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존재의 의미
에드워드 윌슨
목 차
I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
1 의미의 의미 13
2 인간 종의 수수께끼를 풀다 19
3 진화와 우리의 내면 갈등 31
II 지식의 통일
4 새로운 계몽 운동 41
5 없어서는 안 될 인문학 59
6 사회적 진화의 원동력 69
III 다른 세계들
7 인류, 페로몬 세계를 잃다 89
8 초유기체 103
9 미생물이 은하를 지배하는 이유 115
10 외계 생명체의 초상 125
11 생물 다양성의 붕괴 139
IV 마음의 우상들
12 본능 151
13 종교 165
14 자유 의지 179
V 인간의 미래
15 우주에서 홀로 자유롭게 195
부록 211
감사의 글 227
찾아보기 228
I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
1 의미의 의미
의미
. 조직 종교의 세계관 (의도, 목적 - 설계 - 설계자)
. 과학적 세계관 (역사적 사건, 물리적 인과관계, 무작위, 확률)
예. 자연선택,
거미가 거미집을 짓는 행동은 파리를 잡을 의도에서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가장 큰 도덕적 딜레마에 빠질 것이다.
우리는 의지 선택을 통해 자신의 진화를 이끌고자, 우리 자신을 창조한 바로 그 과정인 자연 선택을 버리려 하고 있다. 17
나는 인류가 오로지 진화하는 동안 일련의 사건들이 누적됨으로써 생겨났다고 주장하려고 한다. 우리는 그 어떤 목표에 도달하도록 예정된 것도, 자신이 아닌 다른 어떤 힘에 부응하도록 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신앙심이 아니라 자기 이해에 토대를 둔 지혜만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저 위쪽 어딘가에서 속죄를 받거나 두 번째 기회를 얻는 일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오직 이 행성에만 거주하며 이 한 가지 의미만을 지닌다. 18
2 인간 종의 수수께기를 풀다
인간 조건은 역사의 산물이다. 단지 6000년에 걸친 문명의 역사가 아니라, 훨씬 더 이전까지 올라가는 수십만 년에 걸친 역사를 말한다. 그 수수께끼의 온전한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이 역사 전체, 즉 생물학적 진화와 문화적 진화를 솔기 없이 하나로 이은 상태에서 탐사해야 한다.
생물학자들은 인간의 고도로 발달한 사회적 행동이 동물계의 다른 구성원에게서 보이는 사회적 행동들과 비슷한 방식으로 기원했음을 밝혀내 왔다. 곤충에서 포유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동물들을 비교 현구한 끝에, 우리는 가장 복잡한 사회들이 진사회성을 통해 출현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진정한" 사회적 조건
혈연 선택, 포괄 적합도
vs
다수준 선택
학생들은 기존의 역사만이 아니라 선사 시대도 배울 것이고, 그 전체가 생명 세계의 가장 거대한 하나의 서사시로서 제시될 것이다.
자긍심과 겸손함은 더 균형을 이룰 것이고, 우리는 자연에서 우리 위치를 더 진지하게 고찰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논란의 여지가 없이, 생물권의 마음이라는 고상한 지위에 올라설 것이고, 우리의 정신은 경외심을 느낄 수 있는 동시에 더욱 놀라운 상상의 도약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생명에는 예정된 목적도, 끝 모를 수수께끼 같은 것도 없다. 우리의 믿음을 얻고자 다투는 악마도 신도 없다. 대신 우리는 자수성가한 독립적이고 고독하고 허약한, 생물 세계에서 살아가도록 적응한 생물 종이다. 29
3 진화와 우리의 내면 갈등
진정한 인류 이야기를 하려면, 역사는 생물의 역사와 문화의 역사를 둘 다 포괄해야 한다. 생물학쪽에서는 선행 인류의 사회적 행동을 인류 수준으로 밀어 올린 힘이 무엇인가가 수수께끼의 열쇠가 된다. 그 힘의 유력한 후보자는 다수준 선택이다. 유전되는 사회적 행동이 집단 내의 개체만이 아니라 집단 자체의 경쟁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33
생물 진화가 일어 날 때 자연 선택의 단위는 개별 생물도 집단도 아니었다. 유전자가 단위였다. 자연 선택의 표적은 유전자가 만드는 형질이다.
. 개체 차원에 속하는 형질 - 개체들 사이에 경쟁이 벌어질 때 선택됨.
. 집단 차원에 속하는 형질 - 집단의 다른 구성원들과 하는 사회적 상호작용(의사소통과 협력 같은)에 관한 형질
개체들 사이의 의사소통이 부족한 비협조적인 집단은 더 잘 조직된 경쟁 집단에 밀려날 것이다. 패자 집단의 유전자는 세대가 지날 수록 밀려날 것이다. 33
집단 선택된 행동의 진화적 산물이 너무나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어서, 즉 철저하게 현재 인간 조건의 일부가 되어 있어서, 마치 물과 공기처럼 자연의 일부로 여기기가 쉬운 듯하다. 하지만 그 형질들은 우리 종만이 지닌 것들이다. 다른 사람에게 몹시, 강박적일 정도까지 관심을 갖는 것도 그 형질 중 하나다. 34
인간 행동의 특징인, 또 하나의 유전되는 형질은 애초에 집단에 소속되려고 하는 압도적으로 강한 본능적인 충동이다. 자신이 어느 집단 - 부족 -의 일원인가 여부는 정체성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또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집단은 구성원에게 우월감을 제공한다.
타고나는 것이 명백한 이 성향은 섬뜩할 만큼 너무나 쉽사리 인종차별주의와 종교적 편협함으로 확대되고는 한다. 35
인간의 성취는 결코 독특하지 않다. 현재, 생물학자들은 이타적인 분업의 정도를 토대로 현생 동물 중에서 고도의 사회성을 이룬 계통을 20개 찾아냈다. 곤충 계통이 가장 많다. 포유류 중에서도 세 계통이 출현했다. 아프리카의 두 두더쥐 계통과 우리다. 모두 동일한 좁은 관문을 통과해 이 수준에 도달했다. 한 개체나 암수 한 쌍, 또는 소규모 집단이 둥우리를 짓고서, 그 둥우리를 먹이를 찾아 나서고 새끼를 성숙할 때까지 기르는 곳으로 삼는 단계를 거쳐서였다. 36
집단들이 한 곳에 점점 더 많이 모이면서, 협력해 둥우리를 짓고 사냥을 하자, 한 가지 이 점이 더 늘어났다. 바로 전두엽의 기억 중추와 추론 중추가 커지면서 사회적 지능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아마 하빌리스 시대인 이 시기에, 한 집단의 일원인 개인들 사이의 경쟁에서 비롯되는 개체 수준의 선택과 집단 끼리의 경쟁에서 비롯된 집단 수준 선택 사이에 계속 갈등이 빚처졌을 것이다. 두 힘 사이의 경쟁은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다. 집단 내에서는 이기적인 개인이 이타적인 개인을 이기지만, 이타주의자들의 집단은 이기적인 개인들의 집단을 이긴다. 개체 선택은 죄악을 부추긴 반면, 집단 선택은 미덕을 부추겼다. 37
그 결과 인류는 ... 영구히 갈등하는 존재가 되었다. 37
우리가 어느 한쪽 힘을 사회적 및 정치적 불안의 이상적인 해결책으로 삼을 가능성은 적다. 개체 선택에서 비롯된 본능적인 충동에 완전히 내맡긴다면, 사회는 해체될 것이다. 반대편 극단인 집단 선택에서 비롯된 충동에 굴복한다면, 우리는 천사 같은 로봇이 될 것이다. 거대해진 개미와 다름없어질 것이다. 38
이 갈등은 우주 전체에서 인간 수준의 지능과 사회 조직이 진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일 수도 있다. 38
II 지식의 통일
4 새로운 계몽 운동
다음 단계는,
과학과 인문학이 같은 토대 위에 서 있다는 개념이다. 특히 물리적인 인과율이 어떤 식으로든 궁극적으로 양쪽을 다 설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서구 사회는 이미 이쪽으로 여행한 바 있다. 그것을 계몽 운동이라고 했다.
17-18 세기, 학자들은 과학 법칙으로 우주와 인류의 의미를 둘 다 설명할 길을 찾은 듯했다. 거대한 학문 분야들을 원인과 결과의 연속된 연결망으로 통일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계몽 운동은 인간이 전적으로 스스로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모든 것을 알 수 있고, 앎으로서 이해하라 수 있고, 이해함으로써 전보다 더 현명하게 선택할 능력을 얻는다는 믿음을 토대로 했다.
1800년대 초 후퇴한 이유,
1. 과학 발견 미흡
2. 낭만주의 문예 사조의 창시자들이 계몽 세계관의 억축을 거부, 다른 더 내밀한 차원에서 의미를 추구함.
계몽 운동은 죽지 않았다. 단지 중단되었을 뿐이다.
계몽 운동이 처음 꽃을 피웠을 대보다 더 많은 것이 알려져 있어서 성공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 그리고 현대 생활의 수많은 문제들이 경쟁하는 종교들의 충돌,, 도덕적 추론의 애매함, 환경보호론의 미흡한 토대, (크나큰 문제인) 인류 자체의 의미 같은 문제들을 해결해야만 비로소 해결이 가능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44
창작 예술과 그것을 분석하는 상당수의 인문학은 ... 그저 똑같은 주제, 똑같은 원형, 똑같은 감정을 다루는 똑같은 오래된 이야기일 뿐이다. 물론 우리 독자들은 개의치 않는다. 우리는 인간중심주의에 중독되어 있다. 자기 자신과 동족인 인간들에게 한없이 빠져들도록 되어 있다. 최고의 교육을 받은 사람조차도 호모 사피엔스를 특징 짓는 비교적 좁은 범위의 감정들 중 한두 가지를 자극하도록 고안된 뒷소문이나 소설, 영화, 음악회, 운동 경기를 입맛에 맞게 골라서 즐기며 산다.
동물을 다룬 이야기를 쓰려면, 진부하기 그지없는 인간 본성의 안내서들에 실려 있는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인간 같은 감정과 행동을 부여해야 한다.
인간중심주의의 기능은 사회적 지능을 갈고닦는 것이다. 인간은 그 기능 면에서 지구의 모든 종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 그 습성은 아프리카에서 선행 인류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로부터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하는 동안, 대뇌피질이 진화할 때 함께 극적으로 출현했다. 뒷소문, 유명인 숭배, 전기, 소설, 전쟁 이야기, 스포치가 현대 문화의 일부가 되어 있는 이유는 남들에게 열중하는, 심지어 강박적으로 집중하는 상태가 늘 개인과 집단의 생존에 기여해 왔기 때문이다. 48
과학은 ... 종교나 이념에 기대지 않고 오로지 사실에만 의존한다. ... 과학은 인문학과 구별되는 또 다른 속성들, 가장 중요한 것은 연속체라는 개념이다. 실체와 과정의 변이가 일차원, 이차원 혹은 그 이상의 차원에서 연속적으로 일어난다는 개념.
우주에서 볼 때 지구는 오늘 오후 몇 시간 동안 뉴저지 주 티넥의 한 정원에서 꽃잎 하나 위에 앉아 있는 진딧물 한 마리의 왼쪽 더듬이 두 번째 마디와 같다. 51
다른 연속체, 지구 생물권에 있는 생명의 다양성이다.
. 지구에 살고 있다고 알려진 식물은 27만 3,000종
. 지구 생물은 약 200만 종
12차수에 걸친 생물 크기의 기울기, 크기의 연속체
. 대왕 고래와 아프리카 코끼리 ~ 광합성 세균과 바다 청소부 피코 동물
과학이 밝혀낸 모든 연속체 중 인문학과 가장 관련 깊은 것은 감각이다. 우리 종의 감각은 극도로 제한되어 있다.
우리 시각은 전자기 스펙트럼의 400~700 나노미터 영역에 속한 극도록 좁은 에너지 영역을 감지하는 데 달려있다.
동물들도 각자 그 연속체의 극히 좁은 영역에서만 살아간다.
우리 눈에는 꽃이 노란색과 붉은 색으로 보이지만, 나비(곤충)에게는 흑백의 점들과 동심원들이 늘어선 형태로 보인다. 53
연속체들을 탐구함으로써 인류는 우리 자신과 우리의 작은 행성이 속한 크기, 거리, 양의 극미 영역에서부터 실제 우주의 차원을 헤아릴 수 있다. 55
과학 지식의 이 폭발적인 성장은 인문학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모든 면에서 관계가 있다. 과학과 기술은 인류의 위치를 점점 더 정확히 밝혀내고 있다. 이곳 지구에서만이 아니라 그 너머 우주 전체에서의 위치까지도. 우리는 이곳에서든 다른 어느 행성에서든 간에 인간 수준의 지능을 갖춘 종을 배출할 만한 관련된 연속체들의 각각에시 미시적인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존재다.
우리는 아주 특별한 종, 원한다면 선택된 종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인문학은 그 자체로는 왜 그러한지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다. 그들은 자그마한 인지 상자에 갇힌 채, 연속체에서 자신들이 아는 자그마한 영역을 끝없이 세세하게 이렇게 저렇게 조합을 하고 또 하면서 찬미한다. 그 자그마한 영역에 머무는 한, 우리가 근본적으로 지닌 형질들 - 우리가 자랑하는 본능들, 적당한 수준의 지능, 위험할 만치 한정된 지혜, 심지어 비판가들이 주장할 과학의 오만불손함 - 의 기원은 규명하지 못한다. 57
5 없어서는 안 될 인문학
진짜 외계인이라면 우리에게 주목할 가치가 있는 한 가지 핵심 자원을 우리 종이 지니고 있다고 말해 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인문학이다. 59
과학이라고 말할 수 잇는 거의 모든 것이 역사가 500년도 채 안 되었다는 점을 명심하자.
우리의 기술은 대단히 열등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외계방문자이고 그들이 행성 원주민인 상황이 벌어졌을 것이다. 61
그렇다면 가상의 외계인이 우리로부터 배울 만한 것, 그들이 가치 있다고 여길 만한 것이 뭐가 있을까? 정답은 인문학이다. 61
문화적 진화는 오로지 인간 뇌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다르다. 그 뇌는 유전자 - 문화 공진화라는 아주 특수한 형태의 자연 선택을 통해 선행 인류 시대와 구석기 시대에 걸쳐 인화한 기관이다. 주로 접두엽의 기억 은행에 의지하는 인간 뇌의 독특한 능력은 200만 - 300만 년 전 호모 하빌리스 때부터 그 후손인 호모 사피엔스가 6만 년 전 전 세계로 퍼질 무렵에 걸쳐 출현했다. ... 바깥에서 들여다봄으로써 문화적 진화를 이해하려면, 인간 마음의 모든 복잡한 감정과 구조를 해석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인문학이 하는 일이다. 63
과학과 기술은 모든 문명사회, 하위문화, 사람을 가릴 것 없이 어디에든 똑같은 모습일 것이다. 계속 거의 무한정 진화하면서 다양해질 쪽은 인문학이다.
BNR 기술
의지적 진화의 딜레마
우리는 정말로 뇌에 이식한 칩과 유전적으로 향상시킨 지능 및 사회적 행동을 이용해 로봇 기술과 생물학적으로 경쟁하고 싶어 할까?
그런 선택은 우리가 물려받은 인간 본성에서 급격히 벗어나고 인간 조건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난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여기서 나는 실존적 보수주의 쪽에 투표를 할 것이다. 생물학적 인간 본성을 신성한 수탁물로서 보호하자는 쪽이다. 67
6 사회적 진화의 원동력
인간이 사회적 행동을 출현시킨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아프리카의 선행 인류는 더 하등한 동물들에게서 볼 수 있는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고도의 사회적 조직화의 문턱가지 왔고,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 문턱을 넘었다. 뇌 크기가 두 배 이상 늘어나면서, 인류 집단은 대폭 항상된 기억을 토대로 한 지능을 이용했다.
사적이고 내밀한 상호 지식을 토대로 집단을 구축한 것은 인류만의 독특한 성취였다. 혈연관계에 따른 유전체의 유사성은 집단 형성의 불가피한 결과였지만, 혈연 선택이 그 유사성의 원인이었던 것은 아니다. 84
인간 조건의 기원은 자연 선택이 사회적 상호 작용을 선호했다는 개념으로 가장 잘 설명된다. 의사소통하고 알아보고, 평가하고, 유대를 맺고, 협력하고, 경쟁하는 타고난 성향도, 자신의 특별한 집단에 소속됨으로써 깊고도 따스한 기쁨을 느끼는 성향도 그렇게 나온 것이다. 집단 선택을 통해 강화된 사회적 지능에 힘입어 호모 사피엔스는 지구 역사상 최초의 완전한 지배 종이 되었다. 85
III 다른 세계들
7 인류, 페르몬 세계를 잃다
우리 종이 자신이 사는 페르몬으로 포화된 세계의 진정한 본질을 이해하는 데 왜 그토록 오랜 세월이 걸렸는지는 진화적으로 단순하게 설명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몸집이 너무 커서 특별히 노력을 하지 않으면 곤충과 세균의 삶을 이해할 수가 없다. 우리 선조들은 호모 사피엔스 수준으로 진화하기 위해 언어와 문명을 출현시킬 만큼 커질 수 있는 기억 은행을 담은 커다란 뇌를 갖추어야 했다. 커다란 몸집과 직립보행, 다른 동물보다 머리가 더 높은 곳에 놓이게 되었다. 그 결과 우리의 눈과 귀는 다른 거의 모든 동물들에게서 멀어졌다. 종의 99퍼센트 이상은 크기가 아주 작고 우리의 감각이 닿지 않는 땅에 붙어 있어서 주목을 받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우리 선조들은 페르몬이 아니라 시청각 채널을 써서 의사소통을 해야 했다. 페르몬을 비롯한 다른 모든 감각 채널은 우리에게 아주 느렸을 것이다.
요약하자면, 우리를 다른 생물보다 우위에 서개 해준 바로 그 진화적 혁신들은 우리를 감각 장애자로도 만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생물권의 거의 모든 생물들을 대체로 의식하지 못한 채, 무분별하게 생물권을 파괴해 왔다.
8 초유기체
우리는 인류 사회를 초유기체로 묘사하는 말을 종종 듣는다. 좀 무리한 확대 해석이다. 사회성 곤충이 거의 전적으로 본능의 통제를 받는 반면, 우리는 문화의 전달을 토대로 한 분업을 구축한다. 또 우리는 사회성 곤충과 달리, 너무 이기적이어서 한생물이 세포들처럼 행동할 수가 없다. 거의 모든 사람은 각자의 운명을 추구한다. 113
10 외계 생명체의 초상
현재 우리 중에도 인류가 지구를 다 소비한 뒤에 다른 행성으로 이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우주 열광자들이 있다. 그들은 내가 우리와 모든 외계 생명체를 위한 우주원리라고 믿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각 종에게 맞는 서식 가능한 행성은 단 하나밖에 없으며, 따라서 불멸할 기회도 단 한 번뿐이라는 것이다. 137
11 생물 다양성의 붕괴
생물 다양성의 3 수준
. 초원, 호수, 산호초 같은 생태계
. 생태계를 구성하는 종
. 각 종의 식별 형질을 규정하는 유전자
생물 다양성에 인간이 미치는 영향을 가능한 한 짧게 요약하자면, 자살 공격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파괴하는 생명의 생물량을 연료로 삼는 분별없는 거인의 행동이다. 파괴 방식은 히포(HIPPO)로 요약할 수 있다.
. 서식지 상실
. 침입종
. 오염
. 인구 증가
. 남획 overharvesting
모든 종 가운데 우리만이 생물 세계의 실상을 이해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고, 개체에게 가치를 부여해 왔다. 우리만이 동족에게 향한 자비심의 질을 측정해 왔다. 이제 같은 자비심을 우리를 낳은 생명 세계로 확장해야 하지 않을까? 148
IV 마음의 우상들
12 본능
"인간의 모든 문제는 우리가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고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지 의견이 갈린다는 사실로부터 비롯된다."
나는 우리의 여행이 이 시점에서 원점으로 돌아와서 일반 생물학의 도움을 받아 인간 존재가 왜 그토록 수수께끼인지를 설명한 다음, 그 수수께끼를 해결할 만한 방법들을 제시하는 데까지 논의를 확장하자고 제안하려 한다. 151
뇌와 감각계의 형태 및 기능을 규정하는 유전자
진화하는 유전체는 각 단계마다 얼마든지 쉽게 이쪽 또는 저쪽 경로로 방향이 바뀔 수 있었고, 그러면 다른 유형의 뇌와 감각계를 지닌 생물로 분화할 수 있었다. 궁극적으로 인간 수준에 도달할 기회는 각 단계를 거칠 때마다 급감했을 것이다. 152
우리가 인간 본성이라고 말하는 이성과 감정의 독특한 결합물은 인간 수준의 능력을 지닌 뇌와 감각계를 갖출 수 있었을 많은 유형들 가운데 첫 번째로 나온 자동적으로 생성된 산물, 즉 상상할 수 있는 많은 산물 중 하나였을 뿐이다.
그것이 바로 종으로서의 우리의 자기 이미지가 늘 깊은 편견과 오해에, 즉 4세기 전 베이컨이 말한 미신과 기만이라는 "우상"에 왜곡되어 온 이유다. 그 우상들은 그 위대한 철학자가 말한 문화적 사건들이 아니라, "마음의 일반적인 특성"이 우리에게 부과한 것이다. 152
본능과 인간 본성을 실재한다.
때로 본성 대 양육 논쟁이라고 말하곤 하는 이 역설은 다음과 같이 인간 본능의 현대적 개념을 적용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인간의 본능은 기본적으로 동물의 본능과 동일하다. 하지만 대다수 동물 종이 드러내는 유전적으로 고정된 틀에 박힌 행동은 아니다.
큰가시고기 수컷의 상대적으로 작은 뇌는 그저 붉은 배에 반응하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다. 물고기를 닮지 않은 원형이나 다른 형태의 나무 조각에 붉은 점을 칠해서 갖다 놓아도, 큰가시고기 수컷은 마찬가지로 격렬하게 공격했다.
인간과 큰 뇌를 지닌 다른 포유동물들도 타고안 주요 자극과 본능의 인도를 받지만, 그것들이 하등동물의 것처럼 거의 경직되고 외골수적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대신 유달리 인간은 심리학자들이 준비된 학습이라고 말하는 것에 지배를 받는다. 인간이 타고나는 것은 가능한 많은 대안들 가운데 하나 또는 서너 가지의 행동을 학습할 가능성이다.
그 편향된 행동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이 바로 모든 문화가 공유하는 것이다. 설령 비합리적으로 보이고 다른 선택의 여지가 많이 보일 때에도 그런 행동이 선택된다. 155
거미, 뱁, 늑대, 흐르는 물, 폐쇄된 공간, 낮선 이들의 무리가 공포증을 일으킨다. 이 대상들은 수백만 년에 걸쳐 선행 인류와 초기 인류 수렵 채집인을 위험에 빠뜨렷던 것들에 속한다. ... 그러니 빨리 배우고, 그 사건을 오래 생생하게 기억하고, 합리적인 생각을 할 겨를 없이 단호하게 행동하는 것이 가장 안전했다.
공포증은.. 인류 종의 선조들에게 적응적 가치를 제공함으로써 준비된 학습을 통해 획득된 모든 행동은 인간 본능의 일부가 된다. 그중 대부분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문화를 통해 전달되기도 한다.
인간의 모든 사회적 행동은 준비된 학습을 토대로 하지만, 그 편향의 세기는 자연 선택을 통한 진화의 산물이기에 사례마다 다르다.
예. 음악 vs 분석 수학
음악은 초기 인류에게 사회를 통합하고 사람들의 감정을 고조시키는 수단이었지만, 분석 수학은 결코 그런 적이 없다.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만이 본능적인 사랑을 위한 기본욕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자연 선택이라는 원동력은 전 세계 사회들에서 문화적 진화의 수렴을 일으켜 왔다.
보편적 특징들 예. 운동 경기, 신체 장식, 예절, 가족 잔치, 민간 전승, 장례 의식, 근친상간 금기, 초자연적 존재 달래기....
우리가 인간 본성이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의 감정과 그 감정이 관장하는 학습의 준비성으로 이루어진 전체다.
연구자들은 인간 본성이 감정과 학습 준비성을 규정하는 유전자에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을 밝혀내 왔다. 유전자의 최종 산물인 보편적인 문화적 특징들에 들어 있는 것도 아니다.
인간 본성은 문화적 진화를 다른 방향들이 아니라 한 방향으로 편향시키고, 그럼으로써 모든 사람의 뇌에서 유전자를 문화와 연결하는 정신 발달의 유전적 규칙성의 집합이다.
사람이 살고 싶어 하는 서식지를 선택할 때의 편향도 학습에서 매우 중요한 유전적 편향 중 하나다. 160
13 종교
환희의 경험, 음악, 종교, 환각제 -> 도파민 분비에서 비롯됨.
음악은 구석기 시대에 시작, 음악 사랑이 진화를 통해 인간의 뇌에 아로새겨졌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 타당하다.
신앙의 유전자가 음악의 유전자와 비슷한 방식으로 신경화학적 및 생화학적 매개가 이루어지도록 규정할까? 종교의 신경 과학 분야에서 나온 증거는 그렇다고 말한다.
종교적 본능이 정말로 존재함을 강하게 시사한다. 167
한편 위대한 종교들은 끊임없고 불필요한 고통의 비극적인 원인이기도 하다. 그들은 현실 세계의 가장 사회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현실 이해를 방해하는 장애물이다. 종교가 지닌 절묘할 만큼 인간적인 결함은 부족주의다.
부족주의라는 본능적인 힘은 영성의 갈망보다 신앙심을 형성하는 데 훨씬 더 강한 역할을 한다.
선한 사람들에게 나쁜 짓을 하도록 만드는 것은 부족주의이지, 순수 종교의 도덕 교리와 인본주의적 사고가 아니다. 169
불행히도 종교 집단은 무엇보다도 창조 이야기를 통해 자신을 정의한다. 창조 이야기는 인류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초자연적인 이야기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부족주의의 핵심이기도 한다. 그 이야기 속에는 신이 다른 모든 이들보다 자기 신자들을 더 선호한다고 확신을 심어 주는 믿음의 핵심이 담겨 있다.
정의 상 조직 종교가 자체적으로 실행해야 하는, 영혼을 흡족하게 하지만 잔인하기도 한 차별을 피해갈 방법은 전혀 없다.
믿음,
믿음은 생물학적으로 볼 때 생존과 번식 증대를 위한 다윈주의적 장치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 믿음은 부족의 성공을 통해 버려지고, 부족은 다른 부족들과 경쟁할 때 믿음을 통해 단결하며, 부족 내에서 내부의 지지를 받기 위해 믿음을 조작하는 데 가장 뛰어난 구성원들에겐느 그 믿음이 성공의 열쇠가 된다.
이 강력한 사회적 관습을 낳은 끊임없는 갈등은 구석기 시대 내내 널리 퍼져 있었고, 현재까지도 약화되지 않고 이어져 왔다. 가장 세속적인 사회에서 믿음은 종교와 흡사한 정치 이념으로 변형되는 경향이 있다. 때로는 그 두 거대한 믿음 범주들이 결합되기도 한다.
종교 신앙은 신자들에게 엄청난 심리적 해택을 준다. 그들의 존재에 대한 설명을 제공한다. 다른 부족 집단의 일원보다 자신들이 더 사랑과 보호를 받는다고 느끼게 한다. 신과 사제들은 그 대가로 무조건적인 믿음과 복종을 요구한다.
진화 기간 내내, 인간의 영혼을 위한 이 거래는 평화로운 시기와 전시 양쪽에서 부족을 단결시키는 유일하게 강한 힘이었따. 구성원들에게 자랑스러운 저어체성, 정당한 행동규칙, 삶과 죽음의 수수께끼 같은 순환 과정에 관한 설명을 제공한다.
오랜 세월 그 어떤 부족도 창조 이야기를 통해 존재의 의미가 정의되지 않는다면,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믿음 상실의 대가는 헌신의 출혈, 즉 공동체 대의의 약화 및 해체다.
각 부족의 초기 역사(유대-기독교는 철기 시대 말, 이슬람은 7세기)에서, 신화는 작동하기 위해서 확고히 자리를 잡아야 했다. 일단 확정되자, 신화의 그 어떤 부분도 폐기할 수 없게 되었다. 171
로마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
그는 종교가 보통 사람에게는 진리이고, 현망한 사람에게는 거짓이며, 통치자에게는 유용한 것이라고 했다.
반란, 내전, 테러로 대량 살해를 일으키는 주된 원동력은 부족주의다.
치명적인 부족주의를 뒷받침하는 핵심 논리를 제공하는 것은 종파적 종교다.
예. 미얀마에서 불교 "극단주의자"들이 저지르는 무슬림 살해.
미국에서, 어떤 사람이나 집단의 창조 신화 - 믿음 - 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누군가의 신성한 창조 신화에 있는 무언가를 혐하하는 것은 "종교적 편협함"이다. 그것은 개인을 위협하는 행위와 동등하다고 간주된다.
종교의 역사를 표현하는 또 한가지 방법은 믿음이 종교적 영성을 강탈해 왔다는 것이다. 조직 종교의 예언자들과 지도자들을 여성을 창조 신화를 통해 정의된 집단에 복속시켜 왔다.
신자는 세계의 안전과 영생이라는 약속을 받고 신에게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의식 행사와 신성한 의례와 희생을 바친다. 올바른 도덕적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도 신과의 거래 내용 중 일부다.
기독교 신양 내에서도 개별 교파들의 대부분은 신이 동성애, 인공 피임, 여성 주교, 진화 같은 것들 중 하나 이상에 반대하라는 의무를 지웠다고 본다.
가장 진지하게 종교를 탐구하는 저자들은 초월적인 이미의 추구를 창조 신화의 부족주의적 방어 체계와 융합한다. 그들은 인격신의 존재를 받아들인다. 아니 부정하기를 두려워한다.
하나 같이 지적인 절충주의자들, 그들은 선사시대와 인간 본능의 생물학적 진화에 무지한 경향이 있다.
절충주의자들은 한 가지 해결 불가능한 문제에 직면한다. 키르케고르의 절대 역설.
에수로서의 신이 고통을 겪기 위해, 물질세계에 들어 온 것이 설령 진실이라 선언한다고 해도, 순교자들을 실제로 고통을 겪도록 내버려 두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문제는 신의 본질이나 존재 여부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 존재의 생물학적 기원과 인간 마음의 특성에 있으며, 우리를 생물권 진화의 정점으로 만든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 현실 세계에서 살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 자신을 악마와 부족 신에게서 해방시키는 것이다. 177
14 자유의지
신경 과학자들, 의식의 물질적 토대, 자유 의지는 그것의 한 부분이다.
철학자들은 의식을 설명하기 위해 2000년이 넘는 세월을 애써 왔다. 하지만 그들은 생물학에 무지했다. 나는 압축된 철학의 역사가 주로 실패한 뇌 모형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해도 그리 가혹하지 않다고 믿는다.
퇴행적인 이들, 후기구조주의
그들은 뇌 연구자들의 "환원론적" 즉 "객관주의적" 연구 계획이 의식의 핵심을 설명하는 데 성공하지 못한 것이라고 의구심을 드러냈다. 설명 의식이 물질적 토대를 지닌다고 해도, 주관성은 과학의 너머에 있다고 본다. 이 미스터리언들은 논증을 펼치기 위해, 감각 입력 과정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거의 표현하기 어려운 미묘한 느낌인 이른바 감각질qualia를 언급한다.
더 회의적인 철학자들은 하향식 및 내성적인 방법을 쓴다.
뇌 활성 지도 BAM 계획
뇌 크기가 점진적이지만 급속히 증가했다는 것은 의식도 다른 복잡한 생물학적 계와 비슷한 방식으로 단계적으로 진화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인간 수준으로 나아가는 경로의 중간에 있는 동물 종들을 연구함으로써 인간 의식으로 이어지는 단계들을 추적하는 일이 가능할 것이다.
의식과 자유 의지의 세계로 진입하는 두 번째 지점은 창발적 현상을 파악하는 것이다. ... 의식과 자유 의지는 감각계와 뇌 양쪽의 다양한 부위들의 연관과 동조 활동 속에서 발견될 것이다. 186
인간의 지각 범위가 협소하다는 것도 또 하나의 강력한 추가 이점이다. 우리는 아주 협소한 범위의 시공간을 지각할 뿐이며, 에너지장 면에서는 더욱 협소하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존재하는 시공간이다. 의식적 마음은 연속체들 속에서 우연히 우리가 차지하게 된 부분들이 교차하는 지점에 있는 우리 인식의 지도다.
감각정보와 시간의 경과를 이해하는 일은 대체로 의식 자체의 큰 부분을 이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내 낙관주의의 마지막 이유는 인간의 작화 필요성이다. 우리 마음은 이야기하기로 이루어진다.
의식적 정신생활은 전적으로 작화로부터 구축된다. 과거에 경험한 이야기들과 미래를 위해 창안된 이야기들이 서로 경쟁하면서 끊임없는 검토되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188
의식이 물질적 토대를 지닌다면, 자유 의지도 마찬가지일 수 있지 않을까? 뇌의 다양한 활동들 속에서 무언가가 시나리오를 짜고 스스로 판단을 내리기 위해 뇌의 기구로부터 독립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우리는 그 무언가를 자아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무엇이 자아가 되는 것일까? 그리고 자아는 어디에 있을까? 자아가 외 안에서 독립해 살아가는 초자연적인 존재로 존재할 수는 없다. 오히려 자아는 지어낸 시나리오들의 주인공이다. 시나리오에서 독립된 존재로 착가하도록 만들어졌어도, 자아는 몸의 해부학과 생리학의 일부다.
개별 마음을 그 자체나 다른 어떤 별도의 연구자가 온전히 묘사할 수 없기 때문에 자아(의식의 시나리오들에서 유명한 주역)는 자신의 독립성과 자유 의지를 계속 열렬히 믿을 수 있다. 그리고 다윈주의 측면에서 볼 대, 그 점은 매우 다행스럽다. 자유 의지가 있다는 확신은 생물학적 적응성을 지닌다.
그렇다면 자유 의지는 존재할까? 그렇다. 설령 궁극적으로 실재하지는 않는다고 할지라도, 적어도 조작적인 의미에서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는 데, 그럼으로써 인간 종을 영속시키는 데 필요하다. 191
V 인간의 미래
15 우주에서 홀로 자유롭게
우리 종의 이야기가, 종교와 이념에 찌든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라, 과학을 통해 드러난 이야기가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이 무엇일까?
나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해 줄 수 있을 만큼 증거가 많고 명확하다고 믿는다. 우리는 초자연적 지성체의 창조물이 아니라, 우연과 필연을 통해 나온 지구 생물권에 있는 수백만 종 가운데 하나라고 말이다. 197
여태껏 그 모든 일의 걸림돌이 되어 온 것은 호모 사피엔스가 천성적으로 기능에 이상이 있는 종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구석기 시대 저주에 걸려 있다. 수렵 채집인으로 살아가던 수백만 년 동안은 잘 작동했지만, 지구 전체가 도시화한 과학 기술 시대에는 점점 더 방해가 되고 있는 유전적 적응 형질들을 말한다. 우리는 마을보다 더 높은 수준의 사회를 통치할 수단이나 경제 정책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없는 듯하다. 게다가 전 세계 사람들의 대다수는 신자들의 복종과 자원을 차지하기 위해 자신이 초자연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이끄는, 부족 수준에서 조직된 종교에 여전히 얽매여 있다. 우리를 부족적 갈등에 중독되어 있다. 그것은 현실 세계의 인종적, 종교적, 이념적 충돌 형태로 표출된다면 치명적이다.
다른 유전적 편향들도 있다. 자기 자신에게 너무 몰입한 나머지 우리는 나머지 생명을 보호할 생각을 않고, 계속 자연 환경을 찢어발기고 있다. 우리 종의 대체 불가능한 가장 소중한 유산을 말이다. 그리고 적정 인구 밀도, 지리적 분포, 연령 분포를 겨냥해 인구 정책을 펼치는 일은 여전히 금기시된다. 그런 생각은 "파시즘"처럼 들리며, 어쨋든 앞으로 한두 세대 동안은 미룰 수 있을 것이다. 200
자연 선택의 두 수준이 경쟁하면서 일으키는 양심의 내면 갈등이 그저 이론 생물학자나 따지고 들 심오한 주제인 것만은 아니다. 그 갈등은 우리의 마음 속에서 서로 싸우는 선과 악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조건을 이해하는 데 필요하고, 종의 생존에 필수적인 생물학적 형질이다. 선행 인류가 유전적으로 진화할 때 이 상반되는 선택압들은 타고난 감정 반응의 불안정한 혼합을 낳았다.
감정의 불안정성은 우리가 계속 간직하기를 바라야 하는 특성이다. 그것은 인간성의 핵심이며, 우리 창의성의 원천이다. 우리는 격변에 대비된 더 합리적인 미래를 계획하려면 진화적 및 심리학적 용어로 자신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더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법을 배워야 하지만, 인간 본성을 길들일 생각은 아예 하지 말자.
생물학자들은 성가시지만 견딜 수 없는 수준은 아니라고 정의되는 용인할 수 있는 기생 생물 부하라는 아주 유용한 개념을 만들어 냈다.
용인할 수 있는 기생 생물은 자신의 생존과 번식을 확보하면서도 동시에 숙주에 가하는 고통과 비용을 최소로 하는 생물이다. 204
사회적 생물이 지닌 타고난 파괴적인 형질은 기생 생물이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것에, 그리고 그 형질의 영향을 문화적으로 약화시키는 조치는 용인 가능한 도구마 부하를 줄이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204
맹목적인 신앙의 궁극적인 추진력은 신에게 받은 영감이 아니다. 그것은 집단의 구성원이라는 자격이다. 짐단의 복지와 그 영토의 수호는 초자연적으로 기원한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으로 기원한 것이다. 신학적으로 억압된 사회를 제외하고, 개인이 종교를 바꾸고, 종교가 다른 사람과 혼인을 하고, 도덕성이나 마찬가지로 중요한 경이감을 느낄 능력을 전혀 잃지 않은 채 종교를 버리는 것도 쉽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208
계속 진화하면서 무한히 다양해지는 쪽은 인문학일 것이다. 우리 종에게 영혼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 영혼은 인문학 속에 사라고 있다.
하지만 창작 예술과 그 비평을 포함하는 이 거대한 학문 분야는 여전히 인간의 마음이 존재하는 감각 세계의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심각한 한계 때문에 방해를 받고 있다. 우리는 주로 시청각에 의지하며, 다른 수백만 종의 대다수가 살아가고 있는 미각과 후각의 세계를 알지 못한다. 우리는 몇몇 동물들이 방향을 찿고 의사소통을 하는 데 쓰는 전기장과 자기장은 아예 감지하지 못한다. 우리 자신의 시청각 세계에서도 우리는 상대적으로 눈과 귀가 먼 쪽에 가깝다. 전자기 스펙트럼의 아주 좁은 범위만 직접 지각할 수 있을 뿐, 땅, 공기, 물을 통해 굽이치면서 우리를 지나는 진동수를 아예 감지하지 못한다.
창작 예술가들과 인문학자들은 대체로 생물 부분과 무생물 부분 양쪽으로 지구의 방대한 시공간 연속체를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태양계와 그 너머 우주의 시공간 연속체는 더욱더 알지 못한다.
과학과 인문학은 기원을 보면 둘은 서로 상보적이며, 인간 뇌의 동일한 창의적 과정들을 통해 나온다. 과학의 발견적이고 분석적인 힘이 인문학의 내성적 창의성과 결합된다면, 인간 존재는 무한히 더 생산적이고 흥미로운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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