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초록의 공명

백_일홍 2022. 8. 16. 12:07

초록의 공명

 

지율


벌목 현장에서. 2004년 3월 10일 ~ 5월 24일

12 
저는 금수강산이라는 우리 산하가
무너지고 파괴되는 역사의 현장에 태어났으나
그것이 이땅에 온 제 원력이었다는 것을 
천성산 일을 하면서 알았습니다. 

21
나는 사람들에게 천성산의 도룡뇽 소송은 동화를 쓰는 일이라고 했다. 우리 아이들에게 천성산의 늪과 계곡 그리고 그 땅을 의지하며 사는 생명들의 이야기가 전설로 남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길에서 쓰는 편지 2004년 7월 19일 ~ 8월 27일
 
32
골목길
우리가 하고 있는 이 운동도 문밖에 작은 화분을 
놓아 두는 것 같은 배려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명운동은 마음의 뜰을 가꾸어 가는 일입니다. 

35
길을 잃고 우연히 들렀던 깊은 산속의 작은 암자도 가 보고 싶은 곳입니다. 
여우 울음소리에 놀라 몇 번이고 잠을 깨던 그 작은 암자의 호롱불 아래서 처음으로 원효 스님의 <기신론>을 보았습니다. 
그곳에 마음을 내려놓고 게으른 수행으로 많은 날을 보냈습니다. 

46
문정현 신부님께
어느 분의 말처럼 저는 잠시 이 세상에 소풍을 나왔다가 길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길을 잃었다고 생각하기에 차리리 희망은 저희에게 있으며 이 길은 역사의 길, 생명의 길, 희망의 길이라는 것을 의심한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법 앞에서 2004년 11월 17일 ~ 12월 18일

50
바른 사람이 나쁜 법을 말하면
나쁜 법도 바르게 되고
나쁜 사람이 바른 법을 말하면
바른 법도 나쁘게 된다. 
- 조주 스님

52
법원의 조정 권고안에 대한 개인적인 입장
사람은 어떤 한 순간에 자신의 모든 업을 들여다본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그 순간 법정에 서 있는 많은 사람들(고속철도공단의 관게자들까지 포함하여)과 조정심리에 임하는 재판장님의 모습에서 동시대에 태어난 동업의 아픔을 느꼈습니다. 어쩌면 재판장님과 저의 역할이, 고소걸도 관계자들과 도룡뇽 친구들의 모습이 서로 다를 수도 있지만, 그 순간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한 시대의 운명으로 걸어 들어왔다는 것을 저는 느꼈습니다. 

53
공동조사를 하겠다고 공식적인 합의서를 작성했던 환경부 장관이 슬그머니 2박 3일의 현장조사 결과를 법원에 통지하고, 현장검증과 공동 조사를 통해 객관적인 판결을 하겠다고 공언했던 재판부가 돌연 그것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고 입장을 선회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분노하지 못하고 타협해야 하는 원칙들이 만연한 이 사회를 살아갈 자신이 제겐 없습니다. 그러나 그보다도 제가 물러서지 못하는 이유는 이 땅의 운명에 천성산이 깊이 조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새장에 갇힌 한 만리의 로빈새는 천국을 온통 분노하게 한다"고 합니다. 

56
법 앞에 서며 - 변호사님의 사임에 부쳐
더 이상 법정을 신회할 수 없다는 것을 는낄 때 변호사로서 취할 수 있는 최후의 방법이 사임이라고 합니다. 

57 
하지만 저는 적당한 타협이 능력과 윤리가 되어 있는 이 사회를 향해 견디어 내고 견디어 가자고 이야기할 수가 없습니다. 

58
그들은 저를 향해 늘 이야기합니다. "산이 울고 있다는 감성적 표현으로 국민을 호도하고 여론을 조장하여 국책사업의 발목을 잡고 있는 한 비구니"라고

59
산이 울고 있다는 표현은 이 땅에 뿌리내린 모든 생명들의 울음을 대신하는 말이라고 저는 감히 말씀드리며, 그러하기에 우리는 멸종 위기의 환경 지표종인 도룡뇽을 법정에 세운 것입니다. 

74
지난 4년 동안 제가 모든 분들께 봐 달라고 했던 것은 다만 한 비구니가 아니라 소리 없이 죽어가고 있는 이 땅의 뭇 생명들이었는데 사람들은 여전히 다만 한 비구니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입니다. 

우리 마음에서 '우리'라고 하는 벽이 무너져야 비로소 '우리'라고 하는 너른 세계가 보일 것 같습니다. 

김종대 판사님께
하지만 이제 감히 판사님께 말씁드립니다. 제게 남아 있는 상처는 제 몫이라고. 천상산 일을 하면서 저는 돌아나갈 길을 만들지 않았으며 제 운명으로 오는 것을 거부할 수도 없었습니다. 

77
진미래제 도중생 자타일시 성불도
지율 합장
(미래세대가 다하도록 중생구제 함께 하고 
모든 중생 너나없이 무상불도 이뤄보세)

80
판결문을 보며
협의되고 진행되던 그 모든 과정이 무시되면서 돌연 "부실한 영향평가를 인정하지만 목적에 반하도록 부실하지 않다"는 모순된 논리를 전개하며 30만 도룡뇽 친구들에 대하여 역사성과 시대성이 결여된 '소유권 수인한도'를 운운하는 궁색한 이야기를 받아들이기에는 재판에 참여하며 느꼇던 저희들의 기대치가 너무 컸기 때문입니다. 


단식 일지 2004년 11월 1일~2005년 2월 1일

88
눈을 감으니
법계가 온통 생명의 바다였고
눈을 뜨니
이 땅의 아픔은
온전히 우리의 아픔이었습니다.
바람이 지나가고
구름이 지나가고
풀벌레가 울다 간 자리가
온통 화엄의 바다였고
우리의 기도가 머무는 곳이 정토였습니다. 
바라건대 저희를 버리지 마소서 

92
천성산은 제게 세상을 향해 열렸던 문이었고
그 문을 통해 저는 온갖 사회악과 그 악들이
무섭게 커 가며 움직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둠 속의 메피스토펠레스처럼 인간의 영혼을 유혹하고
영생을 이야기하는 유령들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소용돌이 속에서 아름다운 작은 빛을 보았으며
그 빛을 쫓아오면서 사랑과 감사를 배웠습니다.
저는 그 빛을 초록의 공명이라고 불렀고 이 공명을 통해 
이 땅의 생명과 평화가 실현되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96
생명을 잇는 일

셍명을 잇는 일도 마음을 잇는 일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모든 생명이 조화롭게 공명하는 지구의 미래,
지구라는 외로운 별에 남겨질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지금 우리는 발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취하고 있는 이 작은 움직임들은
하나의 홀쑤를 바람에 날려 봄을 부르는 일입니다.
설령 많은 불합리함 속에
우리가 머물고 있는 이곳과 이 순간이 우리에게 돌아오지 않는다고 할지라고
이렇게 오고 이렇게 가는 시간을 아름다운 순간으로 기억할 것입니다. 


102
깊고 어두운 강가에서

이제 다시 어두운 강가에 서서
밀항하듯 탈영하듯 떠나야만 하는 시간이다.
수없이 건너 왔던 강을 또 혼자 건너야 한다.

수심을 알 수 없는 저 어두운 강에 몸을 던저야
이 강을 건널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두려운가, 
이제 저 강은 나를 건네줄 수도 있고
내 생명을 앗아 갈 수도 있다.

이 슬픔과 두려움에 아랑곳없이
나는 다만 깊고 어두운 천성의 강에 
덩져지는 자맥질일 뿐이다. 

103
페미스토펠레스

눈만 감으면....
어둠 한구석에서 조그많게
페미스토펠레스의 노래 소리가 들여온다.

이곳을 뚫고 저곳을 메우자.
세상은 어차피 성주괴공, 
무너지고 텅 빌 때까지
펜대를 굴리자.
법정에도 서고 강의실에도 서고
때로 성전은 우리의 전당
진실은 힘의 논리

가진 것 없는 가난한 자
너희들이 생명이라 부르는
그 오물거리는 더러운 도룡뇽
한 때 나도 꿈꾸었지
빛이 내리는 숲길을

너희가 희망이라고 부르는
생각하기 싫은 구질구질한 골목길
고급 승요차에 몸을 기대는 순간
그 잔잔하고 평온한 스피드 속에
약간의 양심은 피로고 풀려 나간다.

명에의 탈에 기대어 바라보니
저 아래 고물거리는 것들
저것들이 나와 동류라는 것을 참을 수가 업군.
때때로 이 높은 곳까지 올라오는 역겨움
그것을 그들은 진실이라 부른다지.

종이 위에 쓰는 온갖 맹서
참이거나 거짓이거나
결과는 마찬가지
이것이 세상의 공식
어차피 역사는 피로 물드는 것
나는 역사를 쓰는자!
참이든 참이 아니든.......

109 
아름다운 도롱뇽 가사
저는 참으로 욕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부처님의 가사를 빌어 입고 그 시은을 절반도 갚지 못하였는데
또 다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한 벌의 가사를 걸여 입고
마음으로 여간 기뻐히고 있지 않으니 말입니다. 



111
짐을 정리하며
사람의 몸으로 태어났고 수행자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는 소중한 인연을 만났으며
신명을 다 바쳐 할 수 있는 일을 만나서
정진할 수 있었는데 무슨 후회가 있겠습니까. 

112
2퍼센트의 도덕성을 다시 법정에 세우며
처음부터 분노와 절망을 제 몫이 아니었습니다.
2퍼센트의 집단에 의해 98퍼센트의 선량한 희생이 강요되는 이 사회에서 천성산이 한 운명으로 제게 다가왔고, 저는 새털 같은 그들의 무게보다 이 땅이 제게 끊임없이 전해 주는 생명의 메시지를 더 잘 듣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둠 속에 잠겨 있는 산의 침묵 때문에 산의 아품을 더 잘 느낄 수 있었던 것처럼, 저들이 가진 98퍼센트의 힘보다는 제가 가진 2퍼센트의 작은 힘들을 더욱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114
천성산 일을 하면서 제가 어느 때 보다 부처님의 말씀과 게율을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느꼈던 것 처럼, 모든 종교인들이 한결같이 지향하는 영적 진보와 선으로 인도하는 첫 번째 길은 바로 이웃의 생명과 모든 자연에 대한 깊은 경외에서 비롯된다는 진리 속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동료가 되었습니다. 때로는 사람들이 이해관게를 다투고 떠나간 뒤에도 그분들은 언제나 소리 없이 함께해 주셨습니다. 

119 
다시 거리에 서며 
<한겨레>에 실린, 단식 중지를 권고하는 사설을 보면서... 제 눈에는 그 사설에서 생명을 아끼고 저를 염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사회의 부조리한 아픔을 인정하고 굴복하는 한없이 착한 인성들이 보일 뿐이었습니다. 

이루어지지 않을 소박한 꿈과 믿음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도 그 하늘을 덮고 있는 독재와 폭정의 유전을 인정하는 - 분노를 슬픔으로 바꾸는 착한 마음들을 생각하면 문득 아득하기만 합니다. 

지금 이 순간, 천성산보다는 제 목숨이 중요하다고 하는 연민의 착한 눈동자 속에 담긴 한없이 순한 마음들을 기억합니다. 때때로 너는 피의 혈서인 계시록을 쓴 요한의 심정이 어떠했을까를 생각해봅니다. ... 제가 복 느끼는 것은, 절망을 미래에 옮겨놓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120
이 땅의 법과 행정은 경제 제일주의라는 유령의 지배를 받으면서 스스로 권력이 되어 이 사회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또한 그 권력은 자신의 실체를 유지하기 위한 악의 세력들을 끊임없이 구축하고 있습니다. 

저는 천성산 문제를 통하여 자연이 병들기 전에 먼저 병들어 버린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을 보았습니다. 

125
돌아 앉아
제 가슴을 뛰게 했고 발심하게 했던 <기신론>의 첫 구절을 
가슴에 풀어놓아 봅니다.

목숨 바쳐 귀의하옵니다.
어디서나 어느 때나
가장 훌륭한 일을 하시오며
앎이 없이 온간 것 두루 아시며
걸림 없이 자유자재하시사
이 세상 건지시려
크나큰 자비를 베푸시는
부처님이시여.
중생들로 하여금 의혹을 없애고
그룻된 집착을 버려서
대승의 올바른 믿음을 일으키고 
그리하여 부처의 씨앗이
끊기지 않도록 하고자 합니다. 

135
빈 속에 커피를 두 잔이나 마시고 천성산을 4백 번 이상 오르내리며 찍었던 풍경을 정리하면서 밤을 꼬박 새웠습니다. 

돌아보니 저는,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사랑을 햇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고집스럼고 어리석은 사랑이었죠. 하지만 저는 어떠한 경우에도 천성산을 놓으라고 하는 이야기는 듣지 못하겠습니다. ... 어떠한 경우에도, 제가 가도 ..... 천성은 남을 것입니다. 

137
천성의 마음
사진을 정리하다가 지금은 조금 잊혀진 두 장의 사진을 보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처음 찎은 천성산 사진이었는데, 첫 번째 사진은 산의 정상부까지 길을 내서 횡단하는 사진이며, 두번째 사진은 그 뒤 화엄벌에서 있었던 철쭉제 행사 후의 모습입니다. 

철쭉제를 위하여 사람들은 산 정상까지 길을 내고, 늪의 가장 깊은 곳에 우물을 팠습니다. 일주일에 10만의 인파가 다녀간 후 아름답던 화엄벌은 마치 겁탈당한 소녀처럼 흐트러져 버렸습니다. 

눈물이 많은 저는 화엄벌과 베어진 산을 보며 그냥 울기만 했고, 어느 때는 울기 위해 산에 갔습니다.  

144
천성산에는 아름다운 두 개의 신화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원효 스님께 불교의 최고 경전인 화엄경을 들었던 1천명의 제자가 모두 득과하여 성인이 되었다는 인연설화이고, 또 하나는 같은 시기 한 비구니가 1천 명의 남정네와 잠자리를 같이 한 후 성인이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여자가 귀했던 당시 가난했던 사람들은 여자를 꿈꿀 수 없었던 때의 이야기 입니다. 

보살은 .... 자신의 원을 이루기 위해 세상에 와서 세상에 물들지 않고 그 마음의 청정함을 따라 국토를 청정하게 한다 하였습니다. (어쩌면 저는..... 그 두 분에게 몸과 마음을 의지했던 빛을 갚으려고 이곳으로 낙향와 길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심귀명례
지심귀명례
지심귀명례

145
선악을 떠나 '우리'가 감당해 내지 못한 ' 이 시대의 태산과 같은 무게'는 어쩌면 남아시아 지진해일의 재앙에서 보듯이 자연의 분노 앞에 무방비 상태로 있는 티끌과 같은 무게일 뿐입니다. 

돌아보면..... 그 한 티끌을 내려놓는 일이 어찌 그토록 어려운 일이었을까 오히려 의야합니다. 

148
천성산의 수의
돌아보면 지난 4년 동안 제가 요구했던 것은 단 한가지뿐이었습니다. 그것은 10개의 법적 보존 지역을 관통하여 가는 터널에 대하여 그것이 어떠한 문제가 있는지(혹은 없는지) 제대로 된 영향평가를 받아 복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정말 이해하기 힘든 것은, 노선 재검토와 환경영향평가 재검토는 대통령이 공약하고, 경남 도지사와 부산 시장이 공약하고, 건교부 장관과 환경부 장관이 협의하고 약속한 일이며 공단과도 수차례에 걸쳐 협의되었고 심지어 법원에서도 재검토하겠다고 했지만 단 한 차례도 그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것입니다. 

149
저의 단식은 도덕적으로 병들어 버린 이 사회에서 제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였습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이 문제만은 기억해 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제가 천성산 문제에 뛰어 들었던 것은 사회.정치 문제가 아니라 생명과 윤리의 문제로서였다고. 그러하기에 천성산 문제는 부도덕한 사회의 현실 속에서 도덕적으로 승리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또한 이 사회의 보이지 않는 준칙인 도덕은 평등하게 그들을 벌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151
마음의 빛 : 모든 것을 놓으라 하신 행법 스님께

텅 빈 머리를 흔들고 일어나
자전거를 타고 어딘가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맑은 공기와 자전거만 있으면
어디든지 갈 수 있다고 믿었던 스무 살의 꿈, 
바람, 공기, 햇살, 나무, 텅 빈 논, 논가의 새 한 마리...
그 모든 것들에게 이름을 불러 주며 달리던 자전거 길.
눈을 감으면 아직도 여전히 오르고 내리는 길.
이름을 불러 주어야 할 것들......
그것이 마음의 빛이었음을 오늘 비로소 알았습니다. 

154
지난 4년 동안 거리에 섰던 이야기를 누가 물으면 무엇이라 말해야 할까요. 죽음에 이르도록 달리면서 바람에 머리를 행구지 않으면 숨이 막혀 버릴 것 같았다고 이야기하면 누가 믿어 줄까요. 

날이 선 칼날 단두개 아래서 한 몸이 둘로 나누어지는 그 찰나의 순간을 생각하며 항시 긴장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둘이라고.... 동지와 적도 둘이었고 사랑과 분노도 둘이었고 꿈과 현실도 둘이었고 칭찬과 비난도 둘이었고 수행자의 초졸함과 아만도 둘이었습니다. 

그러나 70일의 허기를 견디어 내고 난 후, 제가 가져가야 할 둘의 절망이 갑자기 보이지 않습니다.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초록의 공명

158
세상이 빛과 소리로만 다가오던
투명한 유년의 기억으로
빛처럼 한번 날아 봤으면..... 

162
안적의 계곡을 오르다
이 아름다운 계곡에 빨간 측량 깃대가
꼿혀 있는 것을 보았던 순간

제 가슴에 느꼇던 진동을
저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무모하게
천성산에 목숨을 건다고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제가 세상의 아름다움에
탐닉했던 벌이었고

저는 그벌을 피해 다른 세상으로
옮겨 갈 자신이 없었습니다. 

천성산은 제가 사랑한 세상의
아픔이었기 때문입니다. 

160
생명의 숨소리

흑자는 전쟁과 살인, 대규모 참상이 자행되고 있는 세상에서
풀잎과 풀벌레의 이야기는 동화라고 저를 비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풀잎과 풀벌레의 이야기가 아니라면 우리 마음에 작은 자비의 씨앗이라고 심을 기회는 영영 없어져 버리고 말 것입니다. 

작은 풀이나 풀벌레를 함부로 밟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살상의 무기를 들지 못하며, 다른 이의 불행을 지나치지 못하며, 자신의 양심을 속이는 일을 쉽게 하지 못합니다. 그들의 마음이 자비로 부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98
무문관

천성산을 떠나오기 전 조계암 무문관에서 하룻밤을 보냇습니다. 주지 스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세상의 연을 놓고 얼마 동안이라도 무문관에 들어와 정진하라고.
그러게요.....
저는 슬그머니 눈길을 피하여 가슴을 쓸었습니다. 
스님, 
진리에는 문이 없닫지요.
이것이 천성산과 함께한 제 화두였습니다.

 

 

생명의 숨소리

203
이제라도 멈추라, 그대들은 한없이 작고 약하니.
물음만 있고 답이 없는 세상이지만
머잖아 사람들은 그대들의 잘남이
풀잎 하나 보듬지 못함을 알 것이다. 
- 김택근

203
초록의 공명

요즘 사람들은 지서와 감성을 이분화하는 경향이 있지만, 과학이라고 하는 것이 하나를 둘로 나누고 둘을 넷으로 나누면서 그 뿌리오아 근원을 버리는 일을 보면 참담할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이는 환경문제에서뿐 아니라 모든 부패한 제도권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현상이기도 합니다. 근본을 버리고 지말을 쫓는 어리석음은 우리가 스스로를 대지에 뿌리를 내린 직립보행의 생명체가 아니라 하늘에 머리를 둔 만물의 영장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종교와 정치 교육은 평등과 자유, 그리고 생명 존중이라는 하나의 큰 틀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사람과 자연의 원리를 조화롭게 제어하는 데 그 목적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법과 모든 제도 역시 그러한 시도에서 출발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제가 종교인이라는 이유로 어떤 종교적 세계관과 생명관에서 이 운동을 계속하고 있다고 기대하기도 할 것입니다. ... 기실 저는 특정한 모양이나 형체의 종교관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209
행복에 도달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무언인가 추구하는 대신 욕망을 버리고 조촐하게 살아가며 자연의 빛과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은 황금 이상의 가치가 있으며 최소한의 것을 누리고 최대한의 것을 이웃과 나누는 곳에 진정한 평화가 있습니다. 

최소한의 물질적 생활로 최대한의 영적 기쁨을 누리는 것은 신앙의 아름다움입니다. 동양에서는 이를 '안빈낙도, 소욕지족'이라고 말합니다. 청빈한 사람에게는 고뇌가 없으며 순리를 이해하고 우주가 나와 한 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생사가 없습니다. 

210
이제까지 우리 사회는 언뜻 보기에 개발과 보존이라는 두 가지 가치관이 서로 첨예하게 대립해 온 듯하나, 실제로는 대부분 가진 자들이 일방적으로 승리하는 싸움일 뿐이었습니다. 국가가 주역이 되고 기업이 함께 하고 언론이 그 중재 역할을 하여 정당성을 얻는 수순을 거치면서 진행되는 도로, 터널, 댐, 방조제 등 대규모 환경 파괴 사업은 이 땅을 황폐한 죽음의 땅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소유에 집착하는 풍요는 인간의 영혼을 고독하고 메마르고 병들게 하며, 자연의 빛과 소리와 향기를 잃어버림으로써 인간의 영성과 근골은 점점 나약해지고 있습니다. 

212
지난 도롱뇽 소송 중에, 고속철도공단의 변호사는 저를 향해 "산이 울고 있다고 감성적 표현으로 국민을 호도하고 건국 이래 최대의 국책사업에 발목을 잡고 있는 한 비구니"라고 맹렬한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제가 전문 지식이 없다는 이유로 저를 비난했습니다. 그럴 때 마다 저는 "당신들이 자와 컴포스를 가지고 책상 앞에서 보낸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나는 산에서 살아 왔고, 당신들보다 훨씬 더 산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려고 노력했다"고 응답하곤 했습니다. 

213
산줄기가 끊어져 물이 마르고 강과 바다는 썩어 있고 생물들은 하나 둘 신화의 세계 속으로 떠나고 있습니다. 

터널이 뚫리면 반경 2~10킬로미터 사이의 지역에 지하 수맥이 변하고 1백~8백 미터 이상 지하수가 하강하며 터널 주변의 겨울잠을 자야 하는 생물들은 소음과 진동 때문에 사라져 간다고 합니다. ... 국토가 사막화되고 생태계가 무너진다면 이러한 훼손으로 인한 손실은 개발로 인한 경제적 가치 이상입니다. 더구나 그 피해가 미래에 이르고 복구할 방법과 대안이 없다고 한다면 우리는 어찌해야 할까요? 

214 
지금 천성산에는 18개의 늪과 6개의 계곡을 가르는 16킬로미터의 터널 공사가 강행되고 있으며 그 참혹함은 말로 할 수 없습니다. 

215
자연의 권리 소송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풀이나 풀벌레, 도롱뇽의 이야기는 감성적이며 논리적이지 못하고 반사회적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우주의 연관과 연기를 말씀하신 부처님께서는 유정, 무정이 모두 진화엄이라 말씀하였고 살아 있는 모든 생명에 대하여 동체대비의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는 뜻에서 불살생의 계율을 제정하셨습니다. 만일 불교가 소이와 소아에 국집하여 제1의 계율인 생명 문제의 접근을 포기한다면, 우리 마음밭에 영원히 자비의 종자를 끊는 것이며 스스로 불종자라 이르지 못할 것이고 대승을 논하지 못할 것입니다. 

217
우리는 세간의 관심을 끌기 위해 도롱뇽 소송을 진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이제 우리 곁에서 영영 사라져 갈지도 모를 작은 생명의 외침을 통해, 그동안 자연과 생명에 대한 배려 없이 극단까지 와 버린 우리 사회와 문화를 돌이켜 보고 인간 중심으로 기록되어 온 지구의 역사를 다시 씀으로써 모든 생명이 함께 하는 조화로운 세상으로 만드는 작은 단초가 되기를 바랍니다. 

219
우리는 늪과 숲을 파괴하고 얻은 행복을 원치 않는다. 조금만 덜 가지려고 노력하고 조금만 더 느리게 살고, 조금만 더 '우리'를 생각한다면 물, 공기, 흙, 햇살 같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평화롭고 가난하지 않은 ㄷ 될 것이다. 

221
절망의 이유
최근에 와서 느끼는 것들 중에 하나는 광음의 속도로 달리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현대인에게는 절망의 속도도 그만큼 빠르다는 것이다 .

수차례 걸쳐 회의에 참석하면서 느끼는 것 중의 하나는 사람들의 마음에 아픈 절망이 아닌 타성화된 절망이 팽배하여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단 한 번도 행동하여 본 일이 없으면서 이성적으로 훈련된 절망을 안고 사회문제를 들여다보고 개혁을 이야기한다. 

222
사랑은 실패할 수 있다. 개혁도, 민주주의도 실패할 수 있다. 돌아보면 온 생을 다 바쳐 쌓아 온 일도 대부분 실패로 돌아가는 일이 많다. 역사는 그렇게 씌여 간다. 

하지만 시련과 실패의 기억은 아름다울 수 있다. 그곳에서 지혜가 빛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도해 보지 않은 실패는 그 자체가 절망이다. 

조건없이, 까닭없이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면 그것이 하여야 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나의 천성산 이야기는 그렇게 내가 살아왔던 세상에 대한 이유 없는 두근거림으로부터 시작되었다. 

230
저는 현대 문명이 걸어온 길은 우리 수행자들이 잘못 살아온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종교가 가진 신비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담론은 세속을 떠난 초월 속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실천적, 도덕적으로 완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전도된 가치관에 의해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무관심한 채로 기복을 비는 종교 행위는 이 사회의 위기가 깊다는 것을 느끼게 하여 줍니다. 

수행자는 비록 산속 깊은 곳에 숨어 지내도 남모르는 선행을 익혀야 하며 세상 밖에서도 세상의 이치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가져야 합니다. 


지율의 질문과 우리의 대답

지율스님의 질문을 이 사회는 어떻게 이해했을까
- 우석훈

241
사람들은, 지율이라는 몸을 빌려서 던져진 질문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소크라테스를 죽여야 한다고 결정한 그리스 사회와 던혀 다르지 않다. 

245
신탁을 받기 위해서는 백지와 같아 신의 목소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투명성이 요구된다. 나는 지율을 이 백지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지율의 '도롱뇽'을 이 혼돈의 시대에 이 땅의 생태계가 던져 준 신탁과 같은 것이라고 이해하고 싶다.

248 
그래서 감히 평가하면 지율 스님 그 이후는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사람들이 지율이 던진 질문을 보지 않고, 단식과 관련된 일련의 '지율 현상'과 자연인 '지율' 개인만을 보려고 한다면, 더 이상 지율 이후는 없고, 지율 사건도 아무 사건도 아닐지도 모른다. 사회적으로 지율 사건은 이미 종료된 것인지도 모른다. 

249
지율이 보라고 한 것은 지율 자신이 아니라 도롱뇽이고 도롱뇽으로 상징되는 그 무엇이다. 

그 무엇의 마지막에는 바로 자기 자신이 있다는 것. 나는 그것을 지율의 질문이라고 이해하고 싶다. 


희생:
지유과 예수
- 박경미

254
지율은 물러날 데 없는 벼랑 끝에 홀로 서 있다고 느꼈을 것이다. 벼랑 끝에서 뒷걸음치며 밀려 떨어지면 패배지만, 하늘을 우러르며 힘껏 앞으로 발을 내딛으면 벼랑 아래로 '날기'가 된다. 날아서 제 몸을 화살로 삼아 온 우주의 과녁 한가운데를 적중시키면, 그것이 '희생'이다. 스스로 희생한 자는 자신의 삶을 통해 진리의 빛을 발한다. 삶을 통해 사람들이 가야 할 길을 비춰준다. 

255
지율은 천성의 신음 소리를 듣은 순간을 이렇게 쓰고 있다.

"산이 게으른 수행자였던 저를 불러 세운 순간을 저는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바위를 깎는 포크레인 소리에 묻혀
그 소리는 아주 가느다랗게 들렸습니다.
"거기 누구 없나요? 살려 주세요..."라고.
어린 아이의 울응소리 같기도 하고
늙은 어머님의 신음 같기도 한 이 소리는
지금 전국의 산하에 울리고 있습니다. 
애처롭게 울리는 이 소리는 제게 신의 음성보다
더 무섭게 들렸습니다. 
아픈 산하가 우리에게 도와 달라고 말을 건 이 순간이 
생명에 대한 사랑과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일지 모른다는 조바심 때문에
낯선 거리에 서는 부끄러움도 차마 싫어하지 못했습니다." 

259
예민한 영혼들은 온 우주에 가득 찬 생명들과 영혼들의 생각들, 의식들, 느낌들과 공명할 수 있다. 그들에게 우주는 생명의 기운들로 가득 차 있고 상처 받은 영들의 탄식과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의 생명 속에 생명의 물결이 파도처럼 와 닿고 있다.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은 아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아픔에서 치유와 구원이 시작된다. 

근원적인 시각에서 보면 우주는 끊임없이 존재하고 폭발하여 해소되었다가 다시 생성하는 가운데 유지된다. 그러나 그 안에 살아가는 덧없는 개체 생명들이 경험하는 것은 전쟁과 살육, 고통의 비명 소리이다. .. 그러나 개체 생명으로서 느끼는 삶의 부정성, 비극과 처참함이 궁극적으로 세계에 대한 온전하고 현실적인 인식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260
오히려 종교적 통찰은 놀라운 신비는 삶의 비극과 처참함을 생명에 대한 찬미로 바꾸어 놓는데 있다. 종교의 본질은 개인의 의식과 우주적 의지를 화해시킴으로써 삶에 대한 무지와 무명을 추방하는 데 있다. 이 목적은 시간에 종속된 덧없는 개체 생명 현상과, 삶과 죽음이 병존하는 불멸의 삶과의 진정한 관계를 자각해야만 달성될 수 있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잘발적인 희생은 가능해진다. 

거기까지 이르러야 복수심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고, 그래야 먹고 먹히는 아비규환의 세상 한가운데서 자신을 먹이로 내어줄 수 있으며, 우주의 육체 속에 살아있는 생명으로, 등신불로 현존할 수 있다. 

지율은 이외 비슷한 내적 경험을 다음과 같이 감동적으로 쓰고 있다. 

"지난 4년 동안 거리에 섰던 이야기를 누가 물으면 무엇이라 말해야 할까요. 죽음에 이르도록 달리면서 바람에 머리를 행구지 않으면 숨이 막혀 버릴 것 같았다고 이야기하면 누가 믿어 줄까요. 

날이 선 칼날 단두개 아래서 한 몸이 둘로 나누어지는 그 찰나의 순간을 생각하며 항시 긴장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둘이라고.... 동지와 적도 둘이었고 사랑과 분노도 둘이었고 꿈과 현실도 둘이었고 칭찬과 비난도 둘이었고 수행자의 초졸함과 아만도 둘이었습니다. 

그러나 70일의 허기를 견디어 내고 난 후, 제가 가져가야 할 둘의 절망이 갑자기 보이지 않습니다.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


261
스스로 고난을 당하는 하나님, 자기 자신을 제물로 바친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사랑이 가능하다고 믿게 만들고 사랑을 희망하게 만든다. 

이 믿음과 소망 안에서 우리는 바울처럼 힘차게 외칠 수 있다. "죽음을 삼키고서 승리를 얻었다.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죽음을 이기고 부활한 예수와 함께 독수리처럼 힘차게 솟구칠 수 있게 된다. 

264
지율은 달리 선택할 것이 없었기 때문에, "생명에는 대안이 없기 때문에" 생명의 길을 택했다. 



273
맺는말
정말로 제가 두려워하는 것은 한번도 천성산을 다녀가지 않은 사람들이 그깟 도롱뇽, 한 비구니의 감성적 운동, 극단적 단식으로 여론을 몰고 가는 방향과 이 사회가 가고 있는 방향이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 발제문


1. 지율(의 투쟁, 희생..)의 의미 

. 원력
. 중생구제
. 천성산의 의미
. 살신성의, 
. 백척간두에 서서 

ㅇ  
<기신론>의 첫 구절을 가슴에 풀어놓아 봅니다. 

목숨 바쳐 귀의하옵니다.
어디서나 어느 때나
가장 훌륭한 일을 하시오며
앎이 없이 온간 것 두루 아시며
걸림 없이 자유자재하시사
이 세상 건지시려
크나큰 자비를 베푸시는
부처님이시여.
중생들로 하여금 의혹을 없애고
그룻된 집착을 버려서
대승의 올바른 믿음을 일으키고 
그리하여 부처의 씨앗이
끊기지 않도록 하고자 합니다. 


ㅇ 
사람의 몸으로 태어났고 수행자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는 소중한 인연을 만났으며
신명을 다 바쳐 할 수 있는 일을 만나서
정진할 수 있었는데 무슨 후회가 있겠습니까. 


ㅇ 
시, "깊고 어두운 강가에서" 

"이제 다시 어두운 강가에 서서
밀항하듯 탈영하듯 떠나야만 하는 시간이다.
수없이 건너 왔던 강을 또 혼자 건너야 한다. 

수심을 알 수 없는 저 어두운 강에 몸을 던저야
이 강을 건널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두려운가, 
이제 저 강은 나를 건네줄 수도 있고
내 생명을 앗아 갈 수도 있다. 

이 슬픔과 두려움에 아랑곳없이
나는 다만 깊고 어두운 천성의 강에 
던져지는 자맥질일 뿐이다." 


저의 단식은 도덕적으로 병들어 버린 이 사회에서 제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였습니다. 


2.저들은 지율을 어떻게 보고 있나? 지율이 보는 저들은?


"산이 울고 있다는 감성적 표현으로 국민을 호도하고 여론을 조장하여 국책사업의 발목을 잡고 있는 한 비구니" 


시, "메피스토펠레스" 

눈만 감으면....
어둠 한구석에서 조그많게
메피스토펠레스의 노래 소리가 들여온다. 

이곳을 뚫고 저곳을 메우자.
세상은 어차피 성주괴공, 
무너지고 텅 빌 때까지
펜대를 굴리자.
법정에도 서고 강의실에도 서고
때로 성전은 우리의 전당
진실은 힘의 논리 

가진 것 없는 가난한 자
너희들이 생명이라 부르는
그 오물거리는 더러운 도룡뇽
한 때 나도 꿈꾸었지
빛이 내리는 숲길을 

너희가 희망이라고 부르는
생각하기 싫은 구질구질한 골목길
고급 승요차에 몸을 기대는 순간
그 잔잔하고 평온한 스피드 속에
약간의 양심은 피로고 풀려 나간다. 

명에의 탈에 기대어 바라보니
저 아래 고물거리는 것들
저것들이 나와 동류라는 것을 참을 수가 업군.
때때로 이 높은 곳까지 올라오는 역겨움
그것을 그들은 진실이라 부른다지. 

종이 위에 쓰는 온갖 맹서
참이거나 거짓이거나
결과는 마찬가지
이것이 세상의 공식
어차피 역사는 피로 물드는 것
나는 역사를 쓰는자!
참이든 참이 아니든......." 


제가 천성산 문제에 뛰어 들었던 것은 사회.정치 문제가 아니라 생명과 윤리의 문제로서였다고. 그러하기에 천성산 문제는 부도덕한 사회의 현실 속에서 도덕적으로 승리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또한 이 사회의 보이지 않는 준칙인 도덕은 평등하게 그들을 벌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3. 지율이 제시해주는, 희망은? 

한마디로, 초록의 공명 


천성산은 제게 세상을 향해 열렸던 문이었고
그 문을 통해 저는 온갖 사회악과 그 악들이
무섭게 커 가며 움직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둠 속의 메피스토펠레스처럼 인간의 영혼을 유혹하고
영생을 이야기하는 유령들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소용돌이 속에서 아름다운 작은 빛을 보았으며
그 빛을 쫓아오면서 사랑과 감사를 배웠습니다.
저는 그 빛을 초록의 공명이라고 불렀고 이 공명을 통해 
이 땅의 생명과 평화가 실현되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흑자는 전쟁과 살인, 대규모 참상이 자행되고 있는 세상에서
풀잎과 풀벌레의 이야기는 동화라고 저를 비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풀잎과 풀벌레의 이야기가 아니라면 우리 마음에 작은 자비의 씨앗이라고 심을 기회는 영영 없어져 버리고 말 것입니다. 

작은 풀이나 풀벌레를 함부로 밟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살상의 무기를 들지 못하며, 다른 이의 불행을 지나치지 못하며, 자신의 양심을 속이는 일을 쉽게 하지 못합니다. 그들의 마음이 자비로 무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ㅇ 
행복에 도달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무언인가 추구하는 대신 욕망을 버리고 조촐하게 살아가며 자연의 빛과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은 황금 이상의 가치가 있으며 최소한의 것을 누리고 최대한의 것을 이웃과 나누는 곳에 진정한 평화가 있습니다.

최소한의 물질적 생활로 최대한의 영적 기쁨을 누리는 것은 신앙의 아름다움입니다. 동양에서는 이를 '안빈낙도, 소욕지족'이라고 말합니다. 청빈한 사람에게는 고뇌가 없으며 순리를 히애하고 우주가 나와 한 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생사가 없습니다. 

조금만 덜 가지려고 노력하고 조금만 더 느리게 살고, 조금만 더 '우리'를 생각한다면 물, 공기, 흙, 햇살 같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평화롭고 가난하지 않은 삶이 될 것이다. 



4. 이 시대의 영적 진보와 선, 부처님의 가르침 


천성산 일을 하면서 제가 어느 때 보다 부처님의 말씀과 게율을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느꼈던 것 처럼, 모든 종교인들이 한결같이 지향하는 영적 진보와 선으로 인도하는 첫 번째 길은 바로 이웃의 생명과 모든 자연에 대한 깊은 경외에서 비롯된다는 진리 속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동료가 되었습니다. 때로는 사람들이 이해관게를 다투고 떠나간 뒤에도 그분들은 언제나 소리 없이 함께해 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풀이나 풀벌레, 도롱뇽의 이야기는 김성적이며 논리적이지 못하고 반사회적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우주의 연관과 연기를 말씀하신 부처님께서는 유정, 무정이 모두 진화엄이라 말씀하였고 살아 있는 모든 생명에 대하여 동체대비의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는 뜻에서 불살생의 계율을 제정하셨습니다. 만일 불교가 소이와 소아에 국집하여 제1의 계율인 생명 문제의 접근을 포기한다면, 우리 마음밭에 영원히 자비의 종자를 끊는 것이며 스스로 불종자라 이르지 못할 것이고 대승을 논하지 못할 것입니다. 



5. 지율의 자비, 사랑 


돌아보니 저는,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사랑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고집스럽고 어리석은 사랑이었죠. 하지만 저는 어떠한 경우에도 천성산을 놓으라고 하는 이야기는 듣지 못하겠습니다. ... 어떠한 경우에도, 제가 가도 ..... 천성은 남을 것입니다. 


지난 4년 동안 거리에 섰던 이야기를 누가 물으면 무엇이라 말해야 할까요. 죽음에 이르도록 달리면서 바람에 머리를 행구지 않으면 숨이 막혀 버릴 것 같았다고 이야기하면 누가 믿어 줄까요. 

날이 선 칼날 단두대 아래서 한 몸이 둘로 나누어지는 그 찰나의 순간을 생각하며 항시 긴장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둘이라고.... 동지와 적도 둘이었고 사랑과 분노도 둘이었고 꿈과 현실도 둘이었고 칭찬과 비난도 둘이었고 수행자의 초졸함과 아만도 둘이었습니다. 

그러나 70일의 허기를 견디어 내고 난 후, 제가 가져가야 할 둘의 절망이 갑자기 보이지 않습니다.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6. 도롱뇽 소송, 자연의 권리 소송의 의미 

우리는 세간의 관심을 끌기 위해 도롱뇽 소송을 진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이제 우리 곁에서 영영 사라져 갈지도 모를 작은 생명의 외침을 통해, 그동안 자연과 생명에 대한 배려 없이 극단까지 와 버린 우리 사회와 문화를 돌이켜 보고 인간 중심으로 기록되어 온 지구의 역사를 다시 씀으로써 모든 생명이 함께 하는 조화로운 세상으로 만드는 작은 단초가 되기를 바랍니다. 


7. 아픈 절망과 타성화된 절망
사람들은 단 한 번도 행동하여 본 일이 없으면서 이성적으로 훈련된 절망을 안고 사회문제를 들여다보고 개혁을 이야기한다. 
시도해 보지 않은 실패는 그 자체가 절망이다. 


8. 지율 이후

지율 이후는 없다. 우석훈 
적어도 사람들이 지율이 던진 질문을 보지 않고, 단식과 관련된 일련의 '지율 현상'과 자연인 '지율' 개인만을 보려고 한다면, 더 이상 지율 이후는 없고, 지율 사건도 아무 사건도 아닐지도 모른다. 사회적으로 지율 사건은 이미 종료된 것인지도 모른다. 

지율이 보라고 한 것은 지율 자신이 아니라 도롱뇽이고 도롱뇽으로 상징되는 그 무엇이다. 

그 무엇의 마지막에는 바로 자기 자신이 있다는 것. 나는 그것을 지율의 질문이라고 이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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