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땅의 예찬

백_일홍 2023. 7. 24. 12:07

땅의 예찬: 정원으로의 여행

 

한병철

 


목차

 

들어가는 말

겨울여행
겨울정원
타자의 시간
땅으로 돌아가기
세계의 낭만화
가을벚나무
겨울바람꽃과 풍년화
미선나무
아네모네
동백
버들강아지
크로커스
옥잠화
행복에 대하여
아름다운 이름들
빅토리아 큰가시연
가을시간너머

정원사의 일기

그림 목록


 

들어가는 말

 

어느 날 땅에 더 가까어지고 싶다는 동경을, 아니 날카로운 욕구를 느꼈다. 그래서 매일 정원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세 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러니까 3년 동안 '비원(비밀정원이란 뜻의 한국어)

이라는 이름 지은 정원에서 일했다. 이전 주인이 장미나무 아치에 매달아놓은 하트 모양 팻말에는 아직도 '꿈의 정원'이란 이름이 그대로 적혀 있다. 그건 그대로 두었다. 나의 비밀정원은 정말 꿈의 정원이기도 하다. 나는 그곳에서 다가오는 땅의 꿈을 꾸는 것이니 말이다. 

 

정원 일은 내게는 고요한 명상, 고요함 속에 머무는 일이었다. 그것은 시간이 멈추어 향기를 풍기게 해주었다. 정원에서 일하는 시간은 길어질수록 땅에 대해, 그 현혹하는 아름다움에 점점 더 큰 존경심을 품게 되었다. 그러면서 대지에 신의 창조물임을 깊이 확신한다. 정원은 내가 이런 확신에 도달하도록 도와준었다. 이제는 확실성이 되어버린, 일종의 증거의 성격을 지닌 퉁찰에 도달하도록 도와준 것이다. 증거란 원래 '본다'는 뜻이다. 나는 그것을 보았다. 9

 

꽃피는 정원에 머물면서 나는 다시 경건해졌다. 과거에 에덴동산이 있었고, 또한 미래에도 있을 것임을 믿는다. 언제나 새로 시작하고 그를 통해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드는 놀이꾼 창조주 하느님을 믿는다. 그가 창조한 인간도 함게 놀이할 의무가 있다. 노동이나 성과는 놀이를 파괴한다. 이는 맹목의 번뜩이고 말없는 행동이다. 9

 

이 책의 많은 구절은 땅과 자연을 향한 기도이자 고백, 곧 사랑의 고백이다. 생물학적 진화란 없다. 모든 것은 신의 혁명 더거에 생긴 일이다. 나는 그것을 몸소 경험했다. 생물학은 결국에는 신학, 즉 신의 가르침이다. 9

 

땅은 생명 없이 죽어 있는, 말 못하는 존재가 아니다. 오리혀 능변의 생명체, 살아 있는 유기체다. 돌조차도 살아 있다. 생틕투아르산에 매료되어 있던 세잔은 암벽의 특별한 생명성과 힘, 그 비밀을 알고 있었다. 일찍이 노자는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세계는 신비로운 자발 같다. 우리는 그것을 붙잡지 못한다. 그것을 붙잡으려는 사람은 오히려 잃어버린다."

 

비밀스런 주발인 땅은 부서질 수 있다. 우리는 오늘날 땅을 잔인하게 착취하고 마모시키면서 그를 통해 완전히 파괴하는 중이다. 

 

땅을 보호하라는 명령, 곧 땅을 아름답게 대하라는 명령이 땅에서 나온다. '보호하다'라는 낱말의 어원으로 보아 '아름다운 것'이라는 말과 친적이다. 아름다운 것은 우리에게 그것을 보호할 의무, 아니 명령을 내린다. 아름다운 것은 보호하는 태도로 대하는 것이 옳다. 땅을 보호하는 것은 인류의 절박한 과제이자 의무이다. 그것이 아름다운 것, 뛰어난 것이니 말이다. 10

 

보호는 찬양을 요구한다. 다음의 구절들은 땅을 찬양하는 노래, 찬가들이다. 이 <<땅의 예찬>>은 아름다운 땅의 노래처럼 울려야 한다. 아니, 오늘날 우리에게 닥친 심각하나 자연 재앙을 앞에 두고, 많은 이들에게는 흉보로 읽혀야 할것이다. 이는 땅이 인간의 냉혹함과 폭력에 보내는, 분노에찬 답변이다. 우리는 땅에 대한 경외심을 모조리 잃었다. 더는 땅을 보지도 듣지도 않는다.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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