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깨칠 뻔하였다_김영민

깜냥을 키우는 대중적인 방법, 10가지

백_일홍 2020. 2. 8. 18:29

1. 우선 약속에 결결했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약속은 변덕과 변명에 내몰리는 에고를 잡도리하는 가장 평이한 방식입니다. 철학자들이 안이하게 '죽음의 연습'을 들먹이지만, 약속이야말로 죽음의 연습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2. 사린 중의 대인대화 관계에서는, 늘 설명의 자리에 서서 최선을 다하되, 변명의 자리를 힘써 회피해야 합니다. 변명은 대화적 합리성을 훼손할 뿐 아니라 결국 영혼의 독입니다. 제 아무리 화려한 변명도 돌아보면 지질하며, 제 아무리 정교한 변명도 정신의 건물에는 누수일 뿐입니다.

 

3. 사린 중 주변 물건과 동물에 슬금하게 응대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미-늘 개입하고 있는 내 존재를 명찰할 수 있어야 남의 자리에 박진하는 동정적 혜안이 열립니다. '내 탓이다!'를 염불처럼 외는 게 아닙니다. 자기-개입의 형식과 그 정도를 정밀히 추적하는 훈련이 우선입니다.

 

4. 낭독의 버릇을 일상화시켜 정신을 단단하고 맑게 유지하도록 애쓰기 바랍니다. 낭독은 실효성이 높은 훈련이며 마음이 들고나는 과정을 순화하거나 그 충일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특히 '(대화적) 죽어주기'와 '불천노'의 밑거름이 될 수 있지요. 그러나 낭독의 재능은 더러 살도로 빠지기도 한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합니다.

 

5. 복종과 죽어주기, 그리고 오해-받기의 작은 실천들을 회피하지 말기 바랍니다. 논란이 잦아 상설하긴 어려운데, 주체화는 오직 어떤 형식의 '복종'(비움)으로만 가능합니다. 예들들어, 평등과 자유 등으로 주체화하는 길은 아예 없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주체화를 위해서도, 혹은 도량을 키우기 위해서도 '미치지 않는 곳에서 그치기'의 실천이 절실합니다. 각자 정한 형식과 범위 속에서, 그리고 가능한 여건 속에서 조금씩, 꾸준하게 실험해보기 바랍니다.

 

6. 질투와 허영과 냉소는 매우 구체적으로 접근해서 그 예봉을 꺽는 게 요령입니다.

 

7. 좋아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다스려야 - '없애라'는 게 아닙니다. - 합니다. '좋아하고 미워하며' 살아가는 게 오히려 상정이므로 더욱 주의해야 하며, 애증의 교호를 타인의 시선에서, 길고 넓은 맥락에서 읽어야 합니다. 특히 에고가 가장 쉽게 접근하고 즐기는 먹이가 좋아하고 미워하는 마음이라는 사실에 터해서, 마음을 비워 새로운 소식에 접속하려는 학인은 마땅히 '애증의 너머'를 희망해야 합니다.

 

8. 내 자신의 개입 - 이미, 늘, 돌이킬 수 없이 행해지고 이쓴 그 개입 - 을 깨단할 수 있도록 '수동적 긴장'의 시중을 잃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내 상처로 인해서야 남의 불행이 더 절실해지고, 내 취향에 붙박힌 탓에 그(녀)가 닮아 보이며, 내 애증의 진창 속에서 담론의 조화가 기승을 부립니다. '내 탓이요!'라는 게 아니지만, 못난 인간은 그 모든 만남의 기회를 제 깜냥의 소굴로 만듭니다.

 

9. 다음은 불천노입니다. 불천노의 성취는, 실로 변질과 누수를 그 본성으로 삼는 마음의 자리를 '정복'한 표징이라 여겨 부족하지 않습니다. 역시 여기 상설할 일이 아니지만, 천노-불천노의 과제는 삶과 죽음에 동시에 얹혀 있으니 극히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10. 사린으로부터의 신뢰입니다. 물론 신뢰의 관계는 ''방법'이 아니라 성취이긴 하지만, 이는 그 과정(생활양식)과 성취가 서로 면밀히 되먹히는 점에서 그 이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도량-깜냥'의 완결은 신뢰를 통해서 구체화됩니다. 나는 여기에서 인생의 비밀을 봅니다. 시계가 나를 신뢰하고, 고라니가 나를 신뢰하고, 네가 나를 신뢰하고, 신(들)이 나를 신뢰하시는 중에, 한 인생은 아름답게 지나갑니다. 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