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위대한 전환 (5)

백_일홍 2024. 11. 13. 15:23

위대한 전환

 

데이비드 코튼


제5부 
지구공동체를 탄생시키기 

우리 자신이 우리가 추구하는 바로 그 변화가 되어야 한다.
- 모한다스 K 간디Mohandas K. Gandhi 

새로운 시대를 탄생시키는 리더십은 현 상태가 편하게 느껴지는 사람들에게서 나오지 않는다. 자신의 특권을 지키려 하는 사람들에게서도 나오지 않는다. 새로운 시대를 만드는 리더십은 제국의 문화와 제도가 촉진하는 믿음과 가치가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에게서 나 온다. 그리고 그들은 실천을 통해 자신이 추구하는 변화에 구체적인 표현형을 제공함으로써 그 변화를 실현시킬 것이다. 533 


제19장 아래로부터 리드하기 

전략 

첫째, 문화적 의식과 영적 의식으로의 각성을 가속화하라. 제국의 문화는 조작된 문화이며 일종의 최면 상태를 만들어낸다. 개인 차원에서는 최면에서의 각성이 한 명씩 일어나지만 각각의 각성은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새로운 역할 모델이 된다. 활성화된 역할 모델의 수가 많아질수록 각성은 더 빠르게 확산될 것이고 문화적으로 해방된 사람들이 더 쉽게 서로를 발견해 고립이 일으키는 무력감을 깨고 나올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상이한 문화를 넘나드는 경험을 창출하고, 의미와 가치에 대한 깊은 성찰을 독려하고, 제국의 모순을 드러내고, 기존의 이야기들을 바꾸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실현되지 못한 인간의 가능성을 알게 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각자의 실천 및 서로와의 대화를 통해 각성의 과정을 촉진할 것이다. 539 

둘째, 아동, 가정, 공동체, 자연에 대한 제국의 공격에 저항하라. 
시민불복종 운동, 비폭력 운동
비폭력의 원칙은 지구공동체가 도덕적 권위를 갖게 하고, 제국에 정당성이 없음을 만천하에 드러내며, 폭력의 사이클을 깨뜨린다. 

셋째, "일치의 공동체"를 일구고 연결하라. 전세계에서 수억 명의 문화 창조자와 영적 창조자들이 "일치의 공동체"를 구성함으로써 고차원의 인간 잠재력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한 공동체에서 사람들은 살아 있는 사회의 제도, 관계, 그리고 진정한 문화를 발달시킨다. 일치의 공동체는 동네의 공부 모임처럼 간단한 것일 수도 있고, 농민장터일 수도 있고, 탐구적인 정신을 발달시키는 데 헌신하는 학교일 수도 있고, 자발적으로 단순한 삶을 사는 방법을 알려주는 강연회일 수도 있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사업체일 수도 있고, 영적인 탐구와 공동체 서비스에 현신하는 교회 모임일 수도 있고, 전체론적인 의료를 지향하는 진료소일 수도 있다. 처음에는 이러한 운동 각각이 작고 고립되어 있을 수 있지만 각각은 다양성, 실험, 학습이 융성할 수 있는 일종의 해방구를 창출하며 이러한 공간들은 새로운 경제, 정치, 문화를 주류로 만들어가는 데 주춧돌이 된다. 

넷째, 정치적 다수를 만들라. 주춧돌이 탄탄하게 놓이고 지구공동제의 이야기가 더 정교하게 연마되면 그 다음 임무는 정치적 다수를 일구는 것이다. 그러려면 기업의 영향력에 흔들리지 않는 수많은 공식, 비공식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통해 지구공동체의 문화가 주류가 되게 만들어야 한다. 일치의 공동체들이 문화를 지구공동체 쪽으로 기울이기 시작하면 경제, 정치, 문화 영역의 공식적인 제도들도 급진적인 민주주의 쪽으로 전환되기 시작할 것이다. 541 

은유적으로 이 전략을 '왕에게 등을 돌리고 걸어나오는 과정'이라고 표현해볼 수 있을 것이다.이 전략의 핵심이 왕의 권위에 맞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그냥 두고 걸어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왕의 권위로부터 정당성과 생명력을 거둬들이는 것이다. 542 

경제적 전환 

지역적으로 뿌리를 두고 생명을 지원하는 경제를 일구기 위한 운동들 

지구공동체의 가치에 기반한 경제적 운동은 미국만이 아니라 세계의 거의 모든 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새로이 해방된 경제적 공간들이 서로 연결되면서 구매 협동 조합이나 브랜딩 협동 조합처럼 더 큰 통합을 가능케 하는 제도들도 생겨나고 있다. 이들은 전지구적으로 연결되지만 각자의 장소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해당 지역의 공동체들이 통제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확장이 일어날 때마다 사람들에게 어디에서 장을 보고, 어디에서 일을 하고, 어디에 투자를 할지에 대해 더 많은 선택지를 제공하며, 그럼으로써 글로벌 기업이 지역에서 빨아들였던 생명의 에너지가 지역으로 돌아오게 할 수 있다. 544 

☆ 19장 정리:
제국의 문화적 최면에서 깨어난 문화 창조자, 영적 창조자들이 제국 을 등지고 걸어 나와 서로와 함께 문화적 해방 공간을 만들면서 파트너 십의 문화와 제도를 실험하고 있다. 

제국과 지구공동체 사이에 벌어지는 투쟁의 결과는 궁극적으로 문화 정치에 달려 있다. 제국의 문화가 이긴다면 제국이 이기고 우리는 거대한 해체의 시대를 살게 될 것이다. 지구공동체의 문화가 이긴다면 지구공동체가 이기고 우리는 위대한 전환의 시기를 살게 될 것이다. 물론 현재 제국이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여러 여론조사 결과들은 앞으로 지구공동체가 상당한 강점을 갖게 되리라는 점을 시사 한다. 553 


제20장 정치적 다수를 형성하기 

아동, 가정, 공동체의 가치에 대해 거의 모두가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열망과 관심은 지구공동체를 향한 운동이 "다수"의 정치 기반을 갖게 할 토대다. 뉴라이트의 극단주의는 이 점에서 매우 불리하다. 뉴라이트가 미는 정책들은 아동, 가정, 공동체에 대한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 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화 정치 

위대한 전환의 문화 정치는 저차원의 인간 의식과 고차원의 인간 의식이 사회화된 의식을 잡기 위해 벌이는 투쟁이다. 사회화된 의식을 가진 "좋은 시민"들이 스윙보터인 셈이다.
인간의 미래는 오늘날 다수를 차지하는 스윙보터의 사고가 제국와 지구공동체 중 어느 쪽의 문화적 가치와 세계관에 영향을 받아 구성될지에 달 려있다(117페이지 그림 1을 참고). 

뉴라이트가 알고 있는 것 

현재 미국에서 사회화된 의식을 잡기 위한 경쟁은 매우 일방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문화 창조자와 영적 창조자 대부분이 문화 정치의 속성과 합의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윙보터인 "좋은 시민들은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 당대의 지배적인 문화가 규정하는 규칙과 가치에 따라 살아간다. 뉴라이트는 이들에게 영향을 미칠 문화적 이야기 들을 만들어내고 확산시키기 위해 비교적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 는 반면, 진보 진영은 수많은 집단 각각이 논리와 양심에만 호소하면서 각각의 정책을 따로따로 추진하고 있다. 자신의 문화적 이야기를 지배적인 이야기로 등극시키면서 뉴라이트는 정치적으로 유리한 고지에 선 반면, 진보 진영은 점점 더 수세적이 되어 뉴라이트가 치고 나가는 정책들을 막거나 완화하는 데만 급급하게 되었다. 559 

2004년 대선.
처음에 뉴라이트는 "침묵하는 다수Silent Majority 이야기하면서 그 들의 목소리를 자신이 대변한다고 주장했다. 그 다음에는 침묵이 선거나 입법에서 승리를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서 '도덕적인 다수 Moral Majority'로 명명을 바꾸고서 스윙보터인 "좋은 시민들에게 미국의 정치적 도덕성을 고양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도덕성'을 낙태나 동성 결혼과 같은 이슈 중심으로 규정하고 이런 것들이 가족 가치를 훼손한다고 주장하면서 교회와 미디어를 통해 이러 한 메시지를 확산시켰다. 이렇게 해서, 아동과 가정에 해가 될 경제 정책을 촉진하는 데 아동과 가정의 후생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정치적으로 동원되었다. 사실 금권 귀족과 네오콘들은 가족 가치(가족 가치를 무엇이라고 규정하 든 간에)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지대하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경제 사안들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돌리는 데 동성 결혼이나 낙태 사안이 매우 유용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와 같은 영리한 정치 전략 덕분에, 경제적 집중화와 상류층의 지배라는 그들의 진짜 아젠다와 관련된 정치인들이 대중적으로 유권자 기반을 확대할 수 있었다. 560 

진보 진영이 알아야 하는 것 

지구공동체가 승리할 수 있으려면 진보 진영은 문화 정치에서 승리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문화 정치에서 승리하면 선거와 입법의 승리가 뒤따라 올 것이다. 성공의 핵심은 인간 의식의 각 차원이 서로 다른 세계관에서 작동하며 공감과 이해의 역량에서도 서로 차이를 보인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요컨대, 고차원 의식에서는 쉽게 이해되는 메시지가 저차원 의식에서는 비논리적이거나 불합리하게 보일 수 있다 '권력 추구자'에게 그들의 행동에 담긴 도덕적 위선을 인정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용하다. 제국적 의식은 정서적 지성이 부족해서 자신이 저지른 행동에 대해 희생자의 눈으로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화된 의식을 가진 사람에게는 이러한 위선을 깨달으라고 하는 것이 그리 무리한 요구가 아니다. 그들은 공감의 역량을 획득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아직 그 공감을 자신의 정체성 집단 외부로까지 적용하지는 못하더라도 말이다. 

의식의 어느 차원에 있든지 간에 우리 모두는 자신의 의식이 속한 차원이 아닌 의식들의 가치와 세계관이 당기는 힘에 영향을 받는다. 지구공동체로 전환하는 데 사회화된 의식이 핵심적으로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어느 쪽의 당기는 힘이 더 센지에 따라 제국으로도, 지구공동체로도 이끌릴 수 있기 때문이다. 궁극적인 우위는 지구공동체 쪽에 있다. 인위적인 장애물들로 가로막히지만 않는다면 우리의 자연스러운 본성은 인간으로서의 역량과 이해를 더 키우고자 하고 계속 확대 되어가는 생명의 망에 연결되고 싶어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극단 주의자들은 속임수와 조작을 동원해서 인간의 자연스러운 열망을 꺾어야 하지만 문화 창조자와 영적 창조자들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열망을 북돋우고 지원하기만 하면 된다. 

제국에 의해 체계적으로 억압되지만 않는다면 문화적 의식과 영적 의식은 성숙한 성인이 자연스럽게 도달하는 상태다. 4장에서 언급했듯이, 우리 시대에 몇 가지 요인이 수렴하면서 문화 창조자와 영적 창조자가 꾸준히 늘어날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되었다. 우리가 그렇게 하기로 선택만 한다면, 성인 대다수가 문화적 의식을 달성하고 성인기의 후기 무렵에는 다수가 영적 의식도 달성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562 

보수와 진보의 연대 

뉴라이트는 자칭 보수라고 하지만 이것은 그들이 구사하는 속임수의 일부다. 뉴라이트의 실제 정책은 보수와 거리가 멀다. 적어도 대부분의 미국인이 생각하는 의미에서의 보수는 아니다. 미국에서 현재 문화 전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이것은 보수와 진보 사이의 전쟁이 아니다. 보수와 진보는 사실 많은 면에서 핵심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 가령 아이 들, 가정, 공동체, 개인의 책임, 민주주의를 중요시한다는 점은 보수, 진보가 따로 없다. 문화 투쟁은 제국의 문화와 지구공동체의 문화 사이에, 저차원의  인간 의식과 고차원의 인간의식 사이에, 개인의 탐욕과 권력에 기초한 제국의 정치와 공공선과 법치에 기초한 민주적 정치 사이에, 아직도 제국적 의식에 갇혀 있는 극단주의적 정치 분파의 '권력 추구 자들과 진짜 문제에 대해 진짜 해법을 찾고자 하는 더 일반적인 정치 스펙트럼의 현실주의자들 사이에 벌어지고 있다.574 

☆ 20장 정리:
때때로 나라를 찢어버릴 듯한 정치적 긴장이 일곤 하지만, 기저에서는 합의와 공감대의 틀이 떠오르고 있다. 우리 대부분이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세상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매우 다르다는 공감대 말이다. 보수, 진보할 것 없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재의 세상에서는 주류 문화와 제도가 도덕적, 영적으로 붕괴했으며, 인간의 욕구와 가치에 반응하지 않고, 우리 자신도 열망하며 우리의 아이들에게 꼭 필요하기도 한 탄탄한 가정과 공동체를 파괴한다고 생각한다. "분열시켜 정복 하라"는 제국의 정치 전술에 속아서 이제까지 우리는 제국의 거짓말을 거부하고 아동, 가정, 공동체에 대해 전쟁을 벌이는 뉴라이트에 맞서기위해 통합된 전선을 구성하기보다 각자 비난을 상대에게 돌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간에 너무 쫓겨서 지구온난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유가가 꽤 이렇게 높은지, 이라크 전쟁이 왜 그렇게 끔직하게 엉망이 되었는지 등을 면밀히 뜯어보기 어렵다. 하지만 자신의 삶이 붕괴 직전의 한계까지 가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아이들은 천식, 비만 그리고 지속적인 섹스와 폭력의 이미지를 쏟아내고 정크푸드를 촉진하는
광고에 노출되어 있다. 식탁에 요리를 해서 올리고 아이들을 잘 돌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건강한 아이를 기르려면 건강하고 가정을 지원하는 경제가 필요하며 그러한 경제를 가지려면 건강하고 민주적 책무성을 갖고 사람과 가정과 공동체의 필요와 가치에 반응하는 정치 시스템이 필요하다. 아이들의 건강과 후생을 위한 투쟁은 우리 시대에 폭넓은 사람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통합적인 정치 이슈가 될 잠재력을 가 지고 있다. 이것은 지구공동체 운동을 정치적 다수의 운동으로 조직하고자 할 때 명백한 결집 포인트가 될 것이다. 

가정과 공동체가 탄탄하게 기능하고, 부모가 아이를 잘 돌보고, 모두에게 양질의 의료와 교육이 제공되고, 학교와 가정이 상업적 영향에서 자유롭고, 자연자원이 유독 물질에 오염되지 않고, 국가들이 공동의 선을 향해 협력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우리 인류의 역량 안에서 충분히 가능하다. 이것은 민주적 실험을 다시 일으키는 것이고, 인류의 창조적 잠재력을 해방시키는 것이고, 생명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진정한 정치적 다수를 구축할 수 있는 토대이며 지금이 바로 그에 기반해 정치적 다수를 구축해야 할 때다. 576 


제21장 창조적 잠재력을 해방시키기 

스스로의 삶에 대한 통제력을 잃고 먹고 사는 데만도 급급해진 사람들은 시민적 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이는 활기 있는 공동체 생활에 꼭 필요한 창조적인 문제 해결 역량이 쇠락하는 데로 이어진다. 

지구공동체를 탄생시키는 작업의 기본은 간단하다. 생을 긍정하는 지구공동체의 가치가 지배적인 문화가 되게 해야 하고, 민주적 실험을 되살려서 사람들, 가정, 공동체가 권력을 갖고 그들의 가치가 표현되게 해야 하며, 이 모든 것이 글로벌한 규모가 되게 해야 한다. 579 

살아있는 문화 

살아있는 문화는 가정과 공동체의 삶에서 나오며 우리가 더 고차원의 의식을 발달시키도록 지원하고 육성한다. 제국의 제도들은 문화를 형성하는 과정을 찬탈하고 중앙집중화하면서 잘못된 문화적 가치를 전파했을 뿐 아니라 가족과 공동체의 유대도 약화시켰다. 

위대한 전환의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는 상향식 과정을 통해 제국의 네 가지 핵심 문화 제도(가족, 교육, 미디어, 종교)를 진정한 문화적 표현과 고차원의 의식 계발을 지원하는 살아있는 문화 제도로 전환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목표는 문화의 형성을 참여적이고 목적의식적인 과정으로 만드는 것이다. 각자가 그 과정에서 고유한 문화적 정체성을 찾아나가는 동시에 문화적 다양성이 갖는 창조적 잠재력을 인식함으로써 협업적인 공유와 교환을 촉진하고 상호 신뢰를 일굴 수 있는 과정이 되게하는 것이다. 

가족 

근현대 시기를 거치며 제국은 가족 관계를 약화시켰다. 먼저 대가족이, 그리고 핵가족이 약화되었다. 인간의 제도가 모두 그렇듯이, 가족 역시 폭력적인 억압의 장소가 될 수도 있고 창조적인 표현이 꽃피는 사랑의 장소가 될 수도 있으며 그 중간의 어떤 것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가족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제도이며, 건강한 개인의 발달 과정에 필수적인 지속성 있는 인간 관계의 원천으로서 특히 아이의 건강한 발달 과정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우리의 과제는 가족에서의 관계를 양 육적인 돌봄의 관계로 만드는 것이다. 변화는 한 번에 한 가정씩 오겠지만 가정 친화적인 살아있는 경제와 공공 정책의 지원이 있다면 훨씬 더 쉽게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앞에서 언급했듯이, 경제와 공공 정책 모두가 건설적인 시민 행동의 장이다. 오늘날에는 (그마저도 해체되고는 있지만) 핵가족이 일반적이다. 대가족은 이제 흔치 않게 되어서 우리는 대가족이 제공하던 이득을 잊기 쉽다. 

전통 사회에서 대가족은 사회 조직의 기본 단위로서 기능했고 세대 간 지원 체계를 제공했다. 아이들은 도움을 청할 수 있고 유대감을 가질 수 있는 돌봄 제공자를 여럿 가질 수 있었고 부모는 친족 관계인 사람들과 육아의 자원과 부담을 나눌 수 있었다. 노인들도 여전히 활동적이고 가치를 인정받았으며, 건강이 악화될 경우 가까운 곳에서 보살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족 간에 축하할 일이 있으면 노래, 춤, 그 밖의 예술적인 표현들이 수반되었다. 

양친이 있는 표준적인 핵가족마저 위험에 처한 현대 사회에서, 생물학적인 대가족 모델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고 대가족이 종종 고립적이고 억압적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적절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공동 주거와 에코 빌리지 같은, 생물학적 대가족의 많은 이점을 제공하면서 그것의 문제점은 훨씬 적게 갖는 가상의 가족을 만드는 것은 가능하다. 이러한 공동체는 구성원의 나이와 성별이 다양하고, 아동과 노인이 다수의 돌봄 제공자를 갖는 등 "가상의 대가족'으로서의 이점을 제공하는 한편 생물학적인 대가족보다 덜 구속적이고 더 개방적일 수 있다. 

다양한 경제적, 사회적 정책으로 가정과 대가족 공동체를 지원하는 것은 사회의 건강에 필수적이다. 이러한 정책에는 가족의 생계가 가능한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는 일자리를 창출하고 가정과 일터와 공동체의 생활이 유연하게 통합되도록 돕는 정책, 여러 가구가 사는 협동 조합형 주거, 안정적인 상호 돌봄의 관계로서 "시민 결합"이나 "동거동반자 관계'의 합법화 등이 포함된다. 

교육 

배움의 역량과 욕구는 우리의 본성에 내재되어 있다. 우리는 태어나는 날부터 죽는 날까지 배운다. 하지만 제국은 아이들이 공동체의 삶으로부터 유리되어 시험 위주의 훈육을 받으며 거의 갇혀 지내는 학교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학교는 아이들이 제국의 기관에 순응하도록 준비시키는 데는 적합하지만, 활기찬 인간 공동체에서의 삶과 리더십 역할에 준비되게 하거나 새로운 사회를 설계하는 역할에 준비되게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17장에서 설명했듯이, 많은 청소년이 어떻게든 자신의 존재를 긍정해주는 관계를 맺고자 하는 절실함에서 반항하고 중퇴하고 섹스와 마약과 폭력에 의지하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일시적이고 궁극적으로는 자기 파괴적인 방식으로라도 말이다. 

실질적으로 모든 것을 새로이 일구는 일은 오늘날의 아이 세대가 지게될 몫일 것이다. 그들이 이 역할에 필요한 능력과 태도를 갖추도록 지원하는 것은 오늘날의 어른 세대가 져야 할 책임이다. 

지금도 좋은 학교와 좋은 선생님들이 영웅적인 노력을 들여서 교실을 학교라는 물리적 공간으로만 한정되지 않는 배움의 공동체로 만들고 있다. 학생들은 협업적인 탐구 프로그램과 공동체 서비스 활동에 관여하면서 읽기, 쓰기, 수학뿐 아니라 팀워크, 시민정신, 예술적인 표현도 배운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역사, 생태, 기능의 상호 연결된 패턴을 발견해나간다. 

가장 이상적으로는, 학교가 아동과 성인 모두에게 공동체의 진정한 학습 중심지로 기능하는 것이다. 전문 교사와 자원봉사 교사 모두 공동체의 가용한 학습 자원을 모두 활용해서 아이와 어른 모두를 지도할 수 있을 것이다. 공동체 서비스를 위한 자원봉사나 인턴십 기회도 그러한 학습 자원에 포함된다. 청소년들은 노인들의 멘토링을 받으면서 어린 아이들의 학습을 지도함으로써 양육적인 부모가 되는 기술을 배울 수 있을 것이고 노인들은 이러한 멘토링의 기술에 대해 서로에게서 배움 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지역 예술가들은 공동체 미화 프로그램이나 문화 프로그램 등을 통해 연극, 음악, 시각 예술, 시, 문학 등의 재능을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지역적 전국적 국제적으로 타문화와 소통하고 다. 또한 서로 다른 정치와 종교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초대해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하는 대화의 장을 마련함으로써 정치와 종교에 대한 탐구와 배움도 촉진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에서도 창조적인 반란이 일어나고 있다. 대학을 민주적 시민의 육성과 공동체 서비스를 위한 자원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미국에서 는 950명의 대학 총장이 주요 공공 이슈를 다루는 프로젝트에서 지역 공동체와 협력하는 학생, 교수, 교직원을 지원하기 위한 "캠퍼스 서약 Collaborative'는 20개 이상의 주요 대학 연구 센터가 지역, 국가 및 전국 Campus Compact"에 합류했다. 또한 미국의 "민주주의 공동 연구Democracy 수준에서 민주주의와 시민사회를 강화하기 위한 연구, 교육, 공동체 활 동을 위해 협력하는 컨소시엄이다.5 

종교 

많은 사람들이 종교 제도를 도덕적 지침의 원천으로 삼는다. 제국에 복무하는 종교는 종종 도덕적인 가르침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진지한 도덕적 숙고와 성찰을 적극적으로 억압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개별 교회들은 구성원과 지도자가 그렇게 할 의지만 있다면 제국의 종교와는 다른 경로를 택해서 공동체의 중심지로서, 또 윤리적인 탐구와 표현의 중심지로서 기능할 수 있는 상당한 자율성을 가지고 있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창조에 대해 대안적인 이론들을 풍성하게 탐구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신앙인들은 먼저 자신의 교회에서 그러한 가르침이 어떤 효과가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자신의 신도들에게 특정한 종교 공동체에 내부에서는 거의 접하기 어려운 도덕적, 윤리적 탐구 과정을 소개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종교 간 협의회를 통해 상이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도덕적 문제들을 탐구함으로써 종교의 다양성을 인식하고 존중하면서 다른 이들로부터 배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공동체 서비스를 통해 신앙인들은 계급 의식을 발달시키고 사회에서 적합한 인간 관계의 원칙에 대해 종교가 가르치는 바에 대한 상충하는 해석들에 대해서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우리의 교회는 자연스럽게 인종 간 교류를 촉진하는 기능도 가지고 있다. 이 역시 문화적 의식으로의 각성을 일으키고 심화시키는 데 꼭 필요한 부분이다. 

여기에서도 개혁은 한 번에 교회, 회당, 사원, 모스크 한 곳씩 이루어 지겠지만 그 각각은 종교 제도, 더 넓게는 문화 제도와 사회 제도를 민주화하는 더 폭넓은 과정의 일부가 될 것이다. 

☆ 21장 정리:
제국은 우리가 몽유병에 빠져 있는 데 만족하면서 주어진 규칙을 그 저 받아들일 때 번성한다. 인간은 원래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장대한 창조의 여정에 참여하는 지적이고 자각적이며 선택을 하는 종이다. 창조가 우리에게 지혜롭고 창의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했을 때는 우리가 이 능력을 이롭게 사용하게 할 의도였을 것이다. 

지구공동체의 탄생을 위한 노력은 제국에 대해 대안은 없다는 믿음의 압제에서 정신을 해방시키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러한 해방은 오랫 동안 부정해왔던 가능성을 맛보게 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자신의 고양원 의식을 새로운 실천으로 바꾸어내면서 진전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민주적인 대안의 가능성을 맛보았고, 부분적이었고 결국에는 실패했지만, 대담한 실험을 감행했다. 미국 독립혁명 시기의 애국파 사람들도 또한 그와 비슷한 가능성을 맛보았고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 속에서도 또 다시 실험을 했다. 이 실험도 결국에는 부분적이었지만, 가능성에 대한 비전은 전세계로 퍼져나가 지금 우리 앞에 그 비전을 완전히 실현시킬 기회를 만들어냈다. 

우리 시대가 위대한 전환의 시대로 기억될지 거대한 해체의 시대로 기억될지는 운명이 아닌 선택의 문제다. 위대한 전환의 리더십은 제국의 중독에 반대하며 문화적 최면에서 깨어나 성숙한 인간 의식의 관점과 지혜를 습득한 사람들로부터 나와야 하며, 이러한 사람들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수백만 명의 문화 창조자 및 영적 창조자들이 서로 손을 뻗어 일치의 공동체를 형성함에 따라, 파트너십, 학습과 공유, 계속해서 확대되는 연대를 기반으로 문화적, 제도적 혁신을 실험할 수 있는 해방 공간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것은 민주적 참여가 가장 온전하고 가장 진정성 있게 표현된 형태일 것이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이러저러한 제도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살아있는 경제, 살아있는 정치, 살아있는 문화를 통해 표현 되는 살아있는 실천이다. 삶은 실현되지 못한 잠재력을 추구하는 끝없는 자기 갱신의 과정이므로, 살아있는 실천은 계속해서 변화하는 필요와 기회에 대응해 사회의 기본적인 제도적 형태를 지속적으로 진화시킨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이 교훈을 실천으로서 표현할 준비가 되어있다. 18세기에는 민주주의가 "대담한 실험"이었다. 지금은 21세기다. 이제는 민주주의를 "온전히 실현"해야 할 때다.


제22장 이야기를 바꾸면 미래가 바뀐다 

우리의 자리를 찾아내기 

우리 앞에 놓인 과업의 막대함에 압도되지 않으려면 세 가지를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첫째, 때로는 이 일이 외롭게 느껴지겠지만 수천만 아니 아마도 수억 명이 이미 참여하고 있다. 둘째, 각각의 공헌은 아무리 사소해 보이더라도 균형점을 옮기는 데 기여한다. 셋째, 누구도 자신이 가장 잘하는 만큼 이상으로는 할 수 없다. 603 

"글쎄요, 그것은 언제나 미스터리입니다. 우리가 왜 고갈되는지, 혹은 왜 충전되는지를 우리는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가 아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나는 상황이 아무리 힘들더라 도 나 자신을 희망이 없다는 느낌에 굴복 당하게 두지 않습니다. 내가 맞서고 있는 것의 거대함을 생각하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하고 나 자신의 역량을 키우는 쪽에 관심을 기울인다 면, 그것 자체가 새로운 잠재력을 창조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 다. 

그리고 나는 바가바드 기타 등 우리 문화의 가르침을 통해 나 자 신과 내가 하는 일의 결과 사이에 거리를 두는 법을 배웠습니다. 결과에 대해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맥락은 당신의 통제 범위 안에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실천은 당 신이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실천이 당신을 어디로 데려갈 지에 대해서는 완전히 거리를 둘 때, 당신은 가장 깊게 실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당신은 그 실천이 당신을 더 나은 세상으로 데려다주기를 바랄 것입니다. 물론 당신은 당신이 할 수 있는 행 동을 찾아내 그것을 하고 그에 대해 온전하게 책임을 질 것입니 다. 하지만 그 다음에는 거리를 둘 것입니다. "깊은 열정"과 "깊은 거리두기'의 결합이 나로 하여금 늘 그 다음 번의 도전을 받아들 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 전의 도전이 나를 손상시키지 않았 기 때문입니다. 나는 나 자신을 매듭에 묶어놓지 않았습니다. 나는 자유로운 존재로서 행동했습니다. 나는 그 자유를 얻는 것이 사회적인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진단이나 요구로 부담을 주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해야 하는 것은 생명을 찬양하고 두려움과 절망을 대담 함과 기쁨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반다나 시바) 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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