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이름보다 오래된

백_일홍 2023. 12. 16. 15:10

이름보다 오래된,

문명과 야생의 경계에서 기록한 고라니의 초상

 

문선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약간의 시간인지도 모른다. 낯설고 불가해한 존재들을 천천히 들여다볼 시간. 

 

초대받지 않은 손님

 

고라니를 만나기 위해 서식지와 동선을 더듬다 보니, 그들이 난개발과 도시에서 밀려든 사람들 등쌀에 몹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실감하게 되었다.

인구 절벽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어딜 가나 도시는 점점 더 비대해지고 있었다. 새로운 산업단지들도 여기저기 거대하게 터를 닦는 중이었다. 시골 깊숙한 곳까지 파고든 전원주택단지와 요양시설, 공동묘지와 납골당, 그리고 여가를 즐기기 위해 우후죽순 생겨난 각종 테마파크, 레포츠시설, 골프장, 캠핑장, 카페, 펜션들 때문에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인간에게는 대체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 것일까?

그나마 남은 땅들은 거미줄처럼 깔린 도로망으로 인해 조각조각 갈라져 단절된 상태였다. 그동안 나는 도로는 장소와 장소를 연결하는 기능을 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야생동물의 입장에서 바라보니 인간이 만든 도로는 지역을 가르고 분리하는 경계이자 장애물로 작동되고 있었다.

개발에 밀려나고 조각난 틈새에서 웅크린 채 살아가는 고라니들, 더 강하고 무신경한 존재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그들의 불안을 떠올리자,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옹색하게 남은 서식지에서 가뜩이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고라니들의 영역에 발을 들이는 일이 영 내키지 않았다. 사방에서 밀려드는 침입자들의 대열에 나까지 합류하고 싶지 않았다. 73

 

 

연결된 시간들


가슴이 마구 두근거렸다.

고라니의 얼굴에는 오묘하게도 저마다의 성격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초코의 얼굴은 순박하고 정다웠다. 경계심이 많아 다가오지 않던 아기 고라니의 얼굴은 새침하고 도도했다. 어쩌면 나는 세계 최초의 고라니 관상가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며 혼자 키득키득 웃었다.

고라니들의 얼굴에 오롯이 새겨진 고유성에 깊이 매료되었다. 모두가 이 세상에 단 하나의 존재로 초대받은 소중한 생명이라는 것, 당신의 어머니와 나의 어머니를 부품처럼 갈아 끼울 수 없듯이 모든 생명은 대체 불가능하다는 명제가 생생하게 와 닿았다.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로 당연한 이치지만, 그것을 머리로 아는 것과 체험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었다. 마치 은하수라는 단어를 아는것과 은하수를 직접 보는 것이 차원이 다른 일인 것처럼, 고유성에 깃든 경이와 다양성에 깃든 장엄함을 생생하게 체험한 후, 나는 비로소 생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81-82

 


비무장지대에서

 

비록 제한적이고 일회적인 만남이라도 얼굴을 보는 일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오직 언어로만 명명된 존재는 실체가 없다. 실체가 없는 대상과 단 한 번이라도 얼굴을 마주한 대상은 같을 수가 없다. 일명 첫인상으로 어떤 오해와 편견이 생길지라도, 일단 한 번 일굴을 보게 되면 이름에 눈, 코, 입이 얹어지고 온기가 돌게 된다.

고라니라는 이름 석 자로 뭉뚱그려진 존재들을 한을 한올 풀어내기로 마음먹었다. 유일무이하고 고유한 존재를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것, 주장하거나 설득하는 대신 그 자체로 보여주는 것, 그리하여 존재마다 깃든 빛을 드러낼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만으로도 그들을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닌 경험해야 할 신비로 형상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고라니 초상 사진 작업이 시작되었다. 83

 

 

생사의 교차점


다시 구조센터를 찾아갔을 때 마침내 보고야 말았다. 흰색 트럭 옆에 가지런히 주차하고 차에서 내렸는데 트럭 짐칸에 죽은 고라니 두 마리가 포개져 있었다. 텅 비어버린 눈과 빳빳하게 굳은 몸을 본 순간 머리가 새하얘졌다.

 

다리에 힘이 풀려 휘청거리며 겨우 건너면 등나무 아래로 가서 앉았다. 부들대는 팔을 끌어안자 온몸이 떨려왔다. 하나의 생명이 사라지는 것은 하나의 우주가 사라지는 일, 나는 두 개의 우주가 사라지는 현장의 마지막 목격자였다. 이곳이 어린 생명들을 구할 뿐 아니라 일상적으로 싸늘한 주검의 숫자를 헤아리는 곳이기도 하다는 것을 처음으로 실감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고라니들이 죽어간다. 고라니들의 입장에서 인간 중심의 세상은 마치 거대한 블랙홀 같지 않을까. 사방이 조여 오고 소용돌이에 한 번 휘말리면 결코 헤어날 수 없는 곳, 눈을 감으면 고라니들이 그 죽음의 시스템에 붙들려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광경이 떠오르곤 했다. 104-105

 

 

안녕을 위한 의식 

 

내가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그들의 안녕이었다. 부디 무사히 살아남기를. 무탈하게 지내기를 바랐다. 그러으로 이 초상 사진 작업은 존재 하나하나에 대한 나의 간절한 호명이자 정성 어린 기도였다.

지난 10년간 200여 마리의 고라니를 만났다. 처음 고라니 초상 사진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만 해도 나는 길어도 3~4년이면 이 프로젝트를 매듭지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50여 점의 초상 사진을 완성하기까지 꼬박 10년이 걸렸다.

야생동물구조센터의 협조를 얻는 일이 언제나 성사되는 것은 아니었다. 기존에 협조했던 곳이라도, 구성원이 바뀌면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매번 온 마음을 다해 작업의 취지를 설명했고, 얻어낸 공감의 정도와 깊이에 따라 허락되는 시간의 총량이 결정되었다.

운 좋게 기회를 얻어도 야생의 존재를 정면에서 마주하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경우에 따라 며칠이 걸리기도 했고, 몇 달이 걸리기도 했다. 첫 만남에 극도의 경계심이나 불안감을 표현해 시도조차 못한 경우도 많았고, 몇 달을 기다렸으나 마음을 열어주지 않아 끝내 촬영하지 못한 적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들의 있음을 기록하는 것은, 기교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였다. 나는 최대한 방해하지 않고 고라니들이 그들의 세계에 잠겨 있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러다 간혹 그 세계가 열려 교감의 순간이 찾아오면, 존재 대 존재로 그들과 마주하고자 노력했다.

어려운 일이었지만 힘들지는 않았다. 고라니와 마주하고 있으면 내가 그들에 대해 아는 모든 지식과 정보들이 불가사의할 정도로 얄팍하게 느껴졌다. 그 느낌이 싫지 않았다. 아니, 내 논리나 이해의 범위를 초월한 존재와 마주하는 그 시간이 소중하고 좋았다. 그때의 느낌이 아직도 내 안에 남아 있다. 106

 

그동안 차곡차곡 모아온 사진을 꺼냈다. 마침내 서로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그 순간에 당도했을 때, 부지불식간에 두 영혼이 두 세계가 연결되었던 그때의 일렁임이 담긴 사진을 골랐다. 오직 존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배경과 컬러를 닦아냈다. 몸도 과감히 생략했다.

미처 준비되기 전에 홀로서기를 해야 했던 어린 고라니들의 초상은 졸업 앨범 형식으로 구성했다. 무미건조하고 획일적인 타원형의 틀이 역으로 그들의 고유성을 도드라지게 하는 장치가 되어주었다.

어른 고라니들은 고요한 숨결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에너지의 흐름 속에 세웠다. 의외로 피사체와 배경의 조화가 쉽지 않았다. 고라니가 풍기는 분위기에 따라 안개의 농도와 흐름이 미묘하게 어긋났다. 하나의 초상을 완성하기 위해 수십 번의 시도가 필요했다.

정성을 들여 초상 사진을 하나씩 완성해나갔다. 비슷하지만 똑같은 얼굴은 없다. 모두가 이 세상에 단 하나의 존재로 초대받은 생명들이다. 그 유일무이함에 가슴이 부풀기도, 아리기도 했다.

끝끝내 나에게 마음을 열어주지 않았던, 그래서 한 장의 사진조차 남기지 못했던 고라니들도 내 마음속에 들어와 별처럼 총총히 빛나고 있다. 멀리서 보면 그저 흔한 사슴이겠지만, 모든 존재에게는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심연이 있다. 몸을 낮추고 눈을 맞추는 일, 그 단순한 경험만으로도 우리는 살아 숨 쉬는 생명의 의미와 무게를 실감할 수 있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약간의 시간인지도 모른다. 낯설고 불가해한 존재들을 천천히 들여다볼 시간. 107

 

 

아우트로,

생명의 편에서

 

유해야생동물 구제사업 같은 정부의 정책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동의할 수는 없다. 사회적 시스템을 구축할 때도 생명에 대한 감수성은 필요하다. 경제적 이유로만 모든 생명체를 취사선택·수립해간다면, 다른 종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생태계에서 생명체들은 서로 얽히고 의지함으로써 모두를 지탱한다. 어떤 종을 멸종위기로 내모는 일은 결국 자신의 생명을 떠받치고 있는 기반을 파괴하는 행위다. 모든 생명은 존재할 권리가 있으며, 이미 존재하는 이상 누구도 구태여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할 필요는 없다.

만약 우리가 방향성 없이 나아가기만 한다면 과연 우리는 나아가는 것일까? 우리는 어떤 기준과 원칙을 가질 것인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공존을 포기하거나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대안을 찾아야 한다. 생명은 일회적이며 불가역적이다. 죽은 생명을 되살릴 방도는 없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배려하는 일, 그것을 실천하는 일이 설령 어려울지라도 아직 시간이 있을 때 그렇게 해야 한다.

세상은 복잡하고 빠르게 변한다. 사람들은 고라니를 생각할 여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관심을 두지 않는 사이에 우리의 세금은 방아쇠를 당기고 있다. 야생동물을 멸종위기에 처하게 하는 것도 사람이지만, 멸종위기에서 지키는 것도 사람이다. 복잡하게 얽힌 매듭을 풀어내기 위해서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우리는 농민과 야생동물 중 어느 한쪽 편에 서기 위해 비정해질 필요가 없다. 지금 야생동물들을 죽이는 데 사용되고 있는 세금만으로도, 농민들의 피해 부담을 덜어주고, 야생동물과의 공존을 위한 연구도 진행할 수 있다. 고라니와 공존을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돈이 아니라 마음이다. 고라니를 죽일 것인지 살릴 것인지는 모두의 선택에 달려 있다. 192

 

생명이란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기적이기에 이에 대항해 싸움을 벌일 때조차 경외심을 잃어서는 안 된다. 야생동물을 통제하기 위해 무기에 의존하는 것은 우리의 지식과 능력 부족을 드러내는 증거이다. 자연의 섭리에 따른다면 야만적인 힘을 사용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겸손이다.

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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