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성게_정화

제20구. 빈출여의부사의(繁出如意不思議)

백_일홍 2020. 1. 11. 07:20

(법성게) 제20구.

빈출여의부사의(繁出如意不思議)

뜻대로 부사의함을 나타내고

 

해인삼매 가운데 나타나는

모든 중생들과 사물들의 걸림 없는세계,

이와 같은 온갖 생명들의 향연이

빈 마음자리인 여의如意에서 뜻대로

나툰 것입니다.

 

(법계의 노래)

 

생각이란

삶의 절단면만을 보는 것이기에

생각을 떠나지 않고서는

삶을 그대로 볼 수 없겠지요.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제대로 볼 수 있는 기연마저 없으리니

생각해도

생각하지도 않아도 문제

 

그래서 생각없이 그저 지켜보거나

매이지 않는 생각으로

생각 너머를 보는 것을

수행이라 하며

 

여기에서 번개처럼 일어나는 통찰이

그대로 삶의 전체가 될 때

생각을 떠났으면서도

생각 그대로 절단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며

생각을 넘어서는 부사의한 생각이 되리니

 

이때에야 비로소

뜻대로 사는 것이

부사의한 부처님의 활동이 되지요.

 

(강설)

빈 마음, 걸림 없는 세계로

 

괴로움의 세계는 자아의식에 의해 시공이 제한된 세계입니다. 이 세계가 무아, 무상을 여실히 아는 수행에 따라서 제한된 시공을 벗어나게 되는 순간, 어느 때 어느 곳을 가리지 않고 한없는 지혜광망의 부처님인 비로자나 부처님이 나투는 것입니다. 비로자나 부처님의 세계는 의意에 따른 시공의 제한인 업이 지멸된 세계입니다. 비로자나 부처님의 세계는 의에 따른 시공의 제한인 업이 지멸된 세계입니다. 190

 

이와 달리 중생세간이란 의意의 닫힌 마음에 의해 자신뿐만 아니라 세계 자체를 제한시키고 있기 때문에 모든 일에 걸리고 있습니다. 이 의의 걸림을 벗어난 것이 '여의如意'입니다. 때문에 모든 보배 가운데 보배는 여의如意가 됩니다. 이것을 <금강경>에서는 "삼천대천세계를 칠보로써 보시하는 것보다 빈 마음의 공덕이 더 크다"고 하셨고, <육조단경>에서는 " 빈 마음이 근본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 빈 마음이 여의如意입니다.

 

앞서 끊임없이 바뀌는 무상이 그 극점에서 부동이고 이 부동이 오히려 온갖 동의 자리라고 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빈 마음이 온갖 공덕을 내는 바탕이 됩니다.

 

세상의 가장 값진 보배라 해도 그 가치는 제한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가치의 잣대를 재는 인간의 마음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빈 마음은 아무런 제한 없는 마음이고 그 자체로 시공을 넘어선 마음으로 이곳에서 온갖 생명의 창조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생명은 마음이 고향이고 마음은 드러난 생명들의 모습만큼이나 다양한 터전을 다 마련하니 마음이란 한정된 영역이 없기 때문입니다.

 

빈 마음의 한정 없는 생명창조의 모습은 중생의 제한된 의식을 넘어선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쉽사리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빈 마음의 한없는 생명인 지혜광명의 세계를 알고자 할 진대 생각 생각에 그 알고자 하는 일념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그러다가 일념 마저 사라져 무념이 되었을 때 알고자 하는 마음자리가 곧 한없는 생명의 지혜광명이 되어 그 자리에 부처님의 빛을 온몸으로 나투게 됩니다. 191

 

무념의 빈 마음이 됐을 때는 온갖 시절인연을 따라 갖가지 생명들의 세상을 걸림 없이 펼치니, 화엄세계를 뜻하는 해인삼매 가운데 나타나는 모든 중생과 사물들의 결림없는 세계가 그것입니다. 이와 같이 걸림 없이 펼쳐지는 온갖 생명들의 향연이 빈 마음자리인 여의如意에서 뜻대로(如意) 나툰 것입니다.

 

뜻대로 생각할 수 없는 생명들의 향연을 풍성하게 나투는 것이 해인삼매입니다. 해인삼매를 마음대로 드나드는 사람을 능인이라 하는데, 능인의 마음 자리인 여의보배에서 뜻대로(如意) 낱낱 모습들이 제 모습대로 나툰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의 보배인 마음자리가 중생의 마음자리를 떠나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중생의 마음자리가 그대로 능인의 마음자리입니다. 중생과 능인은 공성의 마음자리에서 아무런 다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화엄에서 마음과 부처와 중생이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착한 마음이 일어나면 그 마음을 꿰뚫어 보고 악한 마음이 일어나면 또 그마음을 꿰뚫어 보십시요. 그때는 착한 마음 그대로 부처님이요 악한 마음 그대로 부처님입니다. 이때 선악의 분별이 사라지고 빈 마음의 법계 부처님이 온갖 마음으로 나툰 것이니 마음 마음이 부처님의 세계요 낱낱 중생과 사물들 또한 부처님의 몸입니다.192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부동심으로 온갖 마음을 꿰뚫어 보는 것입니다. 마음이 대상에 따라 움직이면 안됩니다. 그때는 이미 스스로의 마음이 아니라 마음 밖에 또 다른 마음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마음이 마음이 아니니 빈 마음에서 나온 모든 마음은 그대로 법계 부처님의 여의보배인 마음자리에서 뜻대로 나툰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법성게의 두번재 게송에 모든 법은 움직이지 않는 본디의 고요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마음을 조주 스님께서는 평상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일체 현상이 마음에서 일어났으나 마음은 한 번도 고요한 모습을 잃지 않고 부동으로 있습니다. 이 또한 중생의 제한된 의의 작용인 망념으로는 알 수 없으니 부사의가 아닐 수 없습니다. 1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