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한스 요나스, 생명의 원리

『생명의 원리』의 과제와 방법 그리고 의의

백_일홍 2023. 11. 26. 22:06

『생명의 원리』의 과제와 방법 그리고 의의

『생명의 원리』의 과제는 철학적 생물학의 일종으로서, 한편으로는 객관적 형식으로서의 생명체를 다루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이 생명체를 반성하고 해석해 내는 것까지도 다루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명체의 물질대사·감각·운동·정서·지각.상상력·정신 등의 생명현상과 그 자취에 대한 자료, 즉 철학이 제시하는 자료와 자연과학의 여러 학문들이 제시하는 자료들을 검토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인간이 생명의 자연사에서 표상했던 것들과 인간 자신에 대해서 이론화하려고 했던 것을 반성해 본다. 후자의 단계에 이르면, 이미 생명철학은 인식론·윤리학.형이상학의 지평에서 생명의 문제를 다루게 된다. 한스 요나스는 20세기의 생물학·물리학과 대화하면서도, 철학의 독자적인 특성을 살리면서 생명철학을 전개해 간다. 그리고 철학사에서 등장하는 유물론과 관념론, 기계론과 생명체론(유기체론) 등도 검토하고 있다. 그의 생명철학이 제시하는 생명존재는 자유와 필연, 존재와 비존재의 양극성을 갖는 존재이다.

한스 요나스는 자신이 생명을 이해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방법을 비판적인 분석의 방법과 현상학적 기술의 방법으로 간주한다. 그는 자연과학적 분석의 자료들을 수용하고 검토하면서도 자연과학적 생명이해가 자칫 빠질 수 있는 유물론적 생명이해의 한계에 갇히지 않으려고 비판적인 거리를 취하며, 또한 철학에서 나타나는 관념론적 생명이해나, 실존주의적 인간중심적인 생명이해의 한계에 갇히지 않으면서, 생명의 사태에 대해서 몸을 가지고 있고 살아 있는 우리들의 체험과 내면성이 증거해 주는 자명한 사태 자체들(이를테면 자유·초월· 살려고 애씀 등)을 현상학적으로 기술하고, 여타의 생명체들에게도 유추시켜 기술한다. 그리고 사태 자체의 기술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문제에 대한 반성의 차원에서는 철학적 생물학의 사유에 의존하고 있다. 그리고 이 두 방법의 경계선을 넘어서는 영역, 즉 윤리학과 형이상학에 속하는 영역에 대해서는, <모든 생명체가 살려 고 애쓴다>는 사태 자체에서 출발하여 생명의 가치를 윤리적으로 정당화하기도 하고, 더 나아가 형이상학적·종교적 사변(이것도 생명의 자연사의 산물인 인간 정신이 표상해 낸 것이므로 결국은 생명의 자연사가 보여주는 증거이다)에도 의존하여 유한한 인간이 어떻게 불멸의 선(善)을 향한 차원을 열어갈 수 있겠는가를 근거짓는다.

오늘날에는 생명공학과 유전공학의 획기적인 발전에 힘입어 유전자 조작으로 변형된 생명의 출현 그리고 컴퓨터공학과 기계공학과 생명공학과 뇌과학이 협력하여 만들어 내는 인공생명의 출현 그리고 생태계 파괴가 생명의 종(種) 등의 생존을 위협하는 기존의 사태가 더욱 악화되면서, 생명의 문제는 긴박한 해명을 요청하고 있다. 특히 머지않아 <인간 게놈 계획 Human Genome Project>"이, 마무리될 것이기 때문에 생명 진화의 정점에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인간 생명에 대한 연구도 크게 진척되리라고 예측된다. 이러한 시점에서 한스 요나스의 '생명의 원리』는 철학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다른 학문들과 대화하면서 생명의 문제를 반성해 보는 통합학문의 성격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특히 의미가 있다. 지구상에서 기나긴 역사에 걸쳐서 펼쳐지는 생명의 출현과 진화, 가장 저급한 수준의 생명에서 출발하여 가장 고급한 수준의 생명에 이르기까지의 파노라마를 이해하려는 주제의 특성상 지구공학·물리학, 생물학, 생명공학·화학·심리학 · 인식론· 윤리학·종교는 통합될 필요성이 있다. 그리고 한스 요나스는 선구적으로 이러한 시도를 착수하였기 때문에, 생명을 탐구하는 사람들에게는 거쳐야 할 디딤돌이 되어 줄 수 있다.

현상학적 관심에서 한스 요나스를 평가하자면, 그는 의식의 현상학이 자연을 관념적으로 사유하고 있는 한계를 박차고 나와, 자연 속에 삶의 터전을 가지고 있는 생생하게 살아 있는 생명체와 그 환경세계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철학의 주제로 삼는 현상학이라는 점에서 자연의 현상학으로의 전환을 구체적으로 시도한 사람이다. 동시에 그는 모든 경험과 대상세계를 최종적으로 반성하는 교두보를 의식에서 확보하는 의식의 현상학의 장점을 계속 보존하고 있다. 인간의 정신이 가지고 있는 반성력, 실천적인 자유와 관련된 능력 등은 곧 전체 자연사의 한 부분이므로, 이들이 증거해 주는 사실들도 생명을 이해 하는 과제에서 제외해서는 안 될 측면으로 그는 받아들이고 있다. 5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