장은 바지선 위에 둥둥 떠있다가 노동 비용이 가장 싸고 보조금과 조세 혜택이 가장 후하고 규제가 가장 느슨한 곳이면 어디로나 곧바로 이동할 수 있는 세계가 그들에게 가장 이상적인 세계라고 말하곤 하는데, 농담만은 아니다. 241

민주적 도전

군주제의 종말

1776년에 미국 독립혁명이 외국의 통치에 도전했다면, 1789년에 프랑스 대혁명은 군주제에 대해 직접적으로 도전했다. 프랑스 대혁명은 귀족과 성직자에게 대항하는 중간 계급의 봉기로 시작되었다. 그런데 지방에서 점점 더 농민 반란이 일어나자 공포에 질린 귀족과 성직자들은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당대의 용어로 "부르주아지"라고 불리던 상인 중간 계급과 연합했다. 여기에서 인권선언이 선포되었고 새 헌법이 제정되어 귀족과 성직자가 가지고 있던 특권 중 상당 부분이 철폐되었다. 나폴레옹 전쟁이 벌어지던 1800년대 초에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중남미 식민지에 대한 통제력을 점차로 상실했다. 이곳 식민지들은 미국의 선례를 따라 독립을 선포했고 중남미 지역은 유럽에서 온 정복자의 후손이 통치하는 독립 국가가 되었다.

제국의 반격

기업이 주도하는 글로벌 경제의 특징인 극단적이고 계속 심화되는 불평등은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다. 이것은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잘 입증된 제국적 지배의 원칙들을 활용해 전지구적으로 경제적, 정치적 해게모니를 확보하게 할 목적에서, 숙련된 계획가들이 전략적으로 고안한 글로벌 경제 제도의 결과다.

거대한 계획

한편, 미국 입장에서는 2차 대전이 유럽 경제권이 쑥대밭이 된 틈에 경제 불황을 벗어나 산업 기반을 강화할 기회였다. 미국도 영국과 비슷한, 하지만 더 대담하고 규모가 큰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의 계획에 따르면, 영국이 아니라 미국이 전후 글로벌 경제의 패권 국가가 되어 야 했다. 미국은 영국이 전쟁 전에 활용했던 원칙을 가져다 쓸 생각이었다. 가장 강력한 참가자의 이익을 위해 작동하는 개방된 글로벌 경제 시스템을 활용하려한 것이다.

이 계획의 핵심은 다른 나라에 미국 기업과 금융기관이 제약 없이 접근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11장에서 더 자세히 설명할 것이다.) 당시에 미국 기업과 금융기관들은 의심의 여지없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했다. 미국의 주도 하에 세 개의 국제기구 세계은행World Bank, 국제통화기금 International Monetary Fund. IMF, 그리고 나중에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가 되는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eneral Agreement on Tarifs and Trade. GATT"이 생겼다. 통칭 브래튼우즈Bretton Woods 기관이라고 불리는 이 세 기관이 미국의 전략을 실행하는 데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245

부채의 수렁으로 더 깊이 빠지다

새로운 협정이 나올 때마다 국가들은 글로벌 기업이 들어와서 일으키는 해로운 결과에 대해 설명하고 책임지도록 책무를 강제할 수 있는 역량을 잃었고, 따라서 책무성 없는 군주의 지배가 책무성 없는 기업과 금융시장의 지배로 바뀌는 과정이 촉진되었다. 이것은 거대 기업의 소유자 및 경영자 계층이 민주주의를 상대로, 또 부를 실제로 생산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선전포고도 없이 벌인 계급 전쟁이었다. 이 전쟁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요즘 선호되는 무기는 화폐 시스템인데, 화폐 시스템은 세계의 실질적인 부 중 점점 더 많은 부분을 소수 지배 계급의 통제 아래로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넘기는 데 활용되고 있다.

화폐가 지배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페 시스템에 제국의 조직 원리가 어떻게 결합해 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화폐의 지배는 기업 금권귀족의 이익에 더욱 잘 복무한다.

궁극의 사기

3장에서 언급했듯이 화폐는 무無에서 창출되는 회계상의 숫자다. 화폐 자체는 실질적이거나 내재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다. 화폐의 가치는 우리가 그것이 가치를 가진다고 간주하고 기꺼이 그만큼에 해당 하는 실물을 교환하기로 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현대 금융 시스템에서 은행은 부채를 발행해 화폐를 창출한다. 은행은 빌리는 사람 이름으로 계정을 열고 부채 액수에 해당하는 금액을 입력한다. 본질적으로 은행은 무無에서 창출한 돈을 빌려주고, 거기에 시장에서 매길 수 있는 만큼의 이자를 매긴다. 또한 은행은 주택, 농장, 기타 실물 부동산을 담보로도 대출을 할 수 있는데, 빌려간 사람이 갚지 않으면 담보로 잡은 실물 부동산을 압류한다.

여기까지는 현대 화폐 시스템의 작동 중 비교적 명백하고 많이 알려져 있는 부분이다. 더 복잡하고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부분은, 느슨하게 규제되는 기업, 은행, 금융시장이 회계 부정, 피라미드식 대출, 금융 버블, 그 밖의 금융 투기와 조작 기법을 이용해 주식, 토지, 주택 같은 금융 자산의 시장가치를 인위적으로 부풀릴 수 있는 능력과 관련이 있다. 이러한 금융 게임은 사회에 아무런 가치도 기여하지 않지만, 지배계층의 구매력을 상당히 늘려주어서 이들이 사회의 실질적인 부에 대해 주장할 수 있는 몫이 부를 실제로 생산하는 사람들이 주장할 수 있는 몫에 비해 크게 늘어나게 해준다. 메커니즘이 눈에 잘 보이지 않고 사기 당하는 사람이 자기가 사기 당하고 있는 줄을 모르기 때문에, 이것은 가장 성공적인 금융 사기다. 사기 당한 줄 안다 해도 사기 당한 사람 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이 사기는 합법적인 데다 문화적으로도 용인 되고 있기 때문이다. 250

돈이 돈을 낳는다

금융 메커니즘을 통해, 실질적인 자산에 대한 통제는 실제로 노동을 하며 부를 생산하는 사람들에게서 화폐 수익으로 생활하는 소유자 계급에게로 가차없이 넘어간다. 일례로, 미국에서 은행 규제가 완화되면서 비은행 기업들이 은행을 만들고 정부의 예금 보험이 보증하는 예금을 끌어들여서, 일반적인 자본 시장에서 자신의 신용도로 대출을 받았을 경우보다 훨씬 낮은 이율로 스스로에게 상당한 금액의 돈을 대출할 수 있었다. 그 다음에 빌린 돈을 자기 은행의 예금으로 재활용해서 자기 자신과 다른 이들에게 더 많은 대출을 일으킬 수 있는 새로운 준비금으로 활용했다. 최소한의 초기 투자만으로 상당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정부가 보증한 금융 피라미드나 마찬가지다. 이것은 또 하나의 속임수이고 다른 이의 돈으로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화폐 게임이다.

금융 자본주의의 이상은 독점 지대를 거두거나 금융 버블에 투기를 하거나 부채의 피라미드에 투자를 해서, 가치 있는 무언가를 실제로 생산할 때 감수해야 하는 불편함 없이 돈을 버는 것이다. 21세기를 대표하는 초대형 금융 스캔들이 드러나 불명예스럽게 도산하기 전까지, 엔론Enron이 이 이상을 전형적으로 보여준 바 있다.

만연한 편향

화폐 시스템의 소유자 계급 편향은 너무나 만연해 있고 자연적인 질서로 받아들여지고 있어서 우리 대부분은 이를 의심해보지조차 않는다. 예를 들어, 지배적인 화폐 문화의 논리에 따르면 공공과 민간의 모든 경제적 의사결정은 선택지에 있는 것 중에서 무엇이 가장 높은 수익을 산출할지를 기준으로 내려져야 하는데, 이 방식은 대체로 돈을 가진 사람들에게 유리하게 작동한다.

편향의 또 다른 원천은 중앙은행이다. "자유시장" 경제라고들 하는 경제에서 노동 비용을 아래로 내리누르는 압력을 유지하기 위해 금융 시장을 관리하는 것이 중앙은행의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기능 중 하나다. 완전고용에 가까워져 임금이 상승할 것 같으면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 압력을 낮추기 위해 금리를 올려 경제를 둔화시킨다. 겉으로 말해 지지 않는 결과는, 노동자의 생산성 향상으로 발생한 이득이 노동자에게 가기보다 자본 소유자와 기업의 이익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금리를 낮춰 자산 가격이 부풀려질 때도 이러한 결과가 발생하곤 한다). 251

☆ 7장 정리:
두 번째 천 년의 후반기에 군주정에서 민주정으로 서서히 전환이 이뤄지면서 칼의 힘에 의한 제국적 통치에서 돈의 힘에 의한 제국적 통치로의 전환도 함께 이루어졌다. 새로운 지배자들은 황제의 망토가 아니라 비즈니스맨의 양복을 입고 자신의 권력과 특권에 대한 민주주의의 도전을 수완있게 회피하기 위해 더 섬세한 전술을 구사했다.

이 전환은 유럽에서 중세가 무너지고 국민국가가 생기면서 시작되었다. 강력한 이웃과의 직접적인 무력 충돌은 최소화하되 제국적 지배는 더욱 확장하고 싶었던 유럽의 국민국가들은 지구의 먼 지역으로 눈을 돌려 약한 국가들을 지배함으로써 팽창 야욕을 충족시키려 했다. 유럽의 국민국가들은 충성스러운 장수들을 제국적 정복의 대리인으로 삼기보다 모험가에게 돈을 대고 해적에게 노략질을 의뢰하고 칙허로 기업체를 설립해 국가가 내린 독점적 권한을 가지고 공식적이지만 독자적으로 일하는 범죄 조직으로서 활동할 수 있게 했다. 영국의 국왕들은 주로 의회의 귀족들이 국왕에 대해 행사하려 하는 민주적 감독 권한을 회피하면서 현금 수입원을 확보할 목적으로 기업 칙허를 활용했다. 오늘날의 상장기업은 국왕의 칙허로 설립된 기업들이 수행했던 임무를 이어받았다. 현대의 초거대 기업들은 어지간한 국가보다 강력한 경제적, 정치적 권력을 행사하며, 여전히 자산가 계급이 민주적 책무성을 요구하는 제도를 회피하게 해주는 제도적 수단으로서 기능한다.

화폐 시스템은 지배 계급이 중간 계급과 저소득 노동자 계급을 대상으로 전쟁을 벌일 때 심지어 기업보다도 강력하고 성공적인 도구다. 화폐의 창출과 배분를 통제함으로써 지배 계급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지구의 자원을 거의 전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

민주주의의 가면을 쓰고 있지만 제국은 건재하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꼭 필요하지만 여전히 손에 잡히지 않고 있는 이상이다. 우리는 제국이 남겨놓은 유산을 직시해야 하듯 이제까지 민주주의의 실험이 가렸던 한계도 직시해야 한다. 이를 위해, "게임에 참여하거나 아니면 죽거나"의 판에 올라가야 하는 제국의 논리를 깨고 나오려 노력했던 초창기 사례 하나를 살펴보기로 하자. 252


제8장 아테네의 민주주의 실험

국가와 교회 모두의 절대주의에 강하게 도전하면서, 계몽주의는 1680년 경에 잉글랜드에서 시작되어서 빠르게 유럽 북부 국가 대부분으로 퍼졌고 점차로 프랑스가 계몽주의의 중심지가 되었다. 가장 영향력 있는 계몽주의 정치철학자로 존 로크John Locke(1632-1704)와 장 자크 루소Jean-Jacque Rousseau (1712-1778)를 들 수 있다.

로크는 개인의 재산권을 양도 불가능한 자연권으로서 보호하는 것을 핵심에 놓는 자유주의의 이상을 정식화했다(로크에게 재산은 생명, 자유, 토지 등을 포괄하는 광범위한 의미였다). 로크는 궁극적으로 사람들이 자신의 재산권이 질서 있게 보장되도록 정부를 세우기로 합의하고 특정한 권력을 정부에 양도할 것이라고 보았다. 정부가 국민에 의해 명시적으로 부여된 권한만을 행사하게 되어 있으므로, 정부의 권한이 비대해지거나 정부가 권력을 남용하면 국민은 정부를 전복시킬 수 있었다. 자산 소유 계급들은, 재산권이 자유의 토대라는 개념을 강 조하고 정부의 목적이 더 큰 공공선에 복무하는 것이라는 개념은 축소하면서, 정부의 역할과 자유에 대한 로크의 이론을 특히 열렬히 받아들였다. 그들의 특권에 민주적 합법성의 색채를 입힐 수 있었기 때문이다. 272

☆ 8장 정리:
기원전 388년에 고대 아테네에서 민주주의 실험이 끝나고 1776년에 미국 독립선언으로 서구 문화권에서 그 다음의 민주주의 실험이 시작되기까지 2000년이 넘게 걸렸다. 이 긴 간극은 민주주의를 새로운 성숙의 수준으로 진전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직면한 거대한 도전을 냉철하게 상기시켜준다.

아테네가 민주주의로 전환한 것은 극단적으로 심화된 불평등이 일으키는 사회적 긴장을 해외 정복을 통해 김을 빼 해소하기보다 경제적 정의를 강화할 국내의 경제 개혁으로 해소하고자 한 현명한 지도자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는 독재자로서 전권을 가지고 개혁을 수행했다. 부분적이긴 했지만 이러한 경제적 개혁은 이후의 정치적 개혁에 토대가 된 경제적 민주화의 상당한 진전이었다.

불행히도,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성숙에 이르지 못했다. 가장 전성기였을 때도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소수 특권층의 권리를 보장하는 데 만 관심을 기울였고, 여성, 노예, 외국계 등 다수는 모든 이가 출생과 함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갖는다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부인 당했다.

아테네의 위대한 정치철학자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텔레스는 개인의 권리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하지 않고 좋은 사회의 속성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그들에게 좋은 사회란, 적합한 교육, 원칙 있는 성찰, 시민적 참여를 통해 개개인의 정신을 더 고차원의 가능성들로 온전하게 발달시킬 수 있는 사회를 의미했다. 이러한 사회에는 성숙한 리더십이 필요하므로 "누가 현명하고 성숙한 지도자감인지는 누가 결정하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가능한 한 많은 수의 잘 교육받고 참여적인 시민들의 집합적 지혜에 의해 결정되게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보았다. 즉 그는 모든 종류의 공적인 삶에 활발히 참여하는 시민들이 발휘하는 "전체의 리더십'이라는 개념을 정식화했다. 그의 비전(성차별주의, 인종주의, 계급차별주의는 빼고)은 성숙한 민주주의의 이상이다. 더 성숙한 민주주의와 덜 성숙한 민주주의의 차이를 구분하는 것은 근대 시기에 최초로, 그러나 부분적이었던 민주주의 실험을 한 나라[미국]가 현재 직면하고 있는 도전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계몽주의 철학자들의 사상은 민주적 열정을 재점화했고 현대 민주주의의 정치 제도를 구성하는 데 주된 공헌을 했다. 그러나 아테네의 정치철학자들과 달리, 로크, 루소 등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정부의 역할을 주로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것으로 한정했다. 그들은 완벽함을 추구해갈 수 있는 인간의 가능성, 좋은 사회, 시민적 참여. 그리고 모든 사람이 지구공동체의 더 성숙하고 탄탄한 민주주의에 토대가 될 지혜와 도덕적 판단력을 갖도록 지원하는 국가의 역할과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덜 확장적인 견해를 보였다. 이로 인해 근현대의 민주 주의 실험은 여러 문제를 겪어왔다. 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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