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기다리는 사람은 누구나 시인이 된다

백_일홍 2023. 10. 19. 20:58

기다리는 사람은 누구나 시인이 된다,

기다림에 대하여


해럴드 슈와이저 


서문, 기다림이라는 생의 시간

나는 대체로 현상학적 관점에서 기다림이라는 주제에 접근했다. 우리는 어떻게 기다릴까? 기다리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기다림이란 어떤 종류의 경험일까? 그것은 시간의 경험일까? 시간의 경험이라고 한다면 기다리는 동안 경험하는 것은 어떤 종류의 시간일까? 기다림은 왜 그토록 억울한 누명을 쓰기 되었을까? 5

이 책에는 기다림에 관한 여러 장면들이 나온다....이들은 기다림이 지닌 특징과 특수한 면모들을 보여준다. 가령 기다림이 지닌 정신적 차원과 몸의 차원, 기다림과 글쓰기의 관계ㅡ 사서적 산문과 서정시가 보여주는 기다림, 기다림의 매혹, 기다림에 담겨 있는 젠더적 의미, 그리고 우리는 읽으면서 어떻게 기다리고 또 머무를 때는 어떻게 기다리는지, 죽음은 어떻게 기다리는지 하는 것들이다. 기다리는 사람이 사물을 견디는 경험을 하는 것, 시간을 물리적 몸으로 구현할 때 일어나는 마음의 동요, 왜 우리는 서성거리게 되는지, 왜 기다리면서 강박적으로 시계를 보게 되닌지에 관한 내용도 살펴볼 것이다. 또한 목적이 있는 기다림과 목적이 없는 기다림, 잘 기다리지 못하는 이의 산란한 시선, 잘 기다리는 이의 머무르는 시선, 희망이나 기대를 품고 기다리는 또 다른 기다림에 대해서도 다루었다. 6


저 세부는 얼마나 생생한가, 얼마나 감동적인가, 
- 우리는 거져 얻은 그 조금의 몫, 
지상에서 우리에게 맡겨진 그 조금의 몫, 많지도 않다. 
딱 우리가 체류한 그 정도의 크기  

_ 엘리자베스 비숍, <시 Poem> 에서 


1장 누구도 기다리고 싶어하지 않는다

대기실이나 기자쳑, 공항, 호텔 로비는 그저 잠시 통과해서 지나가는 장소일 뿐이지만, 이 책에서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기다림이 그렇게 단순히 거쳐가는 시간의 통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원래 시간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채 통과하는 문니나 복도 같은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무언가를 기다릴때면 그 문은 꽉 막히고 복도는 끝이 보이지 ㄹ않는다. 시간은 정체한다. 내 앞에 늘어선 줄은 줄어들지 않는다. 갑자기 시간은 거쳐가는 ㄱ것이 아니라 견더야 하는 것이 되고, 생각의 대상이 아니라 느낌의 대상이 된다. 기다릴 때의 시간은 느리고 무겁다. 불편하게 일이 지연되는 현상만으로는 기다름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또한 기다림이 시간의 문제로만 그치는 것도 아니다. 이 책에서 밝혀보고 싶은 것 가운데 하나는 기다림에는 보상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 보상이 문 앞이나 기차역으로 갑자기 찾아온 방문객처럼 쉽게 연결시키기 어려운 일처럼 보일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기다림을 '시간은 곧 돈'이라는 경제관념의 속박에서 벗어난 잠깐 동안의 해방으로서, 현대생활의 속도전 와중에 찾아오는 짧은 휴식으로, 그리고 예기치 못했던 진리나 뜻밖의 통찰을 얻을 수 있는 사색의 시간으로 생각해볼수도 있을 것이다. 프랑스 사회운동가이자 철학자인 시몬 베유가 주장했던 것처럼, 우리는 기다림을 '관심', 즉 마음씀의 한 형태로 새롭게 사고해야 한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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