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 콤플렉스
행복한 해바라기, 그 거울상의 나르시시즘.
해의 부름과 시선을 한 몸에 얻는다는 착각의 삶
그 완벽한 오인의 행복
그 모든 '바라기'들
당신이 당신의 애인을 '세상'으로부터 건져낼수록, 당신의 애인은 당신이라는 '세상' 속으로 가라앉습니다. 당신과 당신의 애인이 더불어 떨어지는 그 지경에서 마침내 거울 하나가 솟아오르면, 당신의 애인은 그 누구도 건져줄 수 없는 괴물이 되어 있을 겝니다.
연정의 파라다이스는 6면이 거울로 뒤덮인, 꼭 당신의 마음만 한 크기의 큐브입니다. 실은 그 속에 당신의 애인은 없지요. 그러나 당신이 고개를 돌리는 쪽마다 당신의 애인은 당신을 쳐다보며 방긋방긋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겝니다. 이미 '세상' 속으로 나가버린 당신의 애인은 해바리기처럼 생긴 정표 하나를 그 거울 위에 새겨 놓았겠지요.
당신이 순결할 수록 사랑의 허상이 오히려 번성하는 이치를 생각해보았나요? 당신의 애인은 당신 속에, 당신의 거울방 속에, 당신의 '(해)바라기' 속에 있는 만큼, 늘 문제는 당신이라는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의 실증화'입니다.
당신의 애인의 눈 속에 있는 것은 당신의 애인을 눈속에 지닌 당신의 애인을 보는 당신뿐입니다.
연정은 일종의 원근법적 실패, 결국 연애의 돌쩌귀는 두 연인 사이의 거리.
물론 더 중요한 사실은 마주보는 사이에서는 그 거리조절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 연정은 '질투'나 '헌신'과 같은 무매개의 과욕을 피하기 어려운 열정이니, 제3자의 개입이 없는 자율적 거리조절은 실로 이상적일 뿐.
신비주의나 존재의 형이상학이라는 무매개의 과욕이 흔히 빠지는 직접성의 환상은, 연정이 질투와 같은 나르시스적 격정에 의해 자가증폭하는 모습의 변주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연정에 빠지면서, 모두, 심은 적이 없는 해바라기를 키우고 있는 것.
직접성이란 미망이며, 그것은 결국 '사물을 배반하게 되는 것'에 지나지 못한다.
직접성이 아니라 오히려 매개성(흐려지거나 억룩짐)이야말로 삶의 증좌인 것. 종교학의 상식처럼, 삶은 오염과 흠결에 다름 아니며 이런저런 종류의 정화의식을 주기적으로 반복함으로써 역설적인 동력을 얻는 체계인 셈.
삶의 시작은 곧 위반이며 상처다.
해바라기 콤플렉스란 삶을 체계적으로 되-풀이하게 만드는 그 원초적 오염과 흠결, 위반과 상처를 외면한 채 반초월론적으로 가꾸는 거울방 속의 광학적 행복을 가리키는 것이다.
삶은 앎이 아니라 견딤의 물음인 것. 그러므로 파우스트적 욕망이란 단지 앎에의 의지가 아니라 앎을 견딤으로써 개시되는 삶의 욕망이다. 진선미의 이데올로기야말로 삶의 진실에서 가장 멀리 놓인 박제라는 사실. 악의 명상은 그래서 필연적.
시몬느 베이유, "악 그 자체를 통하여 신을 사랑할 것, 자기가 미워하는 악을 통하여 그 악을 미워하면서 신을 사랑할 것. 지금 자기가 미워하는 악을 만든 장본인으로서의 신을 사랑할 것"
야생의 도착 그 자체인 실재를 견디는 것, 바로 그것이 인간이 인간과 싸우는 최초이자 최후의 전투인 것. 316
'동무론_김영민' 카테고리의 다른 글
14장.술: 매체와 동무 (0) | 2020.01.30 |
---|---|
13장. 연대의 사이길, 보편-개체의 계선을 넘어 (0) | 2020.01.30 |
7장. 에고이즘과 나르시시즘 (0) | 2020.01.30 |
타자 (0) | 2020.01.30 |
사회성, 그리고 비평 (0) | 2020.0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