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무론_김영민

산책 2

백_일홍 2020. 1. 28. 11:17

산책 2


9장.공원, 혹은 공원대

1.'이성의 빛'에서 물러나와 '존재의 빈터'를 체험하는 시공간의 판타지


무엇보다 산책은 스캔들의 고통을 희석하거나 숨기기에 쓸모가 있다. 대체로 스캔들의 본서이란, 다독아면 다독일 수록 더 불거지는 남자의 성기처럼, 캐면 캘수록 확산된다는 데에 그 저력이 있다. 


산책의 현명함은 우선 '의도의 바깥'으로 외출하는 여유, 그리고 그로 인한 다른 삶의 가능성에 대한 사유를 선사하기 때문이다. 


그 모든 산책로에서 우리의 '마음'을 끄는 것은 모두 바로 그 '마음'이 없는 자연물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노릇이다. 의도 속에서 회전하며 복제되는 스캔들의 피해자들, 곧 인생에 지친 자들이 산책에 나서려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사실 상처의 가장 명백하고 치명적인 특징은 반복이며, 산책은 무엇보다도 상처가 반복되는 일상적 삶의 계선을 끊어버리는 느림의 실천 속에서 그 효용가치를 얻는다는 것이다. 


물론 그 '느림'은 특정한 물리적 속력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 방향까지 담아내는 속도(velocity)에 가까운 것이며, 더 나아가 그 속도를 각자의 삶이 결절하는 모습으로 다룸으로써 비로소 드러나는 개념이다. 


어떤 공간 속에 참여함으로써 상처를 치유하고 각자의 삶이 일상의 속력과 방향을 재조정하면서 자그마한 결절을 맺으며 미래를 재조명할 수 있다면, 공원, 혹은 공원으로서의 그 사회적 가치는 충족될 수 있을 것이다. 


그 텅빈 원 속에서, 자본과 욕망의 계선을 쫓아 질주하던 자신의 삶을 중단시킬 수 있는 여유, 그리고 그 삶의 계선과 방향을 다시 음미하고 조정할 수 있는 지혜를 얻는 공원으로서의 공원 말이다. 


공원의 뜻은 '이성의 빛'에서 물러나와 '존재의 빈터'를 체험하는 시공간의 판타지에 다름 아니다. 


2. 아파트 속의 자연과 시골, 공원


공원 산책로의 인위성에 미루어 인생의 근원적 우연성을 성찰해보는 일에는 그 나름의 뜻이 있다. 

그것은, 우리네 일상의 세속이 속절없는 우연이라는 사실에 대한 역설적 깨달음이다. 그리고 그 우연이 제도와 관습과 체제와 이데옹로기 속에서 깊이 은폐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우연의 바깥이 없다는 그 사실이 거꾸로 그 우연을 필연처럼 보이게 한다는 사실에 대한 겸허하고 예리한 배움이다. 


가정과 직장과 학교와 사원, 그리고 기업과 국가는 모두 한갓 역사의 우연일 뿐이다. 실은, 그 사실을 누구나 알기 때문에 곧 그 사실은 우리의 체질과 공동체의 공기 속에서 깨끗하게 잊혀진다. 우리가 24시간 의도와 결심, 욕망과 보람 속에서 아웅다웅 영위하는 이 자본제적 일상은 내 존재의 흩어짐과 비움을 쉼없이 유예하고 저지함으로써 그 의사 필연성의 신화를 계속하는 것이다. 


도시의 너머에 서정의 기억으로 엄존하던 시골은 산업화의 와류 속에 도시 속으로 흡수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시골은 도시 속의 공원으로, 자연의 시뮬라크르로, 상실된 서정의 추억으로 인형처럼 되살아났다.  <동무론> 323


3. 산책의 그 흩어짐, 산책의 그 빈터

산책의 그 흩어짐 속에서야, 우리의 일상의 흩어지지 않는, 아니 흩어질 수 없는 그 틀은 비로소 낮설게 되새김질된다. 그 산책의 빈터속에서야 소유와 욕망의 나르시시즘은 슬픈 과거처럼 기억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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