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심의 철학_한자경

1부_1장. 나는 누구인가?

백_일홍 2018. 11. 20. 09:28

한자경, <일심의 철학_1부. 1장>

 

1.자기동일성의 물음

 

나의 자기동일성은 무엇을 통해 확보되는가?

자아의 자기정체성 문제

'나는 나다'라는 자기의식을 갖는다.

 

2. 유전자 세포 또는 유전자 정보

 

전체 변화를 통해서도 동일하게 남아 있는 것은 세포핵에서 언제나 동일한 자기를 복제하여 자신을 보전하는 유전자임.

60조 개의 세포로 구성. 각 세포 안에 약 4만개의 유전자가 들어있음.

 

유전정보에 따라 형성된 단백질이 음식을 소화하고 산소를 호흡하여 에너지를 만들고 노폐물을 처리하는 생명활동을 하는 것. 유전정보가 자연의 자기대본임.

 

자기복제된 나, 동일유전정보에 따라 구성된 나도 나인가?

딸 A와 딸 B는 동일인인가?

두 딸 모두 나는 나다라는 자기의식을 가질 것임. 그래서 서로를 남이라 여길 것임. 동일한 유전자임에도 왜 자기의식은 다르게 나타나는가? 두 몸이 항상 같이 움직일 수 없는데 동일한 의식이 어떻게 유지될 수 있겠는가?

 

만약 인간이 유전정보에 의해 구성되는 존재라면 동일 유전정보에 의해 만들어진 인간은 동일인일 것.

 

각각의 세포가 모두 동일유전자를 포함함에도 불구하고 어느 세포는 피부세포로 어느 세포는 근육세포로 서로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사만개의 유전자 중 어느 인자가 활성화되고 어느 인자가 억제되는가에 따른 것이다.

 

특정 유전자의 활성화와 억제는 무엇에 의해 결정되는가? 현실적 인간을 형성하는 데에 결정적인 요인은 수많은 가능성으로서의 유전자의 존재가 아니라 그 많은 가능성 중 어느 유전자를 활성화시키는 가 하는 것이 됨.

 

유전자는 컴퓨터 게임의 프로그램. 한 게임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는가 하는 것은 프로그램만에 의해서가 아니라 실제로 그 게임을 수행하는 사람에 의해 결정됨.

 

3. 두뇌 또는 두뇌정보.

 

나는 나다라는 자기의식.

의식, 정신이란 무엇인가? 마음이란 무엇인가?

 

현대심리철학. 의식 또는 심리활동은 곧 두뇌활동임. 마음은 두뇌활동 결과 산출되는 이차적 효과일뿐.

 

두뇌는 단백질 세포로서의 하드웨어적 두뇌가 아니라 소프트웨어 즉 정보의 집합임. 마음이 간직하고 있는 수많은 생각과 느낌들, 과거의 기억들, 그것들이 나의 본질을 이룬다. 나는 바로 두뇌 속 정보임.

 

원본과 복제.체세포 복제와 두뇌정보 이식으로 만든.

원본은 여전히 자기동일성을 유지할 것이다. 그 둘을 동일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나?

 

4. 무심지심의 일심

 

의식 내용의 차원에서 나를 구하고자 하면, 의식내용들 또는 정보들의 흐름 이외에 나는 없. 그리고 그 차원에서 보면 나는 컴퓨터와 다를 바가 없다. 현재의 나의 생각 또는 느낌은 나의 안과 밖의 환경으로부터 내 두뇌에 이미 입력되어 있던 정보들이 불러 일으키는 효과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현재에 작용하지만, 그 나란 결국 과거의 사유의 흔척, 과거 느낌의 잔재, 과거로부터 이어지는 의식내용의 침전물일 뿐이다.

 

결국 의식내용과 구분되는 의식 자체, 마음내용과 구분되는 마음 자체라는 것을 어떻게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일반적으로 의식내용을 떠난 의식 자체, 마음내용을 떠난 마음 자체를 생각하지도 않고 찾지도 않는다. 의식은 언제나 의식내용을 갖고 있다. 그것이 우리 의식의 지향성이다.

 

의식내용과 구분되는 의식 자체, 또는 마음의 내용, 마음의 상과 구분되는 마음 자체가 바로 자아 자체라고 생각하며, 그 자아 자체의 진면목을 직관하고자 하는 사람은 바로 수행자 또는 명상가들이다. 그들의 도달하고자 하는 경지는 '무심의 심'이다.

 

* 무심의 심 : 마음의 상, 마음의 내용을 떠났다는 의미에서 그 마음 상태는 '무심'이지만 그 무심 상태에서 마음 자체를 직관하기에 '심'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 무심의 상태에 이르기 위해 그들이 밤낮없이 노력하는 것은 바로 이 마음에 떠오르는 내용, 두뇌에 입력된 정보들을 잠재우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 안에 내용 또는 정보를 담지 않은 마음 자체를 직관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은 곧 자신의 마음을 과거에 의해 규정받지 않고 생생한 현재로 남아 있게 하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비트겐슈타인의 명제 " 이 세계는 나의 세계이다 "

- 이 세계는 결국 우리의 두뇌에 입력된 정보에 따라 보여지고 읽혀지는 세계라는 것을 의미함.

이 세계가 나에 의해 보여지고 읽혀진 세계라면, 세계를 보는 나는 어디에 있는가? 세계를 보는 나는 그 나에 의해 보여진 세계 안에 다시 들어갈 수가 없다. 나는 세계를 보는 눈으로서 보여진 세계 속 어디에도 없다.

비트센슈타인의 결론은 "세계를 보는 눈은 그 눈 자신은 볼 수 없다" 마음의 자기인식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38)

 

수행자들은 바로 이 불가능에 도전하며, 마음의 자기인식을 꾀하는 자들이다. 현재의 마음을 과거의 인식내용, 과거의 정보들에 따라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현재로서, "영원한 현재"로서 포착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한 수행은 논리적이거나 개념적인 사유로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마음의 내용들을 의식에서 지워나가고 물밑듯 밀려오는 숱한 마음의 영상들을 저지하면서 오로지 일념, 내용없는 일념으로 마음 자체를 구하여, 어느 한 순간 정보와 영상 저편에서 신비롭게 떠오르는 마음 당체를 직관하고자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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