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캘리번과 마녀

백_일홍 2022. 7. 29. 19:42

캘리번과 마녀 _ 여성, 신체 그리고 시초축적

실비아 페데리치 

 

 

한국어판 서문

 

원래 이 책의 목적은 역사적 분석을 근거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이 전근대적, 전자본주의적 세계의 유산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성차를 기반으로 새로운 사회적 기능을 충족시킬 수 있도록 재구성된 자본주의적 구성물임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맑스레닌주의 이론 - 가부장제가 '전통'의 산물이라고 주장함. 또한 자본주의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더 적은 사회적 권력을 갖는 것은 여성들이 '가정주부''로서 자본주의적 관계 외부에서 노동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맑스레닌주의의 정치적 귀결은 임노동을 통한 해방이었다. 

 

1972년 내가 가담했던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지불운동>, 우리는 여성해방 운동이 전략적으로 공장일자리 확보를 요구해야 한다는 가정에 반대함. 

 

자본주의가 도래하면서 가부장적 통치의 형태 및 기교가 질적으로 완전히 바뀌었고, 여성들의 가내부불노동은 결코 전자본주의적 잔재가 아니며 역사적으로 노동력을 생산 및 재생산하는 노동으로서 다른 모든 형태의 생산의 기둥이었음으르 주장했다. 

 

또한 자본주의에서 여성들이 남성에게 종속된 것은 "여성노동"의 "비생산적인" 본성 때문이 아니라 여성들이 임금을 받지 못하는 조건 속에 있기 때문이며, 남성의 지배는 임금이 남성들에게 부여한 권력에서 비롯된다는 주장을 펼쳤다. 

 

'생산적인 노동'이라는 맑스주의적 개념에 대한 비판과, 노동력의 생산에서 가사노동이 수행하는 긴요한 기능에 대한 인식은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지불운동> 캠페인을 만들어 낸 이론적, 실천적 뼈대 속에 이미 완전하게 펼쳐져 있었다. 9

 

또한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임금관계가 노동의 위계를 구조화하고, 권력을 노동계급의특정 부분으로 위임하며, 재생산 노동을 비롯한 어마어마한 착취의 영역을 감추고 자연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구조적 관계들, 그 중에서도 특히 새로운 성적 분업이구축되는 물질적, 역사적 과정에 대한 설명이 빠져 있었다. 이 공백을 채우는 데 맑스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자본> 세 권 모두가 마치 삶의 재생산이 의존하고 있는 일상적 활동들이 자본주의적 계급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듯이, 또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임금으로 구입한 상품을 그저 소비함으로써 스스로 재생산 할 수 있다는 듯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공백'을 채우고 누락된 '여성'의 역사와 '이행기'의 재생산 문제를 다루는 것이 <캘리번과 마녀>의 과제였다. 

 

이 책은 자본주의의 등장과 자본주의적 관계의 특수한 본성을 아주 톡특한, 그러면서도 동시에 중요한 관점, 즉 생명과 노동력의 재생산이라는 관점에서 재고해보기 위한 시도이다. 

 

대 우럽 마녀사냥과 핵가족의 등장, 여성의 재생산능력을 규제하기 위한 16-17세기의 법안을 새롭게 조명하고,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신체 및 노동에 대한 기계화와 복잡한 관계 속에 놓여 있는 기계론적 철학의 발달과, 

 

아메리카의 정복 및 식민화, 최초의 국제분업의 등장, 가격혁명 이후 유럽 도농민들의 빈곤화를 고찰한다. 

 

이 책은 자본주의의 진보성 신화를 해체할 뿐 아니라 자본주의는 노동력의 꾸준한 확장과 노동비용 절감에 몰두하기 때문에 여성의 노동을 비롯해서 그 노동이 생산해낸 주체들과 그들의 노동을 천대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 준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여성의 신체와 재생산능력을 통제함으로써 자궁이 노동력 생산의 기계로 기능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폭력과 야만적인 힘뿐만 아니라 임금관계의 매커니즘을 통해 조직된 새로운 위계질서와 불평등을 성, 인종, 연령을 따라 도입해야 한다. 

 

세계 경제의 지구화, 

시장관계의 확산으로 인해 여성들의 삶과 재생산 활동이 평가절하되고 공동체적 관계가 해체된 현상이 새로운 마녀사냥의 뿌리에 있다. 다른 한편 여성의 신체를 통제하려는 시도는 훨씬 더 많은 전선에서 벌어지고 있다. 여성의 높은 '출산율'은 빈곤의 소치로 비난받고 있으며, 생명을 재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창조하여 여성의 신체에 의존하고 있는 자본을 해방시키기 위한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11

 

이제는 시초축적이 결코 자본주의 여명기에만 국한되지 않는 자본주의적 관계의 구성요소이고 특히 위기의 시기에 자본관계를 재규정하고 주체성을 재주조하며 노동자 집단을 순수한 노동력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사용되는 전략이라는 점이다. 지금까지의 설명은 모두 시초축적을 성적, 인종적으로 규정되지 않은, 추상적인 사회적 주체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맑스의 분석은 노동의 위계와 차별의 여러 층위를 만들어 내는 것이, 생산수단의 파괴만큼이나 자본주의의 구성 및 영속에  중요하고, 실제로 계급관계 규제에서 생산수단의 파괴가 효력을 발휘할 수 잇는 유일한 조건임을 파악하지 못했다. 

 

이 책의 장기적인 교훈 중 하나는 자본주의가 사회적으로 천대받는 집단을 부단히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필요에 대한 심도 있는 증거를 제시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투쟁을 '일자리 창출'의 관점에서만 사고하여 임금을 방어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또한 이 책이 재생산 문제를 정치담론의 중심으로 가져와, 반자본주의 정치가 우리 삶의 재생산활동과 상호협력을 위한 우리의 능력을 재평가하지 않을 경우, 그것은 자본이 직면한 모순을 합리화하는 데 기여할 뿐이이다. 14

 

2011년 11월 

 

포스트모더니즘의 신자유주의 시대에 프롤레타리아트는 역사의 페이지로부터 사라져 버렸다. 이 책은 여성들의 신체 속에 화인된 기억과 트라우마에 관한 책이다. 그 트라우마는 기아, 살육 그리고 노예화에 의해 야기된 것들 만큼 깊고 고통스런 상처를 인간의 기억 속에 남녀 놓았다. 

 

데레리치는 프롤레타리아트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성적 계약과 새로운 가부장적 시대를 개시하면서 여성에 대하여 전쟁을 벌이는 것이 필요했음을 보여 준다. 이러써 임금의 가부장제가 시작되었다. 마녀박해와 신체의 규율과 관련된 역사에 뿌리를 둔 페데리치의 주장은 여성의 종속이 어째서 토지 인클로저와 '신세계'의 정복 및 식민화, 노예무역만큼이나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형성에 중요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17

 

- 피터 라인보우, <히드라>의 저자

 

서문

 

여성 '억압' 뿌리에 관한 논쟁가 여성해방투쟁을 위해 채택해야 할 정치적 전략에 관한 논쟁. 

 

급진 페미니스트와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그 어느쪽도 여성의 사회적, 경제적 착취의 뿌리에 대해 만족스러운 설명을 내놓지 못함. 이들은 재생산의 영역을 가치창조와 착취의 원천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여성과 남성의 권력 차이가 여성을 배제한 자본주의 발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달라 코스타, 임금 노동자의 착취, 즉 "임금 노예제"는 여성의 가정 내 무임노동이라는 기둥 위에 세워졌고, 이 무임노동이 임금 노예제의 생산성의 비결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의 여성과 남성의 권력 차이는 가사노동이 자본주의적 축적과 무관하기 때문도 아니고, 문화적 기획이 영원히 존속하기 때문도 아니다. 오히려 남녀간의 권력차는 특정 사회적 생산체제의 결과로 이해해야 한다. 여기서 남녀간의 권력차를 만들어내는 사회적 생산체제란 노동자의 생산 및 재생산에 들어가는 무임노동의 이익을 보면서도 그것을 사회경제적 활동이나 자본축적의 원천으로 인정하지 않고, 자연자원 또는 개인적 봉사로 신비화하는 체제를 말한다. 21

 

자본주의로의 이행의 역사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재생산으로부터 생산의 분리, 무임자의 노동을 통제하기 위한 매우 자본주의적인 임금의 사용, 자본주의의 출현에 동반된 여성의 사회적 지위하락 같은 주요한 구조적 요소들 속에서 가사노동의 기원을 이론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서양문화"가 성을 두 개의 대립항으로 파악하려는 거의 존재론에 가까운 성향을 보인다고 가정하는데, 이 계도(계보학)은 이러한 가정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성적 게서제(위계)는 예나 지금이나 지배대상을 꾸준히 새로운 방식으로 분할해야만 존속할 수 있는 통치기획의 통제수단이다. 22

 

나이지리아, 1984-1986년, 세계은행의 범세계적 경제복구처방인 구조조정 프로그램 도입. 

이것이 새로운 시초축적과 사회적 재생산의 합리화를 수반한다는 것이 명백해짐. 

. 사회적 재생산의 합리화 = 공동체적 소유와 공동체 관계의 마지막 흔적들을 분쇄하여 강도 높은 노동착취 형태를 강요하는 것. 그 중에는 공유지에 대한 공격과 노동인구의 재생산에 대한 국가의 결정적인 개입. 후자는 출산율을 규제하여 장래에 세계경제에 삽입되기에는 너무 많고 무질서하다고 판단되는 인구를 감소시키기 위한 개입이었다. 24

 

 

서론

 

세익스피어의 <템페스트>에서 영감을 얻은 <캘리번과 마녀>라는 이 책의 제목. 

. 캘리번은 현대 카리브 문학에서 아직도 공명하고 있는 반식민주의 저항을 대표할 뿐만 아니라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상징이기도 함.  특히 자본주의 논리에 대한 저항의 영역이자 수단이라는 의미를 갖는 프롤레타리아트 신체의 상징임. 

. 마녀는 자본주의가 파괴해야만 했던 여성 주체라는 세계(이단자이자 치유자, 반항적인 아내, 감히 혼자 살아가고자 하는 여성, 주인의 음식에 독을 섞고 노예들의 반란을 책동하는 여성 마술사)의 체현이라는 의미임. 

 

여성주의의 관점에서 자본주의의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과정을 검토할 때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나는 이런 질문들을 가지고 여성과 신체, 그리고 시초축적 문제를 중심으로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 이어지는 "이행" 문제를 재검토했다. 여성과 신체, 시초축적이라는 개념들은 각각 여성주의, 맑스주의, 푸코의 이론과 관련되어 있다. 

 

시초축적, 나의 분석 방식은 두 가지 지점에서 맑스와 다르다.

1) 맑스가 남성 임금 프롤레타리아트 관점에서, 그리고 상품생산의 발달과 정의 관점에서 시초축적을 검토했다면, 나는 시초축적이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가져온 변화의 관점에서, 그리고 노동력 생산의 관점에서 시초축적을 다룬다. 따라서 맑스가 다루지 않았던 중요했던 일단의 역사적 현상을 다룬다. 1> 여성의 노동과 재생산 기능을 노동력 재생산에 종속시킨 새로운 성적 분업의 발달 

2> 임금노동에 대한 여성배제와 남성에 대한 종속에 기초한, 새로운 가부장적 질서의 구축

3> 프롤레타리아트 신체의 기계화와, 여성 신체의 노동자 생산 기계화 등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내가 시초축적을 분석하는 중심에 16-17세기의 마녀사냥을 놓고 있다는 점이다. 신세계의 식민화와 유럽소작농의 토지로부터의 축출이 자본주의 발달에 중용한 영향을 미쳤던 만큼 유럽의 마녀박해 여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 

 

2) 맑스는 자본주의 발달과정의 살인적인 면모를 통렬하게 인식하고 있엇지만 그것을 인간해방의 필연적인 절차로 보았다. 그는 자본주의의 발달을 통해 영세한 중세의 유산들이 처분되었고, 노동의 생산성이 향상되었으며, 결국 결핍과 필요에서 인류를 행방시킬 수 있는 물적 조건이 마련된 것으로 믿음. 또한 초기 자본주의 확장을 주도했던 폭력은 자본주의적 관계가 성숙되면, 다시 말해서 주로 경제법칙의 작동을 통해 노동력의 착취와 훈육이 완성되면 잠잠해질 것이라고 믿음. -> 큰 오류가 있음. 시초축적의 가장 폭력적인 측면들이 오늘날을 비롯하여 자본주의 지구화의 모든 국면마다 나타남. 

 

맑스가 여성의 관점에서 자본주의의 역사를 보았더라면 자본주의가 인간행방의 길을 열었다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못했으리라고 본다. 남성들이 어느 정도 형식적인 자유를 성취한 경우에마저 여성들은 항상 사회적으로 열등한 존재로 다루어지고 노예제와 다름 없는 방식으로 착취당했음을 역사가 보여준다. 31

 

여성주의 관점에서 자본주의 이행기를 다룬 책들, 

머천트, <자연의 죽음>은 과학혁명이 사회진보적인 성격을 갖는다는 믿음에 도전함. 머천트는 과학적 합리주의가 도래하면서 문화적 전환이 일어나, 유기적 패러다임이 여성과 자연의 착취를 합리화하는 기계적 패러다임으로 바뀌었다고 주장했다. 33

 

이 책이 다루는 가장 중요한 역사적 질문은 근대 초입에 일어난 수십만 "마녀들"의 처형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리고 자본주의가 여성을 상대로 한 전쟁과 함께 시작된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이다. 

 

나는 16세기와 17세기의 인구학적, 경제적 위기라는 맥락에서 마녀사냥을 분석하고 중상주의 시대의 토지 및 노동정책을 살펴보게 될 것이다. 마녀 박해가 (노예무역과 인클로저와 마찬가지로) '신세계'에서만이 아니라 유럽에서도 근대적 프롤레타리아트 형성과 축적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 

 

캘리번과 마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여성의 역사"와 여성주의 이론에 호소한다. "젠더"와 "계급"간의 이분법을 넘어설 수 있다. 만일 자본주의 사회에서 남성-생산노동, 여성-재생산노동이라는 식으로 성정체성이 노동의 종류까지 결정하게 되어버렸다면, 우리는 젠더를 순수하게 문화적 현실로 간주할 것이 아니라 계급관계의 특수한 표현으로 보아야 한다.  

 

포스트모던 여성주의자들이 분석범주로서의 "여성"을 폐기하고 여성주의를 순전히 상대적인 조건 속에서만 규정해야 할 필요성을 둘러싸고 벌인 논쟁은 잘못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만일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위 "여성성"이 생물학적 운명이라는 미명하에 노동력 생산을 은폐하는 노동기능으로 구성된 것이라면, "여성의 역사"는 "계급의 역사"이다. 

 

<캘리번과 마녀>가 제기하는 더욱 심오한 질문은 자본주의 발달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신체에 대한 여성주의적 분석과 푸코식의 접근을 대비하는 데서 나타난다. 

 

여성주의자들은 여러 가지 상이한 이데올로기들을 넘나드는 과정에서 인간의 능력에 위계적인 등급을 매기고 여성을 육체적 현실이라는 비속한 개념고 동일시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가부장적 권력의 공고화와 여성 노동력에 대한 남성의 착취를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따라서 섹슈얼리티, 출산, 엄마되기에 대한 분석은 여성주의 이론과 여성의 역사에서 핵심이었다. 특히 여성주의자들은 여성의 신체가 권력기술과 권력관계를 전개하기 위한 주요한 대상이자 특권적 장소였다는 점을 밝히면서 남성중심적인 착취 체제가 여성의 신체를 규율하고 전유하기 위해 사용했던 전략과 폭력을 드러내고 고발했다. 

 

"몸정치학" 

 

여성주의자들은 섹슈얼리티에 대한 푸코의 담론이 여성주의 운동이 진전시킨 많은 통찰력을 전용하고 있으면서도, 성적 차별을 망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푸코는 신체에 부여되는 권력-기교의 "생산적인" 성격에 강하게 끌린 나머지 권력-관계에  비판을 사실상 제거해버렸다. 37

 

내 책은, 

신체가 여성성의 지속을 위한 활동의 결정적인 장이자 중심적인 요소로 자리하게 된 사회, 역사적 조건들을 기록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이 책은 신체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들과 맺는 관계는 공장이 남성 임금노동자와 맺는 관계와 같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여성의 신체는 국가와 남성에 의해 전유되고, 재생산과 노동의 축적을 위한 수단으로 기능하도록 강제된다는 점에서 착취와 저항의 주요한 장인 것이다. 

 

이 책은 또한 신체를 [공적인 영역과 구별된] 사적인 영역과 등치시키기 거부하는 여성주의적 통찰에 확신을 심어 주고 있으며, 이런 맥락에서 "몸의 정치"에 대해 이야기 한다. 나아가 여성에게 신체가 어째서 정체성의 근원이 됨과 동시에 감옥이 될 수 있는지, 그리고 신체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 여성주의자들에게 왜 그렇게 중요하면서도 동시에 문제적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38

 

시초축적은 자본주의 발달의 매 국면에 나타나는 보편적인 과정이었다. 이런 전략들은 노동력의 비용을 낮추고 여성과 식문지 신민들의 착취를 은폐하는 기능을 한다. 19세기에 ㅏ로 이같은 일이 벌어졌다. 사회주의와 파리 코뮨, 1873년의 축적 위기 출현에 대응하여 "아프리카 쟁탈전"이 일어났고, 이와 동시에 유럽에서는 여성들이 임금노동 일터에서 축출된 후 남성들에게 경제적으로 종속되면서 핵가족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또한 자본주의 발달이 여성의 삶에 미치는 최초의영향이 바로 빈곤의 여성화였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우리는 지구화의 확산과 함께 진행되고 있는 오늘날의 "빈곤의 여성화"를 새롭게 조명할 필요가 있다. 40

 

 

실비아 페데리치 저, <캘리번과 마녀> 발췌_1장.

온 세상에는 충격 한 방이 필요하다, 중세 유럽의 사회운동과 정치적 위기

 

중세 유럽의 프롤레타리아트(소농, 장인, 날품팔이 등)가 온갖 방식으로 봉건권력에 맞섰던 투쟁들에서 시작해야. 자보주의가 구질서의 태내에서 발육하고 있던 경제세력들을 전면에 등장시킨 "진화"의 산물이 아니었다. 

 

수세기에 걸친 사회적 갈등은 봉건영주, 도시귀족, 주교와 교황의 권력을 흔들고 진정으로 "온 세계에 큰 충격을 한방" 줬다. 자본주의는 이것에 대한 지배계급의 대응이었다. 자본주의는 반봉건투쟁에서 등장한 가능성을 파괴해 버린 반혁명이었다. 이 가능성이 실현되었더라면 자본주의적 관계의 세계적인 진척이 수반한 막대한 인명파괴와 자연환경파괴를 막을 수도 있었겠지만, 자본주의는 이것을 짓밟았다. 45

 

새로운 전망과 변형은 하찮은 것이 아니었으며, 기존 질서에 맞서 공동체적 삶의 대안적 모형을 구성하는 데 기여한 유럽의 풀뿌리 여성운동사에서 최초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반봉건투쟁의 과정 속에있었다. 또 지배적인 성적 규범에 도전하고 남녀간에 한층더 평등주의적인 관계를 설정하기 위한 최초의 조직적인 시도가 반봉건투쟁으로부터 나왔다. 이 다른 세상이 어째서 실현되지 않았는가? 이 장에서는 이 질문에 대한 몇 가지 답을 모색할 것이며, 이 과정에서 여성과 남성의 관계와 노동인구 재생산이 봉건지배에 맞서 어떻게 재정의되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46

 

계급관계로서의 농노제

 

농노제는 봉건제의 지배적인 계급관계였고, 14세기까지는 반봉건투쟁의 초점이었다. 

 

농노제는 로마제국을 떠받치던 노예제가 와해되자 이에 대응하여 5-7세기에 나타났다. ... 예전의 노예와 자유농민의 처지를 동질화하며 결합한 새로운 계급관계가 등장했다. 이로 인해 모든 소농은 예속적 지위에 처했기에 9세기부터 11세기까지 3세기 동안 농민은 곧 농노를 의미하게 되었다. 

 

농노제가 주인과 하인 간의 관계에 도입한 변화의 관점에서, 농노제의 가장 중요한 측면은 그것이 농노로 하여금 재생산수단에 직접 접근할 수 있게 해줬다는 점이다. 영주직영지에 바치는 부역노동의 대가로 농노는 한 뼘의 땅 망스를 받았다. 농노는 이 토지를 경작해서 먹고 살았으며, 이것을 "상속수수료마나 내면 진짜 유산처럼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었다. 농노는 밥을 굶지 않을 수 있었고, 따라서 영주와의 대립이 극에 달했을 대조차도 굶주림에 대한 공포 때문에 쉽게 굴복해 버리는 상황을 피할 수 있었다. 농노의 힘은 토지가 현실적으로 그들의 손 안에 있었다는 사실에서 나왔다. 

 

"공유지"의 이용이 토지의 이용에 뒤따랐다. 목초지, 숲, 호수, 방목지 같은 공유지는 소작농에게 경제적으로 몹시 중요한 자원이었으며, 공동체의 결속과 협동을 촉진했다. 

 

대체로 토지는 남성에게 교부되었고 부계혈통에 따라 상속되었다. 여성은 공직에서도 배제되었다. 비교적 유복한 남성 농민이 주로 공직에 임명되었다. 그럼에도 여성 농노는 후일 자본주의 사회의 "자유로운" 여성보다 남성 친족에게 덜 의존했고, 육체적, 사회적, 정신적으로 덜 차별받았으며, 남성의 필요에도 덜 종속되었다. 

 

영주는 농노의 신체와 재산에 대한 소유권을 가졌고, 농노의 삶을 노동, 결혼, 성적 행위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통제하려고 했다. 농노공동체에서 남성에 대한 여성의 종속상태는 제한적이었는데, 그것은 영주의 권위가 여성의 남편 및 아버지의 권위를 압도했기 때문. 여성의 노동과 사회관계를 지휘한 것은 영주였다. 영주의 초야권. 

 

장원의 밭일이 어디까지나 자급자족적 방식으로 조직되어 있다보니 자본주의적 농장에 비해 노동의 성적 분업이 두드러지지도 차별적이지도 않았다. 봉건촌락에서는 재화를 생산하는 것과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것 사이에 사회적 분리가 전혀 없어씅며, 이것은 모두 가족의 생계에 보탬이 된다고 보았다. 중세장원에서 여성의 가사노동은 평가절하되지 않았고, 남성의 가사노동과는 다른 사회관계를 수반하지도 않았다. 

 

중세사회에서 공동체가 가족에 우선했다는 점, 여성 농노의 일이 대개 다른 여성들과 협동하는 것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노동의 성적 분업이 여성에게는 고립이 아닌 힘과 보호의 원천이 되었음. 52

 

영주와 농노 간의 갈등에서 가장 중요한 해결책은 부역의 금납화다. 금납화는 봉건관계를 더욱 계약적인 토대위에 올려놓음. 59

금납화의 두 가지 부정적 결과, 1. 부역이 화폐지대로 대체되면서 농민들이 더 이상 자신을 위한 노동과 영주를 위한 노동을 차별화할 수 없어, 자신들이 얼마나 착취당하고 있는지 가늠하는 것이 더욱 힘들어져. 2. 자유로워진 농민은 다른 사람을 고용하고 착취할 수 있게 됨. ~> 독립적인 농민 소유권의 성장을 촉진, 예전의 자가고용 토지보유자를 자본주의적 소작인으로 바꿔놓음.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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