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무론_김영민

18장.무능의 급진성(3) 이미지의 침묵과 인문의 급진성, '아이'에서 '유령'까지

백_일홍 2020. 1. 31. 14:29

1.아무나의 일상 속에서 구원되어야 할 천재의 능력


천재의 정의, 자신이 하는(쓰는) 말(글)을 다 못하면서도 줄기차게 계속할 수 있는 기묘한 재능이다. 그것은 완벽한 무지 속에서도 오히려 길을 잃지 않는, 어떤 가장 낮은 감각, 비전의 생산적 귀한, 현현과 같은 것. 


나는 이 능력이 아무나의 생활양식의 무의식을 통해 스스로를 잊어버리는 (혹은, 알면서도 모른체하는) 일상화의 가능성 속에서 미래 인문학의 지평을 캐내려고 한다. 


2. 심리학주의의 덫

낮아진다는 것은 우선 타자의 존재, 타자의 자리와 지평에 대한 태도의 문제일 것이다. 


타자를 전제하고 가능하거나 평가하고 서로 관계 맺지 않는 한, 아예 높낮이를 크기를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말할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인문학적 겸허, 혹은 부재라는 소중한 실천적 테마가 심리학주의에 빠지지 않으려면 그것을 행위의 문제, 그리고 타자와의 관계 문제로 (생활양식의 일관성, 충실성에 거의 맹목적이다시피) 줄곧 밀고 나갈 수 있어야 한다. 공부와 동무의 원수로 여긴 심리학주의의 주된 페해는 우선 타자성의 함몰 내지는 자의적 전유다. 


신을 향한 기원조차 내 욕망의 도착일 뿐이며, 잃어버린 친구를 위한 애도조차 실은 내 자아의 심리주의적 증폭이나 자기차이화에 이바지할 뿐이다. 행위와 관계, 생활양식의 일관성과 충실성으로 나아갈 수 없다면, 관념들은 결국 제 살을 뜯어먹고 제 그림자를 타고 논다. 


3. 이미지의 나르시시즘

심리학주의의 덫에 빠진 모슴, 타자를 잃어버린 채 폭발적으로 증폭하고 있는 '이미지의 나르시시즘'으로 쉽게 표상된다. 


4. 회복해야 할 이미지의 급진성, 이미지의 힘


이미지의 침묵(부재)를 이미지로 드러내는 방식은 무엇이며, 바로 그 방식이 아득하게 호출하는 인문의 오래된 미래, 그 급진성이란 무엇일까? 


5. 아이(1)


애도도 선물도 결국 자아의 동일화심리 탓에 그 타자적 사건성을 잃어버린 채 자의적으로 왜곡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면, 보(여주)기보다 왜 하필 기억하기와 듣기와 말하기가 적실한 수단일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