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무론_김영민

연정, 혹은 '동무'가 아닌 것

백_일홍 2020. 1. 21. 11:22

연정, 혹은 '동무'가 아닌 것

 

연정 역시 동무라는 미래적 지평 속에서 새롭게 재구성되어야 할 것이라는 전망.

동무가 연정을 향한 간이역으로 기능하고, 연정은 동무를 포기할 수 있는 관계의 정점으로 화석화되는 이 양식화된 타락이 우선적으로 문제시되어야 한다.

 

오늘날의 연정 역시 중심과 순수의 심리학, 고백과 소문의 언어학, 욕망과 권력의 사회학, 관습과 귀속의 정주학에 완벽하게 포섭된 상태라면, 내가 꿈꾸는 동무의 전망은 미래학으로 가차없이 연기될 수밖에 없다.

 

연정과 동무 사이의 실천적이며 현명한 '지평융합'의 가능성을 탐문하려는 이글.(책, 동무와 연인 참고)

 

대체로 연대 사회의 동선은 연인(배우자)과 친구, 결혼과 직장, 그리고 가정과 회사로 양분되었다. 이 두 가지 회로에서 이탈하는 자들은 심지어 법적 보호역이나 사회안전망으로부터도 종종 탈락한다. 남성들이 일과 친구 들 속에서 떠밀려 다니고 여성들이 사랑과 가족들 사이에서 회전하는 전래의 도식은 이 낡은 회로와 결탁한 것이다. 성애는 혼인제도와 어긋나며 혼인제도는 또한 사랑과 무관하게 굴러간다. 그리고 이 결탁의 사소한 반복은 '진리'가 되고 '정통 무의식'이 된다.

 

이 같은 사회제도적 배경 아래에서, 우선 연정이 동무가 아닌 것은 무엇보다도 그것이 습관처럼 '진리'를 말하기 때문이다. 동무란 무엇보다 진리를 말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관계의 방식이며, 쉼없는 '재서술'의 수행적 일리(책, 진리, 일리, 무리 참고)들로써 생활의 무늬를 조금씩 겹쳐가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동감과 동지의 정서를 유일하고 특권적으로 교환함으로써 가능해진다고 믿는 관계의 환상이 어제의 연정이었다면, 심리주의적 합일과 그 관습적 의례에서 벼락처럼 뛰쳐나와 열정적 재서술의 무늬를 나누면서 더불어 각자의 세상을 바꾸어나가는 서늘한 보조가 내일의 연정일 것.

 

내가 말하고 실천하는 동무는 연인과 타인, 가족과 회사, 친구와 남 사이에서 뻔뻔스레 진자운동을 반복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기율과 그 화석화된 상상력을 점점이 부수면서 끝끝내 진리를 말하지 않고 함께 걸어가는 관계일 뿐이다.

 

진리와 사랑과 의미와 가치를 '말하지 않으며'(알면서도 모른 체하며) 극진하게 살고 걸었던 동무들의 은폐된 작은 역사에 동참하는 길이다. 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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