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5

향모를 땋으며(16)_부수적 피해~윈디고에게 이기다

부수적 피해차들이 호모 사피엔스를 보고도 블레이크에 인색하다면, 밤중에 이 도로를 건너는 우리의 이웃 암비스토마 마스콜라타(점박이 도룡뇽)에게는 무슨 희망이 있을까?  CNN뉴스, 바그다드에 폭탄이 떨어지고 있다.  부수적 피해: 미사일이 엉뚱한 곳을 맞힌 결과를 얼버무리는 기만적 표현, 이 표현은 마치 인간이 일으킨 파괴가 불가피한 자연 현상인 것마냥 우리에게 고개를 돌리라고 요구한다. 부수적 피해의 측정 단위는 뒤집힌 수프 냄비와 울부짖는 아이들이다. 509 대개는 눈에 안 띄지만 기러기 때 못지않게 극적인 것은 겨울철 군에서 나와 임시 봄못vernal poxol (봄철에만 물이 고이고 이후에 마르는 연못. 옮긴이)에서 짝을 만나는 도롱뇽의 이동이다. 첫 봄비가 내리면, 빗물이 땅을 적시는 동시에 기..

향모를 땋으며(15)_성스러운 것과 슈퍼펀드.옥수수 사람, 빛 사람

성스러운 것과 슈퍼펀드 염류, 온콜라이트, 폐기물은 뿌리 달린 수초의 생장을 저해한다. 호수가 산소를 얻으려면 침수 식물이 광합성으로 산소를 만들어내 야 한다. 식물이 없으면 오논다가호 밑바닥은 산소가 부족해지며, 바닥층이 식물로 일렁이지 않으면 물고기, 개구리, 곤충, 왜가리의 먹이 사슬 전체가 서식처를 찾지 못한다. 뿌리 달린 수초가 지리멸렬한 반면에 부유성 조류는 오논다가호에서 번성한다. 도시 하수에서 수 십 년째 방출된 다량의 질소와 인이 호수에 영양을 공급하여 조류의 생장을 촉진했기 때문이다. 조류는 수면을 덮었다가 죽어서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썩으면서 그나마 물속에 남아 있던 산소를 고갈시키는 탓에 호수에서는 더운 여름날 호안에 쓸려 온 죽은 물고기의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살아남는 물고기도 ..

향모를 땋으며(14)_비의 목격자.윈디고 발자국

비의 목격자모든 감각을, (나를 넘어선 모든 것 대신 오로지 내게만 주의를 집중시키는) 사방의 벽을 무너뜨리고 감각을 깨우기에는 빗속에서 서 있는 것만 한 것이 없다. 안에서 밖을 내다보며, 젖은 세상에서 혼자만 마른 채인 고독을 견딜 수 없었다. 이곳 우림에서, 나는 수동적이고 보호받는 비의 방관자에 머물고 싶지 않다. 폭우의 일부가 되어, 발밑에서 꼼지락거 리는 시커먼 부식토와 함께 푹 젖고 싶다. 북슬북슬한 개잎갈나무처럼 빗속에 서서 껍질속으로 스며드는 물을 느끼고 싶다. 우리를 가르는 장벽을 물이 녹여줬으면 좋겠다. 개잎갈나무가 느끼는 것을 느끼고 개잎갈나무가 아는 것을 알고 싶다.432 객관적 실재로서의 시간은 내게 별 의미가 없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일어나는 일이다. 분과 해가, 우리가 만든..

향모를 땋으며(13)_음빌리카리아: 세계의 배꼽

음빌리카리아: 세계의 배꼽 지의류가 겁 없이 바위에 뿌리를 내려 보금자리로 삼았다. 물론 이것으 ㄴ비유적 표현이다. 지의 류는 뿌리가 없으니까. 흙이 없을 때는 뿌리가 없는 게 유리하다. 지의류는 뿌리뿐 아니라 잎과 꽃도 없는 가장 원시적인 생명체다. 바늘 구멍만 한 작은 틈새에 깃든 먼지만 한 번식체에서 출발하여 지의류는 알몸의 화강암에 자리 잡았다. 이 미세 지형은 바람을 막아주고 오목한 부분을 만들어서 비가 내린 뒤에 물이 미세한 웅덩이에 고일 수 있도록 했다. 많지는 않았지만 이걸로도 충분했다. 394지의류가 있는 숲은 풍성한 식물경이지만, 지의류는 식물이 아니다. 지의류를 보면 개체의 정의가 헷갈린다. 지의류는 하나가 아니라 조류와 균류 둘이기 때문이다. 두 짝은 사뭇 다르면서도 매우 밀접한 공..

향모를 땋으며(12)_캐스케이드 헤드의 불

캐스케이드 헤드의 불그러나 지금 나는 그저 그곳에 가만히 선 채 환희와 비탄의 맛이 나는 이름 없는 감정을 느끼며 빰 위로 눈물을 흘렸다. 환희는 일렁가리는 세상의 존재로 말마암을 것이요. 비탄은 우리가 잃은 것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풀은 불에 타던 잠을, 종 경계를 넘어선 사랑의 불로 길을 밝히던 밤을 기억한다. 오늘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나마 아는 사람이 있을까? 풀밭에 무릎을 꿇으니 슬픔의 소리가 들린다. 마치 땅이 자신의 백성을 위해 우는 듯. 365그것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과 땅을 사랑하는 것 사이에 우리 스스로 놓은 괴상한 이분법이다. 우리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 힘이 있음을, 사람을 사랑함으로써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음을 안다. 하지만 우리는 땅을 사랑하는 것이 그저 내면의 문제인 것처..

향모를 땋으며(11)_은종소리.둘러앉기

은종소리  예전에 한 학생이 나의 진화 수업에 딴죽을 건 뒤로 나는 이 문제를 무겁지 않게 다루는 법을 배웠다. 모두가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그래서 숲을 사랑한다는 애기로부터 은근쓸쩍 시작하여 토박이 환경철학자에 대해, 창조 세계의 다른 구성원들과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 상황에서만큼은 정령의 생태학을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기독교도로부터도 과학으로부터도 하도 동떨어져서 학생들이 이해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324문득 무척 슬퍼졌다. 그 순간, 내가 실패했음을 알았다. 나는 참취님과 미역취님의 비밀을 찿던 어린 학생으로서 내가 갈망하던 과학, 데이터보다 심오한 과학을 가르치는 데 실패했다. 나는 학생들에게 너무 많은 정보를 줬다. 오갖 패턴과 과정이 너무 무껍게 쌓여 가장 중요한 진실을 ..

향모를 땋으며(10)_받드는 거둠

받드는 거둠 Honorable Harvest고사리밥 같은 잎들이 퍼지고 은은한 꽃향기가 감도는 이런 날은 샘이 난다. "네 이웃의 엽록체를 탐하지 말라"라는 말이 좋은 조언임을 알지만 엽록소에게 질투가 나는 걸 부인할 수 없다. 이따금 나도 광합성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존재하는 것만으로, 풀밭 가장자리에서 하늘거리거나 연못 위에 한가로이 떠 있으면서 가만히 햇볕을 쬐기만 해도 먹고살 수 있을 테니까. 그늘을 드리운 나뭇잎과 물결치는 풀잎은 당 분자를 만들어 굶주린 입과 구기에 넣어주면서도 솔새의 노래소리에 귀 기울이고 물 위에 일렁이는 빛의 춤을 지켜본다. 261남들을 행복하게 하면 무척 뿌듯할 것이다. 다시 엄마가 되는 것, 다시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 같을 테니 말이다. 그늘..

향모를 땋으며(9)_미슈코스 케노마그웬: 풀의 가르침

미슈코스 케노마그웬: 풀의 가르침내게 실험은 식물과 나누는 일종의 대화다. 물어볼 것이 있지만, 우리는 같은 언어를 구사히지 않기에 직접 묻지 못하고 그들도 말로 대답하지 않는다. 하지만 물리적 반응과 행동은 유창할 수 있다. 식물은 살아가는 방식으로, 변화에 대한 반응으로 질문에 대합한다. 우리는 어떻게 물을지 배우기만 하면 된다. 동료들이 "X를 발견했어"라고 말할 때마다 웃음이 난다. 그건 콜럼버스가 자신이 아메리카를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꼴이다. 아메리카는 줄곧 거기에 있었다. 그가 몰랐을 뿐이지 실험은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귀를 기울이고 다른 존재의 앎을 변역하는 것이다. 235"식물을 섬기며 이용하면 우리 곁에 머물며 번성할 테지만, 무시하면 떠날 것이란다" 인간을 '자연' 바깥에 놓고 인간과 ..

향모를 땋으며(8)_세 자매

세 자매 The Three Sisters어떤 이야기에 따르면 기나긴 겨울에 사람들이 굶주 림으로 쓰러져가고 있었다고 한다. 눈 내리는 밤 아름다운 여인 셋이 사람들의 집으로 찾아왔다. 한 명은 키가 컸는데 온통 노란색으로 차려입었으며 기다란 머리카락이 찰랑거렸다. 두 번째 여인은 초록색 옷을 입었으며 세 번째는 주황색을 걸쳤다. 세 여인은 불 가에서 몸 을 녹이려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식량은 넉넉하지 않았지만 낯선 손 님들은 넉넉한 대접을 받았으며 얼마 남지 않은 음식을 사람들과 함 께 먹었다. 세 자매는 환대에 감사하는 뜻에서 자신들이 실은 옥수 수와 콩과 호박이었음을 밝히고 사람들이 다시는 굶주리지 않도록 자신을 씨앗 꾸러미로 내어주었다. 195세 자매는 높이가 들쭉날쭉한 덕에 해의 선물인 빛을 버..

향모를 땋으며(7)_감사에 대한 맹세.콩을 보며 깨닫다

감사에 대한 맹세 Allegiance to Graditute국기에 대한 맹세, 모두를 위해 자유와 정의를. 우리의 뿌리는 감사의 문화다. 감사가 최우선인 문화에서 자녀를 키운다고 생각해보라. 프리다 자크, 그녀는 내게 감사 연설이 오논다가족과 세상의 관계를 구체화한 것이라고 설명해준다. 창조 세계의 각 부분은 조물주가 나머지 존재들에게 준 의무를 다하기에 감사를 받는다. "그러면 자신이 충분히 가졌음에 매일 자각하게 돼요. 아니, 충분한 것 이상이죠.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이미 여기에 있어요. 매일 이렇게 하면 모든 창조 세계를 만족과 존중의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답니다." 감사 연설을 들으면 부자가 된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감사를 표현하는 것은 순진무구해 보이지만, 혁명적 개념이..