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성게_정화

제17구. 이사명연무분별(理事冥然無分別)

백_일홍 2020. 1. 8. 07:37

(법성게) 제17구.

이사명연무분별(理事冥然無分別)

이와 사가 하나되어 분별이 없으니

 

마음이 마음인 데서 보면 인식 주관으로

한정된 듯하지만 이 마음이 그대로 온갖 대상이 되고,

대상이 대상인 데서 보면 인식 대상으로 한정된

듯하지만 이 대상이 그대로 일체 만상으로 나툰 마음이니

마음에서 대상을, 대상에서 마음을 나눌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관계를 명연,

곧 차별을 꿰뚫고 혼연일체로 하나된다고 하였습니다.

 

(법계의 노래)

 

하나 하나의 모습(事)들은

인연에 따라 제 모습을 드러내면서 비우고 있지요.

 

비움이 없으면 드러날 수 없으며

드러남이 곧 비움이 되는

관계 속의 무상한 변화가

인연의 흐름이기 때문입니다.

 

인연의 비움이 이理이며,

비움이 모습으로 드러난 것이 사事이므로

비움은 모습을 갖지 않은 것 같으나

 

모습을 통해서 비움이 드러나고

비움을 통해서 모습이 살아나니

비움과 나툼은 그 자체가 하나의 양면일 뿐

 

비움만으로 또는

나툼만으로

존재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앞서 생사와 열반이

한 치의 틈도 없이 같다고 한 것 처럼

 

곧 스스로를 비워내는 이理야말로

스스로는 나투게 하는 힘이며

스스로를 나투는 모습이야말로

비움을 값지게 하니

 

비움과 나툼은

순간순간마다 함께 하면서

법계의 모습을 이룹니다.

 

그러므로

바움의 이도

나툼의 사도

한쪽만으로는 제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이도 이를 비우면서 이가 되고

사도 사를 비우면서 사가 되므로

이라고도 사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

이가 되고

사가 되나

 

스스로로를 비우는 데서 보면

이가 그대로 사가 되고

사가 그대로 이가 되어

 

이와 사로 나눌 수 없는 데서 나투는

생명의 아름다움

 

(강설)

원융한 한모습이니

 

온 우주 그대로가 비로자나 부처님의 세계인 것을 본래면목이라고도 하고 이理라고도 하며 또한 마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화엄에서 삼계가 단지 마음(삼계유심)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마음을 거울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상을 떠나 거울만으로 존재할 수 있는 마음이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대상이 마음의 얼굴이라 하며 '두 거울이 마주 보고서 서로 비춘다'라고 비유를 들어서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마음과 대상이 마음이라고 하는 하나된 장에서 마음과 대상일 때의 마음이 여기서 말하는 마음이지, 대상을 떠나 홀로 존재할 수 있는 마음이 아닙니다.

 

이제 마음의 얼굴을 알 수 있습니다. '갑'이 보이면 '갑'이 마음의 얼굴이요, '을'이 보이면 '을'이 마음의 얼굴입니다. 잠시도 멈추지 않고 모든 모습으로 나툰 마음의 얼굴이 또한 그대로 대상의 얼굴인 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마음은 마음이고 대상은 대상이니, 마음과 대상이 인연의 장에서 하나이나 마음이 있으므로 대상이 있고, 대상이 있으므로 마음이 있다는 근본 연기의 법칙이 여기서도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174

 

이 원리가 이理인데, 이 이理가 성립되는 까닭도 마음이 마음이 아니고 대상도 대상이 아닌, 곧 마음으로 독립된 실체가 없고 대상으로 독립된 실체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마음이 마음이 아닌 데서 마음이며, 대상도 대상이 아닌 데서 대상임을 여실히 아는 것이 스스로를 아는 것입니다. 174

 

마음이 마음인 데서 보면 인식 주관으로 한정된 듯하지만 이 마음이 그대로 온갖 대상이 되고, 대상이 대상인 데서 보면 인식 대상으로 한정된 듯하지만 이 대상이 그대로 모든 만상으로 나툰 마음이니 마음에서 대상을, 대상에서 마음을 나눌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관계를 명연, 곧 차별을 꿰뚫고 혼연일체로 하나 된다고 하였습니다.175

 

연기실상의 한 법계에서 보면 이理와 사事는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낱낱 현상의 나툼인 사事 그대로가 연기실상의 이理이기 때문입니다. 곧 이가 있고 사가 있는 것도 아니며 사가 있고 이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理와 사事는 원융한 한 모습이며, 사事를 관통하고 있는 이理인 공에 의해서 사사事事가 다시 원융한 한 모습이 됩니다.

 

이 사사事事에 원융한 삶이 삼매의 삶이며, 무량한 여래의 생명이 중생과 사물마다에 그대로 나툰 것입니다. 온갖 모습이 그대로 부처님의 나툼이기 때문에 사물과 사물, 중생과 중생의 원융한 모습이 아니라 부처님과 부처님의 원융한 모습입니다. 176

 

이를 부처님의 덕상인 지혜광명이 서로서로 걸림없이 중중무진으로 겹쳐있는 것이라 하여 불계 연기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행자가 보리심을 낼 때는 수행자의 중생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과 부처님의 지혜광명은 불성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수행하는 마음 그대로 불성으로, 불성이 수행에 의해서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말하면 한 마음 한 중생 한 사물 그대로가 불성이지, 그 안쪽 어딘가에 숨어있는 것이 불성이 아닙니다.1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