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5

향모를 땋으며(6)_엄마의 일.수련의 위로

엄마의 일 A Mother's Work우리 포타와토미 부족에서 여성은 물의 수호자다. 우리는 제의에 쓸 신성한 물을 나르고 그 물을 대신해 행동한다. 자매가 말했다. "여자들이 물과 자연적 유대 관계를 맺는 것은 우리 둘 다 생명을 낳는 존재이기 때문이야. 우리는 몸 속 연못에 아기를 품지. 아기는 물결을 타고 세상에 나와. 우리의 모든 관계를 위해 물을 지키는 것은 우리의 임무야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한 조건에는 물을 보살피는 것도 포함된다. 144좋은 엄마가 된다는 것은 세상을 돌보는 법을 자녀에게 가르친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나는 딸들에게 텃밭 일구는 법과 사과나무 가지치는 법을 알려주었다. 사과나무는 물 위로 가지를 뻗어 그늘을 드리운다. 봄이면 분홍색과 흰색의 꽃 무리가 언덕 아래로 향기의 기..

향모를 땋으며(5)_단풍당의 달.위치헤이즐

단풍당의 달 Maple Surgar Moon단풍나무는 자신이 받은 으뜸명령을 해마다 수행한다. 그것은 사람들을 돌보라는 명령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자신의 생존도 도모한다. 계절의 변화가 시작되었음을 감지한 눈은 굶주림에 시달린다. 1밀리미터밖에 안 되는 싹은 어엿한 잎이 되기를 갈망하기에 식량이 필요하다. 그래서 눈은 봄을 감지하면 줄기를 따라 뿌리에 호르몬 신호를 보낸다. 이것은 빛의 세계에서 지하 세계로 타전하는 모닝 콜이다. 호르몬은 아밀라아제의 형성을 자극하는데, 이 효소는 뿌리에 저장된 커다란 녹말 분자를 작은 당 분자로 쪼갠다. 뿌리의 당 농도가 높아지기 시작하면 삼투 작용이 일어나 흙으로부터 물을 빨아 들인다. 당은 축축한 봄 흙에서 뽑아낸 물에 녹은 채 줄기를 따라 위로 올라가며, 이렇..

향모를 땋으며(4)_참취와 미역취.유정성의 문법

참취와 미역취 Asters and Goldenrod  내가 식물을 선택한 이유는 참취와 미역취가 함께 있을 때 왜 그리도 아름답게 보이는지 알고 싶어서라고 그에게 말했다. 67왜 참취와 미역취는 혼자 자랄 수도 있는데 나란하 자랄까? 왜 둘이 짝을 이룰까? 분홍색과 흰색과 파란색이 놓인 것은 순전히 우연일까? 이 패턴은 어디서 왔을까? 세상은 왜 이토록 아름다울까? 그러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 우리 눈에 추하게 보이면서도 제 목표를 얼마든지 달성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런데도 그러지 않았다. 교수의 말, "아름다움을 공부하고 싶으면 미대에 가야죠" 69벌과 사람 둘 다 두 꽃을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두 꽃은 함께 자랄 때 선명한 대비를 이룸으로써 초원 전체에서 가장 매력적인 표적, 즉 벌의 유도등이 된..

향모를 땋으며(3)_딸기의 선물.바침

딸기의 선물'선물''이 발치에 한가득 뿌려져 있는 세상'이라는 나의 세계관을 처음 빚처낸 것은 딸기였다. 선물은 나의 행위를 통해서가 아니라 공짜로 온다. 내가 손짓하지 않았는데도 내게로 온다. 선물은 보상이 아니다. 우리는 선물을 제 힘으로 얻을 수 없으며 자신의 것이라고 부를 수 없다. 선물을 받을 자격조차 없다. 그런데도 선물은 내게 찾아온다. 우리가 할 일은 눈을 뜨고 그 자리에 있는 것뿐이다. 선물은 겸손과 신비의 영역에, 우연한 선행으로서 존재한다. 우리는 선물이 어디서 오는지 알지 못한다. 46루이스 하이드는 선물 경제를 두루 연구했다. 그는 "대상이 계속해서 풍요로운 것은 우리가 선물로 대하기 때문'임을 깨달았다. 자연과의 선물관계는 "자연의 증식에 우리가 참여하고 의존한다는 사실을 인정하..

향모를 땋으며(0)_표지.목차

향모를 땋으며 - 토박이 지혜와 과학 그리고 식물이 가르쳐준 것들  로빈 월 키머러 (지은이),노승영 (옮긴이)에이도스2020-01-17 원제 : Braiding Sweetgrass (2013년)  머리말 010향모 심기하늘여인 떨어지다 015피칸 회의 026딸기의 선물 043바침 058참취와 미역취 066유정성의 문법 079향모 돌보기단풍당의 달 099위치헤이즐 111엄마의 일 126수련의 위로 150감사에 대한 맹세 160향모 뽑기콩을 보며 깨닫다 181세 자매 190위스가크 고크 페나겐: 검은물푸레나무 바구니 209미슈코스 케노마그웬: 풀의 가르침 231단풍나무 네이션: 국적 취득 안내서 247받드는 거둠 259향모 땋기나나보조의 발자국을 따라: 토박이가 되는 법 301은종 소리 317둘러앉기 32..

향모를 땋으며(1)_하늘 여인 떨어지다

하늘 여인 떨어지다 Skywoman Falling 태초에 하늘 세상이 있었다. 여인은 단풍나무 씨앗처럼 가을바람을 타고 빙글빙글 돌면서 떨어졌다. 하늘세상의 구멍에서 빛기둥이 내려와 어둠 속에서 여인의 길을 밝혔다. 여인은 한참을 떨어졌다. 두려움 때문이었는지 희망 때문이었는지 여인은 꾸러미를 꽉 붙들었다. 추락하는 여인에게 보이는 것은 아래쪽의 시커먼 물뿐이었다. 하지만 그 공허 속에서 많은 눈이 난데없이 빛줄기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작은 물체로 보였다. 빛살 속의 먼지 알갱이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물체는 점점 커지더니 이제 여자로 보였다. 팔을 활짝 벌린 채 길고 검은 머리카락을 펄럭거리며 그들을 향해 맴돌며 떨어지는. 기러기들이 서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기러기의 노래'가 물결치는 가운데 ..

새로운 언어를 위해서 쓴다 - 융합과 횡단의 글쓰기

새로운 언어를 위해서 쓴다 - 융합과 횡단의 글쓰기 정희진 머리말 융합, 아는 것에서 탈출하기: 독창적 글쓰기는 어떻게 가능한가 목적 의식적인 융합이 필요하다 이 책은 모든 지식이 이미 융합의 산물임을 상기한다. 이 책은 또 독창적인 글쓰기를 위해 자신이 아는 바를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에 관해 이야기한다. 여기서 '어떻게'는 글쓴이의 가치관과 위치, 당파성, 이동, 다시 태어남 따위를 의미한다.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일까, 이 질문은 "왜 쓰는가"와 동격의 물음이다. 나의 삶과 글쓰기와 사회는 어떤 관계인가, 나의 글쓰기 태도는 어떤 가치관에서 나온 것인가, 비슷한 말 같지만 조금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내가 글을 쓰닌 이유는 어디에 있으며 나의 글쓰기는 어떤 사고 ..

2022년 2022.12.30

정희진처럼 읽기 - 내 몸이 한 권의 책을 통과할 때

정희진처럼 읽기 - 내 몸이 한 권의 책을 통과할 때 정희진 프롤로그 _ 나에게 책은 누군가 내게 왜 책을 읽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아파서요, 책을 읽으면 좀 덜 아프거든요." 이는 나만의 이유가 아니다. 누구나 몸이 아프거나 기분이 상할 때 혹은 고통으로 인한 죽음 직전에도 책을 읽으면 위로 받는다. 기분이 전환되고 타인의 처지를 이해하고 나를 돌아보게 된다. 아픈 상황에서 딴 곳으로 이동할 수 있고 덜 아프게 된다. 좋은 책은 세상이 내게 주는 선물, 생명, 세로토닌(행복감을 생산하는 뇌의 화학 물질)이다. 위로는 깨달음 에서 온다. 이 위로가 몸에 습관이 되어 독서의 즐거움에 중독되면 다른 일에는 흥미가 떨어진다. 즐거움에 풀잎을 얹으면, 약(薬)이 된다. 책은 즐거움이자 풀잎이..

2022년 2022.12.28

몸에서 자연으로, 마음에서 우주로

몸에서 자연으로, 마음에서 우주로, with 동의보감 & 숫타니파 고미숙 책머리에 과 두 개의 고전을 교차하면서 삶과 문명의 지도를 다시 그려 보고 싶었다. 7 전자가 몸에서 자연으로 이어지는 경로라면, 후자는 마음에서 우주로 연결되는 행로다.... 물론 몸에서 자연으로 가는 여행, 마음에서 우주로 가는 여행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정와 스님의 말씀대로, "우리는 온전히 물질이고, 온전히 영혼"이기 때문이다. 8 첫번째 강의 몸에서 자연으로, 마음에서 우주로 1.우리는 무엇을 모르는가? 우리는 알지 못하면 살 수가 없죠. 매이매일 무언가를 배워야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 아는 만큼의 힘으로 사는 거예요.... 동물이나 벌래들도 다르지 않습니다. 매일 뭘 배워야 먹고 살잖아요. 그렇다면 생명과 앎은 분..

2022년 2022.12.25

이 페허를 응시하라

이 페허를 응시하라: 대재난 속에서 피어나는 혁명적 공동체에 대한 정치사회적 탐사 레베카 솔닛 서곡. 폐허에서 발견한 날카로운 기쁨 지진은 무시무시했고 며칠간 계속된 여진도 마찬가지였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대다수가 불안에 떨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적어도 정서적으로는 가난해지지 않고 오히려 풍요로워졌다. 재난 속에서 자라나는 이러한 감정은 과연 뭘까? 자신의 고장을 덮친 대형 허리케인을 이야기하며 기쁨으로 얼굴이 환해지는 헬리팩스의 남자를 만난 뒤부터, 나는 그런 현상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100주년을 앞두고 그것에 대한 글을 쓸 때는 이 특이한 감정이 얼마나 자주 나타나며, 재난 이후의 세상을 얼마나 크게 변화시키는지 감지하게 되었다. 16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건,..

2022년 2022.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