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적 관점에서 본 여성주의 인식론_고미송

불교와 여성주의가 만나고 교차하는 지점

백_일홍 2017. 7. 3. 15:07


10장. 불교와 여성주의가 만나고 교차하는 지점


비록 앞에서 '방 안의 현실을 개선시키는 문제에서 출발해야지 방 자체가 감옥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불교적 진리를 출발점으로 삼을 수은 없다'고 하였지만, 방 안의 현실을 개선시키는 논의들 자체가 이미 공성의 개념을 현실변화의 방법론으로서 등장시켜 활용하고 있다. 


해체적 이론들은 방 안의 특정 사물과 사람들이 실체가 아님을 부각시키고 있고 이는 반야바라밀 즉 공성의 지혜를 깨닫기 위한 수행이 일부라고 볼 수 있다. 즉 현실을 변화시키는 방법론으로서 억압적인 개념들에 대한 해체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


여성주의, 해체론, 불교의 공통적 측면 : 지배권력에 의해 구축된 억압적인 관념과 제도의 실체성을 해체하는 일


불교적 수행에 하이가 있다면 상황을 권력구도로 이분법적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 

권력구도로 인식 -> 피해자 주체는 인시대상(권력주체와 그 부산물)을 해체시키는 데에 역점을 두게 되지만 이것은 상호의존적인 두 항목 중 한 가지만을 공략하는 일임. -> 끝끝내 권력관계로 남을 수 밖에 없다. -> 피해자 주체가 자기 스스로를 해체하지 못하는 한 권력구도는 보다 은밀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재생산될 수 밖에 없어.


불교적 수행의 가치 : 피해자는 가해자를 제거함으로써 해방될 수 없다. 왜냐하면 피해자와 가해자의 이분법이 통째로 폐기되어야 하기 때문. 이를 위해 피해자 주체가 스스로에 대해 성찰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됨. 상황을 인식하는 방식에 있어서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전제하며 출발하는 그 지점이 가장 문제 삼아야 할 부분임.


토대주의 비판 : 버틀러. 주체가 정치학에 선행한다고 주장되는 바로 그 지점이 가장 정치적임. 피해자 주체가 세우고 있는 '보이지 않는 토대'는 바로 자신이 억압받고 있다는 전제. 자신이 아무런 의심없이 출발하고 있는 그 지점을 의심해보는 일이 수행자적 태도의 핵심임.

예. 어느 여성이 직장에서 느닷없이 해고당했을 경우,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일어난 경험이라는 사실이며 바로 자신의 마음을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라는 점을 인식하는 일이다. 즉 일단 '외부'라는 것이 없음을 받아들이는 데에 성공하고 나면 이 직장을 떠나게 된 것이 어떤 인연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스스로에게 보다 설득력 있는 원인을 발견할 여지가 생김.

... 인과의 매커니즘에 의해 현실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아는 마음이라면 일어난 사건에 대한 저항 심리는 줄어들 수 있어. 그러나 저항하는 방식으로 대할 경우 -> 스스로를 피해자로 창조하는 일이 됨. 피해자라는 '사실'에서 현실을 인식하기 시작해버림. 이것이 피해의 경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님. -> 일어난 사건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일이 필요하며 나아가 감사하게 여김으로써 현재를 과거로부터 정화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불이'를 인식하고 깨닫는 데에 실패하는 지점이 곧 카르마가 발생하는 지점이며 억압구조가 재생산되는 지점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젓이 중요함. 억압구조란 결국 집단무의식의 무지구조다.(불교의 무명)


공사상은 병의 예방적 차원에서 힘을 발휘함. 인식론적 예방접종.


대립적인 투쟁의 결과가 자신의 고통으로 되돌아옴을 경험할 때마다 인식의 전환이 일어날 기회는 항상있으며, 이때 투쟁의 수위를 높이는 대신에 대립적 인식론을 새롭게 보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다면 의식은 진화하게 될 것임.


일체 모든 현상이 공하다는 것은 현상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상계가 사실은 너무나 쉽게 변화될 수 있고, 그렇게 할 자유와 능력(불성)이 우리 모두에게 갖추어져 있음을 의미함.


여성주의가 불교와 만나는 지점은 공성에 대한 이해와 이에 기반한 실천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성주의가 불교와 교차해서 다시 멀어지는 지점은 공성의 체득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성주의는 상대적인 선을 추구하고 있는 반면, 불교는 궁극적인 자유를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이분법을 해체하는 길에 들어선 이상 여성주의는 어떤 형태로든 자가당착의 문제와 끊임없이 직면하게 된다. 이분법과 싸우는 모든 형태의 노력들은 언젠가 자신의 총구가 한 바퀴 돌아서 자신에게로 겨누어지는 상황에 이른다. 


자아중심성에 의한 이분법이 남아있는 한 역사는 다만 세련되게 반복될 뿐이기 때문에 궁극의 자유에 대한 관심은 모두의 진실한 과제라고 할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