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The Question Concerning Technology in Ch

18. 모종삼의 응답

백_일홍 2026. 5. 17. 22:23

18. 모종삼의 응답 (MOU ZONGSAN’S RESPONSE)

 

20세기 초에 등장한 **신유학(New Confucianism)**에게 과학 기술과 민주주의의 문제는 피할 수 없는 과제였습니다. 서구의 발전을 수용하면서도 중국의 '마음'을 온전히 보존하겠다는 '데카르트적' 패러다임이 환상에 불과함을 깨달은 신유학자들은, 중국 사상을 서구 문화와 통합하고 전통 철학 체계 안에서 호환 가능하게 만드는 과업에 착수했습니다. 구체적으로 그들은 중국 사상 또한 과학과 기술을 낳을 수 있음을 철학적으로 입증하고자 했으며, 이러한 시도는 철학자 **모종삼(牟宗三, 1909–1995)**의 저작에서 정점에 도달했습니다.

 

§18.1 모종삼의 칸트적 지적 직관 전유 (MOU ZONGSAN’S APPROPRIATION OF KANT’S INTELLECTUAL INTUITION)

 

모종삼은 주역에서 성리학, 불교에 이르는 중국 철학뿐만 아니라 칸트, 화이트헤드, 러셀 등 서구 철학에도 정통했습니다. 그는 칸트의 3대 비판서를 중국어로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모종삼의 체계에서 칸트 철학은 서구 사상과 중국 사상을 잇는 결정적인 교량 역할을 합니다. 그는 서구 철학과 중국 철학의 차이를 칸트적 의미의 **현상(phenomenon)과 본체(noumenon)**라는 틀로 파악하려 시도했습니다.

 

"칸트에 따르면 **지적 직관(intellectual intuition)**은 신에게만 속할 뿐 인간에게는 없습니다. 나는 이것이 정말 놀랍다고 생각합니다. 중국 철학을 돌이켜볼 때, 칸트의 사상을 따른다면 유교, 불교, 도교는 모두 인간이 지적 직관을 가졌음을 확인해 줍니다. 그렇지 않다면 성인이나 부처, 진인이 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현상과 본체를 구분하며, 인간은 감성적 직관만을 가질 뿐 지적 직관(물자체에 대한 직관) 능력은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본체는 오직 부정적인 의미에서만 상정될 수 있는 한계 개념이었습니다. 칸트가 지적 직관을 인간 인지 능력 밖의 것으로 간주하며 거부한 사실은, 모종삼이 서구 철학과 중국 철학의 차이를 규정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지점이 되었습니다.

 

모종삼은 유교, 도교, 불교 모두의 근저에 지적 직관이 놓여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에게 지적 직관은 창조 및 도덕적 형이상학과 연관됩니다. 모종삼은 장재(張載)의 저술을 인용하여, 마음(心)이 감성적 직관과 오성을 통한 앎을 넘어 본체적 영역을 깨닫는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려 했습니다. 모종삼에게 이러한 본체적 주체의 비침(圓照)은 존재자들을 대상이 아닌 **물자체(things-in-themselves)**로서 나타나게 합니다.

 

모종삼은 중국의 도덕적 형이상학을 칸트의 '도덕의 형이상학(metaphysics of morals)'과 구분합니다. 후자는 도덕에 대한 형이상학적 설명일 뿐이지만, 모종삼에게 형이상학은 오직 도덕에 기초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기(器)와 도(道)의 통일이 도구적 형식을 넘어선 마음의 이러한 능력에 달려 있음을 역설했습니다. 그는 또한 도교에서 지식이 무한한 반면 인간의 삶은 유한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마음이 도(道)를 통해 이를 초월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으며, 불교 역시 현상 너머의 공(空)을 깨닫는 지적 직관을 전제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비록 모종삼이 피히테나 셸링 등 포스트-칸트 철학자들의 지적 직관 개념과 자신의 이론을 충분히 대조하지는 않았지만, 그들과 공통적으로 무한과 유한의 역동성을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독일 관념론자들이 무한에서 유한으로의 이행을 사유하여 존재를 설명하려 했다면, 모종삼은 유교적 도덕 형이상학을 바탕으로 유한에서 무한으로의 통로를 찾고자 했습니다. 그는 하이데거가 현존재의 유한성을 강조한 것에 반대하며, 무한한 심(心, 마음) 안에서 물자체 또한 무한해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모종삼은 이 본체와 현상의 구분을 통해 왜 중국에는 현대 과학 기술이 없었는가를 설명합니다. 그는 중국 철학이 본체적 세계를 사변하는 **'종합적 원리 파악의 정신'**에 집중한 반면, 서구 문화는 본체에 대한 사변을 삼가고 현상에 전념하는 **'분석적 원리 파악의 정신'**을 발달시켰다고 봅니다. 모종삼의 해석에 따르면, 중국에서 지적 직관이 사유를 지배하게 됨에 따라 분석적이고 과학적인 인지 능력인 **지성(知性, cognitive mind)**이 간접적으로 억제되었고, 이것이 바로 논리와 수학, 과학이 중국에서 충분히 발전하지 못한 원인이었습니다.

 

18.2 모종삼 철학에서 양지의 자기감함 (THE SELF-NEGATION OF LIANGZHII IN MOU ZONGSAN)

 

모종삼은 주역과 왕양명의 사상에 기초하여 **양지의 자기감함(良知的自我坎陷)**이라는 개념을 발전시켰습니다. '감함'은 하이데거의 '퇴락(Verfallen)'과 유사한 면이 있지만, 모종삼은 이를 훨씬 능동적인 양태인 **'자각적인 하강'**으로 사용합니다. 이는 양지가 자신의 본래적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 스스로를 제약하는 결정입니다.

 

"그러므로 인지 주체(지성)가 되기 위한 자기감함은 반드시 도덕적 주체의 자각적인 결정이어야 합니다. 이 **우회(detour)**는 필수적인데, 오직 이러한 우회를 통해서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곡달(曲達, 우회를 통한 도달)'**이라 부릅니다".

 

모종삼은 불교의 '일심개이문(一心開兩門)'(진여문과 생멸문)이라는 표현을 빌려, 우주적 마음(본체적)이 스스로를 부정하여 인지적 마음(현상적)이 될 수 있으며, 이러한 부정의 행위를 통해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킬 능력을 갖게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본체를 존재론적인 것으로, 현상을 존재자적인 것으로 하이데거의 용어를 사용하여 재정의했으며, 서구의 이론적 지식을 중국의 본체론적 온톨로지 안에 체계적으로 통합하려 시도했습니다.

 

이 분석은 유교의 정치 철학인 **내성외왕(內聖外王)**의 회복으로 이어집니다. 과거에는 황제의 도덕 수양에서 세계 평화로 이어지는 선형적인 투사가 가능하다고 믿었으나, 모종삼은 이제 현대적 외왕(민주주의와 과학)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외부를 향한 우회가 필요함을 인식했습니다. 즉, 도덕적 주체가 지성 주체로 변모하여 과학 기술을 수용하는 '우회'가 필수적이며, 이 과정은 기(器)를 통과해야 함을 암시합니다.

 

모종삼의 과업은 이 지점에서 마무리됩니다. 그는 기술의 문제를 칸트 체계 및 중국 전통 철학과 호환 가능한 형이상학적 층위로 끌어올렸으나, 그의 사유는 근본적으로 관념론적인 몸짓에 머물러 있습니다. 모종삼에게 마음은 현상과 본체를 모두 아우르는 궁극적인 출발점이며, 양지가 자각적으로 자신을 부정하여 탄생시킨 과학 기술은 선험적으로 윤리적인 것이 됩니다. 요컨대 그는 기(器)를 도(道)의 한 가능성으로 포함시킴으로써 둘 사이의 일관된 관계를 구축하려 했습니다.

 

모종삼의 '양지의 감함'은 중국이 고유한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서구적 지식을 흡수하려 했던 수 세기 동안의 열망을 가장 정교하게 표현한 철학적 결과물입니다. 그러나 그의 이상주의적 제안은 정작 현대 중국을 지배한 유물론적 운동으로부터는 철저히 외면당했습니다. 중국은 모종삼이 그토록 비판했던 공산주의적 경로, 즉 전통과의 단절을 통한 기술 과학의 발전을 선택했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중국 고유의 형이상학적 체계가 붕괴되는 **'형이상학(Xing er Shang Xue)의 종말'**로 이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